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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여행(旅行)
함창석
- 1301
- 2017-12-05 00:50:24
산돌 함창석 장로
내 생애 처음으로 부부 동반하여 지난여름부터 준비한 골프여행으로 11월 27일 밤 10시 인천국제공항에서 TG657항공편으로 출발하여 5시간이 지나 방콕국제공항에 현지시각 새벽1시에 도착하였다.
방콕은 인구 1천5백만으로 세계적 거대도시이며 문화·상업·금융의 중심지로 타이 만에서 약 40㎞ 떨어진 지점, 차오프라야 강 삼각주에 있다고 한다. 방콕의 수많은 불교사원들은 타이의 고전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동남아시아에서 관광산업이 제일 발달하였다고 한다.
운전석이 오른쪽인 일본 도요타 10인승차를 타고 우리 여행의 주요 목적지인 칸차나부리 블루스타골프장을 향하여 3시간을 달려 4시에 도착 여장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운동을 할 준비를 하였다.
칸차나부리 보플로이에 위치한 블루스타 골프장은 11월말 오픈을 앞두고 있는데, 원래 사파이어 광산이었던 곳이며 채굴로 인해 생긴 곳에 물이 고여 호수 주변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18홀에 7,200야드 정도이며 페어웨이가 좁아서 장타를 정확하게 쳐야 스코어를 낼 수 있는 코스라고 한다.
아침식사를 하고 동반여행을 하는 휘문63회골프회원들과 남녀로 나누어 카트별(2인) 6백바트를 내고 첫날 라운딩을 시작하였다. 카터를 골프지역으로 손수 몰아야 하는 것이 처음이라 적응이 어려웠다.
아침이라 그라운드가 이슬인지 물을 뿌렸는지 물기가 많았다. 첫 타석은 거리는 짧았지만 페어지역에 안착하였다. 티칭프로인 친구와 싱글수준인 친구는 오랜 골프여행으로 잘 치고 있었다. 보기플레이 수준인 나는 타이 양잔디에 어려움이 있었다. 골프를 오래 쉬었다는 친구도 잘 적응하였다.
잘 치는 동반자의 코칭과 오전 18홀은 적응한다는 마음으로 웃으며 잘 진행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온 피로감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동반자들과 담소를 나누며 쉬고 오후 라운딩을 대비하였다.
첫날보다 잘치겠다는 욕심이 앞서 둘째 날은 더 해저드에 여러 번 빠뜨렸다. 많은 벙커에 해저드에 좁은 페어지역에 불루스타골프장이 국내에서 치던 골프장코스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14번홀은 타이의 지도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파3 벙커주변은 돌담을 쌓아 놓은 듯 조금 높았다.
캐디는 1카터에 1인으로 첫날은 남자였으나 둘째 날은 여자였다. ‘똑바로를 똥바로’라 하며 서투르게 말하였다. 대다수가 기혼자로 30살이 넘고 자녀들을 위해 투잡을 하여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둘째 날은 오전만 18홀을 치고 오후에는 콰이강의 다리에 나가기로 하고 도착하였으나 축제가 있어 진입을 통제를 하는 바람에 야시장투어 후 아리랑식당에서 수상 저녁식사를 하며 노래방으로 재능이 있는 친구를 따라 흥을 돋우었다. 강가 높은 산에는 황금색 불교사원이 보였으며 빛이 났다.
예전에 한국 사람이 운영해서 ‘아리랑식당’이라고 식당 입구에 큰 간판이 있었다. 칸차나부리(아리랑식당)에서 석양 무렵부터 2시간가량의 선상에서 진행되는 파티는 이국적인 낭만을 물씬 풍긴다.
콰이강의 다리는 제2차 대전 동안 강제동원된 사람들이 세운 다리로 방콕과 미얀마의 모울메인을 연결할 철로를 찾던 일본인들은 콰에노이 강 하곡을 따라 프라체디삼옹에 이르는 철도를 놓았는데 여기에 포로로 동원된 영국군 공병대의 건설과 연합군 특수부대의 폭파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콰이강은 미얀마-타이 국경에 있는 프라체디삼옹 근처에서 발원하여 국경과 평행한 방향인 남동쪽으로 흘러 칸차나부리 근처 매클롱 강과 합류한 후 사무트송크람에서 타이 만으로 흘러든다고 한다.
셋째 날까지 골프가 욕심을 내어 힘이 들어가면 방향도 문제요, 거리도 문제가 발생하니 국내에서보다 3일간 90홀을 쳤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다. 처음 해외골프여행에다 아내까지 동반하니 부담감도 있었으나 그런대로 재미있고 보람 있게 삼일을 보내고 금요일 관광을 준비하였다.
넷째 날은 아침부터 관광에 나섰다. 먼저 강을 따라 1시간가량 달려 땜이 있는 상류지역으로 올라갔다. 단체로 기념사진도 찍었다. 푸미폰왕의 딸 스리나가린드라의 이름을 따른 사력댐이라 한다.
