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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돈원 목사님, 목회서신(딤전, 후, 딛)의 저자 문제입니다
관리자
- 2333
- 2017-12-04 07:13:04
Ⅱ. 저자
목회서신의 저자가 자신을 가리켜,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딤전 1:1)이라고 하였고, 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딛 1:1)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목회서신의 저자가 바울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19세기 초에 현대 성서 비평학이 대두되면서 독일의 신학자 슈미트(Johann Schmidt: 1804)와 쉴라이마허(Schleiermacher: 1763-1834)는 디모데전서의 바울 저작설을 반대하였다. 그런데, 쉴라이마허(Schleiermacher: 1763-1834)는 디모데후서와 디도서는 바울의 저작품으로 인정하였다. 그는 디모데전서를 가리켜, 위의 두 서신을 모방하여 쓴 후대의 작품이라고 하였다.
아이크호른(Johann Eichhorn: 1752-1827)은 디모데전서를 포함한 목회서신 전부를 바울이 썼다고 하는 견해를 반대하였고, 튀빙겐 학파의 바우르(F. C. Baur, 1792-1860)는 사상적인 대조를 통해 반영지주의파의 인물에 의한 후대의 작품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반대설의 조류는 꾸준히 지지 세력을 더하여, 현대의 저명한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주류적 견해가 되었다. 특히, 보수계 학자들까지 이 견해를 지지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Holtzmann, Reuss, H. A. W. Meyer, Von Weizsäcker, Beyshlag, Bacon, Pfleiderer, Sabatier, Jülicher, Ewald, McNiel, Vincent, F. D. Gealy 등).1)
그들의 논지는 아래와 같다.
⑴ 고대 자료인 2세기 중엽의 말시온의 정경(Marcion Cannon: 140 년경)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또한 3세기 초의 체스터 비티 파피리(Chester Beatty Papyri: 2-4세기의 귀중한 파피루스 고본 자료)에도 빌레몬서와 함께 목회서신 모두가 들어 있지 않다.
⑵ 문체와 용어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현저히 다르다. 로마서와 같은 정연한 구조나,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와 같은 전투적 기백이나, 에베소서와 같은 웅장함이나, 다른 옥중서신들과 같은 심오한 체험 및 깊은 명상에서 얻은 심원한 사상 등의 어떤 점도 목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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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목회서신에는 바울 서신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고, 삽입구 및 파격 구문이 부족하여 활기찬 박력이 없다. 목회서신 모두가 한결같이 단순하고 평범하고 형식적으로 일관되어 있다.
하리손(P. N. Harrison)은 목회서신에서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175개의 낱말과 다른 신약성경 기자들이 사용한 비바울적인 130개의 낱말을 발견하였다.…그는 목회서신에 새로운 낱말들이 비약적이고도 명확하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래서 그는 바울이 이러한 후기 서신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그는 목회서신에 단 한 번만 나오는 낱말이 디모데전서에 96개, 디모데후서에 60개, 디도서에 43개 등 모두 199개나 되어 다른 바울 서신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고 주장하였다.
빈센트(Vincent)는 목회서신에만 나오고, 다른 바울 서신들에는 나오지 않는 낱말의 수가 무려 304개나 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불의’(ἄδικος), ‘불결’(ἀκαθαρσία), ‘할례받지 못한’(ἀκροβυστία), ‘알게 함’(γνωρίζειν), ‘언약’(διαθήκη), ‘행함’(περιπατείν), ‘몸’(σώμα), ‘좋은’(χρηστός)등은 바울의 4대 서신에만도 71번이나 나오는데 목회서신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또, ‘십자가’(σταυρός), ‘십자가에 못박는다’(σταυρόω)는 어휘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는 27번이나 나오는데 목회서신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외에도 바울의 애용어인 ‘자유’(ἐλεύθερος), ‘아들’(υἱος), ‘양자’(υἱοθεσία), ‘온전’(τέλειος), ‘넘침’(περσσός), ‘생각함’(φρονείν), ‘연습함’(πράσσειν), ‘일함’(ἐνεργειν) 등도 목회서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반면에, 목회서신에만 나오는 독특한 표현법이 있다. 즉, ‘경건히 살려면’(εὐσεβώς: 딤후 3:12, 딛 2:12), ‘의를 좇으며’(διώκε δὲ δικαιοσύνην: 딤전 6:11), ‘부탁한 것을 지키다’(φυλάσσειν τήν παραθήκην: 딤전 6:20, 딤후 1:12, 14), ‘교훈을 좇다’(παρακολουθείν τῇ διδασκαλίᾳ: 딤전 4:6, 13, 딤후 3:10, 딛 1:9), ‘선한 싸움을 싸움’(τὸν καλὸν ἀγώνα ἀγωνίζεσθαι: 딤전 6:12, 딤후 4:7), ‘하나님의 사람’(ἄνθρωπος θεού: 딤전 6:11, 딤후 3:17 ), ‘부패의 사람’(ἄνθρωποι κατεφθαμένοι: 딤후 3:8) 등은 다른 서신들에서는 볼 수 없는 어구들이다.
