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7:2-5…변형되사…초막 셋을 짓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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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15 07:59:59

높은 산에서의 예수님의 변형에 대해, 마태는 【2】[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라고 하였다.
[변형되사]는 메테모르포테(μετεμορφώθη)이며 ‘본질 또는 내적 본성에서 변화되었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이곳 외에 로마서 12:2과 고린도후서 3:18에만 나타나는데, 전자는 인격 또는 심성의 변화를 의미하고, 후자는 마지막 때에 신자가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화되는 실제적 변화를 의미한다. 다니엘 12:3에서는 종말의 때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라고 하였고, 다른 묵시문학에서도 그와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에녹서 38:4, 104:2, 제 2 에스드라서 7:97).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는 단순한 외적 변화가 아니라 내적 변화의 표명이다. {예수님의 변형에 대해, 버딕(D. W. Burdick)은 “외모의 피상적 변화가 아니라 본질적 형체의 변화이다.”라고 하였다. 이 변형의 발원은 외부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숨겨진 내적 생명이다. 이 영광스런 변형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한 그 자신의 신적 영광의 발현이다. 그러나, 완전한 발현이 아니라 세 제자가 지각할 수 있을 만큼의 발현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재림 때의 영광의 발현의 예표”(米田豊), 또는 부활이나 “재림 때의 영광과 비슷한 것”(黑崎幸吉)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영광스런 변형에 대해, 고울드(E. P. Gould)는 주목할 만한 설명을 하고 있다. “변화의 육체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데서 비롯된 정상적인 견해를 따르면, 변형은 예수님 자신의 낮춤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신적 존재였음을 보여 주는바 둘러싸인 어두움 한가운데서의 주님의 참된 영광의 빛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자신의 견해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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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면, 그 피상적 세상성에 반하여 자신의 영광이 낮춤과 죽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낮춤과 죽음 자체였다는 것을 확립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막 9:2의 주석).
내적 변화에 의한 용모의 변화로 비롯된 결과는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라고 표현되었다. 이 표현은 예수님이 세상적인 것과 대조되는 천적인 존재이심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변형되셨을 때에 일어난 일에 대해, 마태는 【3】[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세 제자의 단순한 환상이나 환각이나 환청이나 환시를 전해 듣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 영안이 열린 세 제자가 본 영적 사실을 전해 듣고 기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구약의 예언자들을 대표한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모세도 예언자이었고, 그가 천사를 통해 받아 전한 하나님의 율법은 또 다른 형태의 예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예언적으로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였다(눅 24:27, 요 1:45). 그런데, 엘리야는 예언적인 것, 특히 기록에 의하면, 예언의 메시아적 측면과 관계가 없는 것이기는 하나, 마지막 때에 사람들에게 신의 법(모세 율법)을 일깨워 주고, 입법자이신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선구자로서의 사명이 있었다(말 4:4-6, 막 1:2-, 9:11).
그렇다면, 모세는 곧 예수님의 죽음에서 성취될 옛 언약의 대표로 나타나고, 엘리야는 마지막 때에 만물을 회복하는 예언자로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과 그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사건들의 종말론적 의미인 궁극적 중요성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의 대화의 주제가 장차 발생할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별세(눅 9:31)였다는 것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와 같이 율법과 예언을 특징으로 하는 구약의 주제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인 것이다.
근본적인 것은 아니지만, 모세는 죽음에서 부활할 성도들의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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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엘리야는 죽음을 거치지 않고서 영화로움을 입어 하늘로 들려질 성도들의 모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출현한 이제 구약의 의미는 완성된 것이므로, 이 마당에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져야만 한다(눅 9:33).
놀라운 광경을 본 베드로의 반응에 대해, 마태는 【4】[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에 대해, {헨리(M. Henry)는 “영광스럽게 변화된 예수께도 참된 신자는 담대히 다가가 말할 자유가 있다. 이 천국의 소리에서도 베드로가 말할 여지는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라.”라고 하였다.}(막 9:5의 주석).
[주여](퀴리에, κύριε)는 1:22의 주석을 보라.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는 베드로가 황홀한 마음으로 한 말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가 아직도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영적 사실의 속뜻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에 대해서, {레인(W. L. Lane)은 “초막 셋을 짓겠다는 베드로의 제안은 분명히 상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우서(U. Mauser)의 “다시 하나님이 사람들과 대화하실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의 초막을 짓겠다는 욕구는, 베드로가 제2의 출애굽(인류 구원)이 성취된 것으로, 그리고 안식일의 안식 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간주한 것을 의미한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다.
계속해서 레인(W. L. Lane)은 “베드로는 예수께서 필수적인 것으로 선포하신 고난에 앞서 지금 약속된 영광의 성취를 열망한다. 그의 주석은 예수님의 변형이 단지 완성된 천국의 영광에 순간적으로 참여한 것이었음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했음을 반영해 준다.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가 나누게 될(막 13:26-) 새 세대의 복들은 예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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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죽음에서 절정에 이르는바 정해진 임무에 절대 필요한 고난들을 다 겪으신 다음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세 제자가 자기들이 본 것에 대한 메시아적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음을 지시하는 것이다.”라고 잘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와 두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고난을 받고 운명하심으로써만 인류가 죄와 죽음과 멸망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베드로는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종들인 모세와 엘리야를 주님과 같은 수준에 놓을 만큼 어리석었다”(J. Calvin, 山口 昇).
셋째, “베드로는 천국과 천국의 영광 그리고 천사 같은 영광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시적인 장막들을 짓고 싶어하는 잘못을 범하였다”(J. Calvin).
넷째, “베드로는 내적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적 제도에 의해서 세상을 부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J. P. Lange).
다섯째, 베드로는 심지어 산 아래서 기다리고 있는 동료 제자들마저 잊어버렸다. 헨리(M. Henry)는 “우리가 잘 지낼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잊기 쉽다. 그리고 우리의 즐거움이 충만할 때, 우리 형제들의 필요를 잊기 쉽다.”라고 하였다.}(막 9:5의 주석).
이러한 베드로에 대해서 누가는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눅 9:33)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말했을 때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마태는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라고 하였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표시이며, 그 성경적 배경은 충분하다(출 13:21, 14:19, 16:10, 19:9, 24:15-, 33:9, 레 16:2, 민 9:15-23, 왕상 8:10, 시 78:14, 사 4:5, 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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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막 13:26, 14: 62, 행 1:9, 살전 4:17, 계 11:12 등).
[저희를 덮으며]는 빛난 구름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덮었다는 뜻이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는 3:17의 주석을 보라.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즉 제자들에게 모세나 엘리야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완전히 복종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약 1:22-24). {칼빈(J. Calvin)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교회의 지고의 유일한 스승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막 9:7의 주석).
예수께서 세 제자에게 변화산의 경험을 하도록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즉, 세상이 예수님을 어떻게 취급하든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이시며, 인정받는 진리의 화신임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제자들은 미래의 영광을 미리 맛볼 수 있었고, 구름 아래서 발생한 것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었으며, 특히 구름 속에서 들은 소리를 모든 세대에 증거할 수 있다는 것을 구름 속에서 인정받았다.

※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 1판 1쇄), pp. 473-477.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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