타계한 푸미폰왕은 70여년 타이를 통치한 왕이기에 타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좌에 올랐던 왕께 존경을 표하며 축복하기 위해 촛불을 밝히고 타이 국가를 부른다한다. 여러 가지 다채롭고 화려한 축제와 문화행사에 관광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전 세계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초청한다고 한다.
다음은 사이욕노이 폭포에 들렸다. 이 폭포는 석회암으로 된 바위 위에 생긴 폭포로 바위들이 둥글둥글하며, 폭포가 7단계로 오를 만큼 연단폭포의 형태이었다. 수영물놀이를 하는 관광객도 있었다.
산을 오르며 운동을 하면 땀이 흘러내렸다. 5단계를 지나며 자유시간이 주어져 한적한 곳에서 물에 발을 담그고 쉬었다. 바닥돌이 뿌옇게 보였으며 물가에는 작은 고기들이 있었다. 고목들이 부러져 걸쳐 있었고 다양한 나무들과 무속적인 행위인지 나무에 여러 가지 옷가지 신발 등이 놓여 있었다.
타이는 고대의 전통이 깊이 스며있는 국가로서 방문객을 매혹시킬 눈부신 축제들을 준비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가 바로 태국의 아버지의 날이라는 12월 5일 왕의 탄신일이라고 한다.
타이의 새해, 또는 쏭끄란이란 불리는 4월의 축제가 있고 타이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축제도 있으나 엄숙한 분위기의 축제들도 많다고 한다. 가족들은 절에 모여 모래 탑을 만들며 5월에 생사 그리고 부처의 깨달음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의 절에서 열리는 촛불행렬이라 한다.
점심은 칸차나부리에서 제일 큰 마트에 들려 타이전통식인 샤브샤브로 맛있게 들었다. 기사까지 12명이 먹었는데 3천6백바트밖에 안나왔으니 1인당 1만원정도이다. 타이는 음식 값이 싼 편이다.
마지막으로 낮에는 행사로 인하여 열차는 운행하지 않고 사람만 개방하는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 콰이사원에 들려 여러 가지 구경을 하였다. 노래나 역사시간에 들어왔던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며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며 밤 축제 리허설공연을 보고 강가에 수상가옥들을 내려다보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저녁은 타이전통식당에서 강과 콰이강의 다리 축제 야경을 즐기며 돼지고기, 새우, 맥주를 들었다. 불꽃놀이도 하였는데 조금 짧았다. 띠 동갑끼리 환갑 여행을 왔다는 한국인 관광객 일원도 만났다.
저녁을 든 후 타이 전통마사지를 받았다. 처음 들린 곳은 4백 5십바트라 비싸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였는데 2백 5십바트로 쌌다. 1시간 전신을 받으니 처음으로 받는 체험이라 무척 힘이 들었다. 비싼 차이는 타이기사가 받는 소개료라 할까? 나는 마시지한 여인에게 팁을 5십바트 전했다.
골프만 치기로 하였지만 회원들의 요청으로 하루 투어 일정을 소화하면서 오늘은 밤이 너무 늦었다. 11시가 넘어서 리조트에 도착하여 샤워를 한 다음 내일 18홀 라운딩을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다. 18홀을 돌기로 하고 윤회장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한조가 되어 열심히 쳤지만 싱글 수준인 윤회장을 따라 갈 수 없었다. 나는 실수를 연발하며 전반 홀은 겨우 보기 플레이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후반에 들면서 드라이버가 난조를 보이며 골프가 어렵다는 것을 재삼 실감하였다.
오후에는 쉬면서 짐 정리를 하고 오후 5시에 저녁식사를 하였다. 일행들이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차안에서는 며칠간의 친교로 부부들이 말문이 활짝 열려 여럿이 담화를 참 재미있게 하였다.
요즘 유행하는 주말드라마 ‘밥상을 차리는 남자’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부부가 겪어온 어두운 측면까지 들추어내며 개그, 자기 창작담 등 화제는 다양하였다. 주말이라 방콕시내는 많이 막혔으나 지루하지 않았다. 방콕국제공항에 도착 관광청 서비스 도움으로 수속을 마치고 TG658항공에 탑승하였다.
50분간이나 연착해 밤 탑승시간은 잠에 취했으며 5시간이 너무 힘이 들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연착으로 8시차를 놓치고 9시 30분무정차로 원주에 오는 동안 2시간을 잠이 든 채 도착하였다.
11시 40분 원주터미날에 도착 택시를 타고 집에 들려 샤워하고 햇반으로 점심을 때운 후 주일이라 오후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에 갔다. 한 주간 예배당건축에 관하여 해외골프투어로 미루었던 일을 건축위원들과 협의하여 처리하고 집에서 우리부부는 짐 정리를 하며 보람에 함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