더욱이,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목회서신이 동일한 일과 사상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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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경우에도 양자는 서로 다른 어휘와 논법을 쓰고 있다. 빈센트(Vincent)는 고린도후서 11:4, 갈라디아서 1:6과 디모데전서 1:3, 갈라디아서 5:18, 23, 로마서 6:14과 디모데전서 1:9, 고린도전서 12:28과 디모데전서 1:12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욕망을 가짐’이 다른 서신들에는 ἐπιθυμειν 또는 ἐπιποθειν이지만 목회서신에는 ὀρέγεσθαι이고, ‘무흠’이 다른 서신들에는 ἀμωμος 또는 ἄμεμπτος이지만 목회서신에는 ἀνεπίλημπτος이며, ‘대가’가 다른 서신들에는 ἀντιμισθία이지만 목회서신에는 ἀμοιβή이며, ‘공박함’이 다른 서신들에는 ἐλέγχω이지만 목회서신에는 ἐπιπλησσω이다.2)
⑶ 목회서신에 묘사되고 있는 바울의 행적이 사도행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과 상응하지 않는다. 디모데전서에 의하면, 바울은 에베소에 디모데를 남겨 두고 자신이 마게도냐로 간 것으로 되어 있다(딤전 1:3). 그러나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에서 고린도에 약 1년 6개월 동안 체재한 후에 수리아로 건너갔고(행 18:18-21), 제3차 선교 여행에서는 에베소에 3년 동안 체재한 후에 예루살렘행을 결정하고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보내고 있다(행 19:8, 10, 20:31). 이와 같이 양자의 기록이 서로 어긋나고 있다.
디모데후서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에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한 것 같다(딤후 1:16, 17, 2:9). 바울은 로마에 오기 전에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방을 여행하고, 드로아에서는 알렉산더에 의해 고통을 겪었다(딤후 4:13-14). 그리고 밀레도를 거쳐(딤후 4:20) 로마에 와서 잡힌 것 같다. 바울의 재판은 시작되었고(딤후 4:16, 17), 그는 죽음을 예기하고 있다(딤후 4:7-8). 그러나 이들 기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로마 포수(捕囚)의 기사와 일치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일단 풀려나왔다가 다시 로마에서 잡혔다는 것인데 전적으로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디도서에는 바울이 그레데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 곳에 디도를 남겨 두는 사건이 있지만(딛 1:5), 사도행전에는 그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3)
⑷ 목회서신에는 얼마쯤 발달한 교회의 제도가 전제되어 있다. 감독(딤전 3:1-7, 딛 1:7-16)과 장로(딤전 5:1, 17-19, 딛 1:5-7)와 집사(딤전 3:8-13) 등의 선정과 임명 방식 등이 언급되고, 교회의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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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 운영에 관한 지대한 관심과 배려가 기울여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교회의 조직 및 제도는 바울 시대가 아니라, 1세기 말경이나 2세기 중엽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4)
⑸ 목회서신의 신학적 입장은 기독론이나 구원론에서는 바울의 입장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딤전 2:5, 6, 6:14, 딤후 1:10, 11, 2:7-10). 그러나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하는 복음적인 바울 신학에 비해, 목회서신의 신학은 율법주의적이며 도덕적인 색채가 짙다. 바울이 주님과의 생생한 인격적인 만남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목회서신은 계승되어야 할 고정화 된 교의나 신조, 혹은 건전한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딤전 1:10, 4:6, 13, 16, 5:17, 6:1, 3, 딤후 3:10, 16). 따라서, 선행이 거듭 권면되고 있다(딤전 2:10, 5:10, 6:18, 딤후 2:21 등).
