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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둔포는
이경남
- 1512
- 2017-11-26 19:18:52

내 고향 둔포는
-이경남
사람은 나이가 들면 고향을 생각한다
나 태어난 곳 강원도 화천이지만
돌이 갓 지난 후 떠나
충남 아산의 포구 마을에서 자라났다
동네 위로는 용이 올라갔다는
용남산이 서 있고
그 산 너머로는 돌포 독골 염작리의 깊은
산골인데
여긴 사과 배 복숭아 과수원이 즐비한
당시엔 무척 가난한 마을이었다
아래로는 서해 조숫물이 하루 두번 드나들고
황포 돛배마져 오가는 포구였는데
개천에는 해수와 민물이 교차하며
온갖 물고기가 풍성하고
겨울이면 바다에서 밀려온
거대한 성애들로 신비한 계곡이 만들어지는
해안 마을이었다
멀리 고령산 자락에서 발원한 시냇물은
장자울 호수를 지나 다시
새말 관대 방아다리 들판을 지나 흘렀는데
수정처럼 맑은 물에서는 송사리떼 뛰어 놀고
구비 구비 쌓여진 하얀 모래 백사장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천렵을 즐기며 쉬는
천혜의 휴양지였다
서해 조숫물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세갈포에서는
아이들의 다리를 잡아 당긴다는 물귀신 전설로
두려웠고
긴 겨울 들녘에 어둠이 내리면
깊은 산곡에서 내려온
늑대의 울음 소리 또한 들리는
아득한 시골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내 고향 둔포는
더 이상 추억 속의 고향이 아니다
과수 단지였던 돌포 염작리는 이제
공장 가득한 산업 단지로 바뀌었고
우리의 고조 증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묻혀
정겨웠던 마을 공동 묘지도 이미 다 파헤쳐져
우람한 아파트 숲으로 변해 버렸다
평택에서 온양으로 가는 신작로를 따라
소박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던 마을 거리는
이제 저녁이 되면
인근 공단의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오며
이들을 유혹하는 네온빛 휘황한 술집들로 가득찬
조악한 퇴폐 거리로 바뀌어 있다
모교인 둔포 초교는
유년 시절 6년의 아련한 추억을 담고 있지만
아름드리 플라타나스 나무들과
낙엽이 뒹굴며 연출했던 그 고독한 정취를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
마을 동편 언덕 아카시아 숲 속에
그토록 아름답게 서있던 하얀 예배당도
지금은 그 숲도 운치도 다 잃어 버린채
그저 황량한 건물로만 남아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고향을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고향은
이제 희미한 흔적일뿐
더 이상 이곳에 있지 않다
내가 그리워하는
그 아름답고 무후한 고향은
그러나
내 추억 속에
아직도 남아 있고
나는 그것을 가슴에 품고 산다
2016.11.26. 첫눈 내리는 날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