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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총회 입법의회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오재영
- 2016
- 2017-11-10 04:13:58
미주까지 포함해 13개 연회 국내 지방만 213개 지방 7천여 교회 150만의 성도를 대표한 497명의 회원들이 1박 2일 동안 회의를 마쳤다. 총회입법의회를 마친 후에 교단의 게시판과 당당뉴스에 꽤 많은 이들이 등장하여 격려보다는 비판을 지나 비난하는 글들을 올렸다.
큰 틀에서 보면 모두가 다양한 시각으로 자신들이 속한 교단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잘하자는 뜻이겠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등장하여 자신들의 소신을 표현하는 이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 교단이 이들 때문에 더욱 맑아지고 발전되리라는 믿음을 갖기가 어렵다. 이들 중 일부인사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온갖 실망스런 행동이 이교도들과 교계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줄을 모른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위치와 분수를 모르는 이들이다.
그리고 글을 올린 이들 중에 대부분은 당당뉴스에 동영상이 그대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의 내용을 보면 최소한 한번 도 입법회의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이들이다. 명색이 성직자로 자처하는 이들의 자세가 이래도 되는가? 출교에 대한 말들이 많으나 악성 바이러스에 걸린 이들은 격리시켜야한다. 찬성 발언은 없이 반대발언만 했음에도 절대다수의 총대들의 찬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의 생생한 증거는 지난2015년 온 나라를 악몽에 빠뜨린 “메르스” 사태로도 확인되었다.
또한 이들은 교단에 중요한 일들이 있을 때마다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등장하여 품격 잃은 천박함으로 교단이나 자신이 속한 조직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존재감을 들어내기에 골몰하는 이들이다. 이제는 이들을 충고하고 야단칠 어른들도 없다. 각자 패거리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이 천박한 모습들을 한번이라도 부끄러워 해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이들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겁부터 난다. 또, 얼마나 교단의 품격을 떨어뜨리려는지...
엄위 앞에서 각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사는가?
지금 우리가 성직자요 구도자라는 명칭을 달고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 땅에는 우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여러 교단의 교파들과 더불어 80%의 이교도들과 공생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도자인 우리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마다 모두가 그들의 보기에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진리와 교단의 명예가 걸려있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한마디로 “천방지축, 안하무인”의 행태들을 예사로 한다. 정상적인 눈과 귀가 있으면 한번쯤 자신의 주변들을 둘러보라! 지금 형식만으로는 우리와 비슷한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가톨릭의 수사(修士) 들과 불교의 선승(禪僧) 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 모습들로 사는지를. 그들은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 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모두 버리고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그 진리를 향하여 자신들의 길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비록 우리가 가야할 길과 추구하는 목적이 그들과 신앙의 진리에서는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이 지니고 있는 그 치열한 정신들만은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정신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있는가? 허물과 죄로 죽어가는 세상, 교활하고 우리능력만으로 결코 감당 할 수 없는 사단의 강력한 진지(陣地)를 깨뜨리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명령을 실행할 영적 공동체 안에서 사명을 감당하기위하여 허락하신 직분의 중요함은 순교가 우선이며 섬김의 무거움을 삶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시대가 어찌됐건 성직은 모두가 함부로 욕심낼 분야가 아닌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으로부터 초대받은 죽음의 길이다. 잘못된 생각으로 감당하려는 이가 있다면 자신의 파멸만 부를 뿐이다.
그러므로 직분에 임명된 이들은 한순간이라도 주님을 대하듯 깨끗한 영성과 진심어린 섬김으로 자신의 존재의미를 증명해야한다, 스티브 옥포드의 말대로 언제나“꿇은 무릎, 젖은 눈, 깨어진 심장”을 간직하고 세우신 자리를 떠나지 않아야한다. 그토록 수많은 날들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부족함에도 남다른 은혜였음을 망각하고 그 큰 은혜를 천박한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여 일어서고 떠나는 날 그의 미래는 보장될 수가 없다.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 가라. (왕상22장36)
지금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분수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나무들 위에 요동하지만,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이들도 사랑하시지만 한편에서 묵묵히 순간의 선택의 부르심을 기다리며 자신과 온가족들이 일평생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기대를 하고 계시다는 생각이다.
국제 교도소 선교회의 대표였든 고 찰스, 콜슨의 ‘사람과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정의(正義)’의 내용에 브라질 유마이따의 교도소 내 거듭난 신앙공동체 작업공간에 걸려있는 커다란 포스터에 “시간을 그럭저럭 보내는 자는 그런 식으로 죽는다.”, 시간과 공간을 떠나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아픔이다. 어차피 이세상은 그렇게 나뉘어져 있기에, “한가한 사람과 바쁜 사람으로”...
성령 행전이라고도 하는 사도행전 20장에 일평생 자신을 드려 복음을 전하고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예루살렘을 향하든 사도바울이 지난 3년 동안 눈물로 가르쳤던 에베소교회 지도자들에게 부탁한 말씀,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20:28절).우리에게는 이러한 신전의식이 있는가?
오는 주일은 선교사 보건주일이다. 지금도 75개국의 1,272명의 선교사들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모습들을 다시 한 번 성찰하며 낮은 자세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주님 앞에서 다시 한 번 사명을 다짐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 구도자인 우리 신앙인들의 바른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