신앙도 바울의 입장과 같이 인격적 결단이라는 요소가 부족하고, 오히려 가르침을 받아들여 그것에 추종한다는 면이 강조되어 있다. 또, 신앙만으로보다는 신앙과 올바른 양심(딤전 1:18),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딤전 4:12),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딤후 2:22),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딤후 3:10)…등과 같이 신앙이 다른 덕목 등과 병렬되어 있다.
또한, 바울에게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부성,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과 부활 및 그분과의 생명적 결합, 그리고 성령의 능력 있는 증언 등이 목회서신에서는 모두 암시 정도로 그치고 있다.5)
⑹ 목회서신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단은 유대적 영지주의이다. 동양의 이원론을 가미한 이 사상은 바울 시대 이후인 2세기 중엽의 사상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되는 것으로 “다른 교훈”(딤전 1:13), “어리석은 변론”(딤후 2:23, 딛 3:9), “허탄한 이야기”(딤전 1:6, 딛 3:14 ), “유대인의 허탄한 말”(딛 1:10, 14), “지식의 망령되고 허탄한 말”(딤전 6:20), “신화와 족보 이야기”(딤전 1:4, 4:7), 물질을 악으로 보는 것(딤전 1:15, 3:6, 4:4-5, 딛 3:4) 등을 들 수 있다.
영지주의의 기본적인 사상은 오직 영만이 선한 것이고, 물질은 모두 악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한 물질이란 하나님과 같이 영원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본질적으로 이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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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이용하실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창조자일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결점을 지닌 물질을 접하기 위해서 일련의 방사물을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사물들(에온즈, aeons)은 각기 단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게 된 한 방사물이 물질을 다룰 수 있게 되어 세상을 창조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하나의 계단과 같은 방사물의 층이 널리 깔려 있다. 그러한 방사물의 하나하나는 그 나름대로의 이름과 족보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지주의는 문자 그대로 끊임없이 우화와 끝 날 줄 모르는 족보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도달하려면 이 방사물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인간은 아주 특수한 종류의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 지식에도 그 나름대로 계단을 통과해 나가는 여러 가지 암호가 포함되어 있다. 가장 높은 지식의 소유자만이 그러한 지식과 암호를 획득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 도달하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일반인은 하나님께 이르는 도상의 가장 낮은 계단조차 통과해 낼 수 없다. 이들은 이 땅 위에 얽매인 자들이며, 반면에 지식인들만이 이러한 사변을 익히고 그와 같은 지식을 획득하게 되어 하나님께 오를 수 있다.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보는 영지주의 입장에서는 육체 또한 전적으로 악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는 두 가지의 상반된 태도를 가능하게 한다. 첫째, 육체는 학대를 받아야 하고 거절당하고 억압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둘째, 첫째와는 반대로 육체가 완전히 악한 것이라면, 그 육체를 어떻게 다루고 취급하든지 상관없다고 하는 주장도 성립하게 된다. 그 결과로 육체의 본능이나 욕망이나 쾌락은 최대한으로 향유해도 된다는 방종 내지는 쾌락만능주의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말해, 영지주의자들은 금욕주의자가 되든지, 또는 도덕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무뢰한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목회서신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또 다른 이단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이다. 이 이단은 기묘하게 영지주의와 손을 잡았다. 즉,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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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의에서 주장하는 특수한 지식과 필요한 금욕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유대교의 율법이며, 유대교의 음식물 규정이라는 것이다.6)
위와 같은 반대설에 대해 목회서신이 바울의 저작임을 지시해 주는 외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⑴ 로마의 클레멘트는 고린도에 보낸 편지(Clement of Rome, To the Corinthians, 95년경)의 2장에서 디도서 3:1을, 45장에서는 디모데후서 1:3을 인용하였다.
⑵ 이그나티우스(Ignatius: 35?-107/17)는 폴리캅에게 보낸 편지(To Polycarp: 100년경)의 4장에서 디모데전서 6:1-2을, 6장에서는 디모데후서 2:4을 직접 인용하였다.
