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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자족하자
관리자
- 1398
- 2017-11-08 06:56:48
- 시작하는 말
예수님을 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지정의의 결단에 의한 것도 아니고,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의 결단에 의한 것도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역사하시는 성령을 좇아 예수님을 주로 믿는 사람은 구원받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후반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16 이하를 보면,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주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했습니다.
- 주님 안에서 자족하자
예수님을 주로 믿어 구원받은 교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영적 연합을 의미하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주 안에서’, ‘주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등입니다. 주님과의 영적 연합이란 나뭇가지를 꺾어서 다른 나무에 접목하면 접목된 나무의 뿌리와 줄기로부터 수분과 자양분을 공급받으면서 새롭게 생명을 유지하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하여 복음 선교의 삶을 사느라 교회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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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온갖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바울 사도를, 물질과 기도로 잘 도운 것은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교인들에게,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한 것은 그 교인들이 늘 도우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행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실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감사한 더 큰 이유는, 도움 받은 물질에 담긴 한결같은 목자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교인들이 오해할까 봐, 자기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는 옥살이 중이라 궁핍했지만, 믿음과 생활에는 지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자족(아위타르케이아, αὐτάρκεια)이란 모든 사람이 불완전하고, 부족한 게 있고, 게다가 죄악과 불의와 편파 등의 못마땅한 일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덕입니다.
스토아학파는 자족을 도덕상 최고의 목표로 가르쳤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자족이란 모든 물질과 모든 사람에게서 무조건적으로 완전하게 초연한 정신 상태, 아무것도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이 자족은 어떤 정신적인 태도로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첫째, 모든 욕구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만족이란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욕심을 적게 내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부한 인간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자이다. 이유는 자족이야말로 자연의 부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둘째,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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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정과 정서를 배제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그와 같이 하기 위해 모든 것 속에서 신의 뜻을 본, 의식적인 의지력을 훈련하고 강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의 뜻을 본, 의식적인 의지력을 훈련하고 강하게 하는 것은 자연적인 태도가 아닌 인위적인 태도이고, 일종의 욕구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불완전하고, 불신앙과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의지력을 훈련해도 자족할 수는 없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자족의 근원을 인간에게 두는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또, 모든 욕구와 모든 감정이란 각자의 자제력에 따라 어느 정도 통제되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없어진다면 사랑은 인생에서 근절되고, 염려와 동정은 없어집니다. 글로버는, “스토아학파는 마음을 사막으로 만들고 그것을 평화라고 불렀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근본적인 면에서, 인간은 성장과 성취의 가능성을 위한 지정의라는 심적 요소가 있는 자율적 존재라는 사실에도 맞지 않는 사상입니다.
주님 안에서 바울 사도가 배운 자족이란 인간의 사상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물질의 복을 약속하신 줄도 모르고, 가난에 만족하는 것은 자족이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지도자인 자신에게 물질이 아닌 성령의 은사로 부유케 하셨는데 만족하지 않고, 적은 물질적 소유에 불만하면 자족이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대학자라도 뇌 세포의 5%, 혹은 10%도 못 사용하고 죽는다고 하는데, 100명 중에 뒤에서 3등을 하고서 만족하는 학생이나, 남의 실적을 가로채서 승진하는 직장인이나, 표절하거나 베껴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고, 벼슬한 것에 만족하는 인간은 자족이 뭔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각자의 인생 목표와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셨고, 또 그때그때 필요한 능력과 지혜를 주시는 줄도 모르고,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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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것은 자족이 아닙니다.
유머입니다. 고급 승용차끼리 충돌을 해서 차가 구겨지고, 사람들이 중상을 입거나 죽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구경꾼들 속에 있던 아버지 거지가 아들 거지에게 한 말이 걸작입니다. “난, 거지가 된 것에 자족한다. 너도 아비 잘 만난 줄 알고 자족해야 한다.”
어쩌면 각 나라의 일부 정치인들과 공직자들과 법조인들과 고위 군인들이 공복임을 망각하고, 공금을 유용하고, 부정축재를 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거나, 보복하거나, 죽이는 죄악을 성취하고 자족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릅니다.
자족이란 김대중 칼럼에 소개된바 27년간 옥살이를 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의 연설 같은 것입니다. 감리교인이며, 여러 상과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그는, “그들은 나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고, 많은 사람(흑인)을 죽였지만, 그것들은 정부가 시켜서 한 것이며, 이제 흑인 정부가 새로운 질서를 잡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그는 선거 때 폭탄 테러를 감행한 무장 백인 극우 단체도 협상 테이블에 초대하고, “백인들이 소중히 여겨온 기념탑이나 기념물, 그리고 동상들을 허무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만년에는, “나는 평생 백인이 지배하는 세상에 맞서 싸웠다. 또한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인생의 영광은 넘어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데 있다.”라고 했습니다.
벼슬한 소인배에게는 말이 안 되고, 보통 사람에게는 상상도 안 되는 사랑을 해내고 만족하는 사람이 자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자족이란 주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고, 설정해 주신 목표를 성취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자족이란 주님이 주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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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능력과 지혜와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자족이란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주님을 믿고 기도하여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해내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자기나 타인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도 동정이나 사랑을 안 하고, 초연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것은 자족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해낸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 자족입니다. 주님 안에서 마음껏 기도하고 힘쓰고 노력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자족하는 삶입니다.
어떤 일이 안됐을 때는 주님이 기도와 연구와 노력을 더 원하시는 것을 깨닫거나, 주님이 원치 않으시는 일임을 깨닫고 만족하는 게 자족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 자족의 비결은 만유의 주님이시자 전능하신 사랑의 주님 안에 확고히 거하는 것입니다.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는 주님 안에서 기도와 물질 사랑으로 자신의 괴로움에 함께 참예한 빌립보 교회를 칭찬했습니다.
- 맺음말
주님은 불신앙과 죄와 죽음과 멸망의 길을 가는 인류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어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의 삶이 아니라, 주님과 연합한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안팎의 모든 임무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로 알고, 필요한 능력과 지혜를 주시며 하게끔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해냈을 때 자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안 믿는 사람들도 하는바 모든 것에 대해 환경과 조건에 따라, 혹은 탐욕이나 죄악의 성취에 따라 만족하는 것은 자족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확고히 연합하고, 주시는 사랑과 지혜와 능력으로 임무는 물론, 모든 것을 해내며 자족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빌립보서 4:10-14)
10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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