⑶ 폴리캅(Policarp: 69?-115)은 자신의 「빌립보서」(To the Philippians, 120년경) 4장에서 디모데전서 6:7, 10을, 5장에서는 디모데전서 3:8, 디모데후서 2:12을, 9장에서는 디모데후서 4:10을, 11장에서는 디모데후서 2:15을, 12장에서는 디모데전서 2:1, 2을 인용하였다.
⑷ 바나바의 서신(Epistle of Barnabas: 120년경?)의 7장에는 디모데후서 4:1을, 12장에는 디모데전서 3:16을 암시하고 있다.
⑸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는 「이단에 대하여」(Against H eresie: 약 182-188)의 서언에 디모데전서 1:4을 인용하였다. 그는 같은 작품에서 약간의 다른 문장들을 인용하거나 암시해 준다. 예를 들면, 디모데전서 1:9(Ⅳ. xvi. 3), 2:5(Ⅴ. xvii. 1), 3:15(Ⅲ. i. 1), 4:2(Ⅱ. xxi. 2), 디모데후서 2:23(cf. Ⅳ. 서문, 3), 디도서 3:10(cf.Ⅰ. xvi. 3) 등이다.
⑹ 저스틴 마티어(Justine Martyr: 100-165)는 자신의 책인 「트리포와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155-161 사이에 집필) 47장에서 디도서 3:4을, 118장에서는 디모데후서 4:1을 인용하였다.
⑺ 합리론적 비평가들도 인정하는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non: 180-200)7)에 이 세 서신이 바울의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⑻ 안디옥의 데오빌로(Theophilus of Antioch)는 디모데전서 2:1-2을 인용하면서, 이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언하였다.
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150-213)는 디모데전서 6:20-21을 인용하면서, 이 구절 때문에 이단자들이 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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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전서와 디모데후서를 거부하였다고 부언하였다.
⑽ 터틀리안(Tertullian: 160-?)은 디모데전서 1:18, 6:13, 20, 디모데후서 1:14 등을 바울의 말로 인용하였다.
⑾ 4세기 초에 글을 쓴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는 이 세 서신을 바울의 14서신(히브리서 포함)에 포함시켰다. 또, 4세기 초의 기도서들에는 목회서신이 인용되었고, 크리소스톰(Chrysostom: 380년경)을 위시한 그리스 교부들도 물론 이를 받아들였다. 그 밖에도 고대 라틴 역이나 수리아 역 그리고 대부분의 사본들에도 바울의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8)
이제 우리는 목회서신이 바울의 저작임을 지시해 주는 내적 증거를 논해야 하는데, 이러한 논의는 주로 반대설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다.
⑴ 저자는 자신을 바울로 밝히고 있으며(딤전 1:1, 딤후 1:1, 딛 1:1), 또한 자신을 가리켜 훼방자요 포행자이었다고 하며(딤전 1:13), 심지어 죄인 중 괴수라고까지 하였다(딤전 1:15). 이러한 표현을 제자가 스승에 대해 사용했을 리가 없다.
저자는 자신의 부름받음에 대해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감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딤전 1:16, 2:7, 딤후 1:11), 수신자인 디모데와 디도를 가리켜 젊고 연약하며 더욱 자제해야 할 믿음의 아들이라고 하였다(딤전 1:2, 4:12, 5:23, 6:11, 딤후 2:1, 딛 1:4). 이러한 표현은 바울이 아닌 그 후대의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목회서신에 바울의 친구로 알려진 수많은 이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누가, 아볼로, 두기고, 드로비모, 데마, 마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소바더, 아리스다고, 가이오, 세군도, 디도, 오네시모, 유스도, 유스도라는 예수, 에바브라, 에바브로디도, 소스데네, 루시오 등을 위시하여 23명이나 되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저자가 당시 교회의 중심 인물임을 표시하는 것이다(이상근).9)
목회서신이 바울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목회서신과 다른 바울 서신과의 뚜렷한 유사성으로 확인된다. 이를테면, 은혜의 복음에 대한 강조(딤전 1:11-16, 2:5-7, 6:13-16, 딤후 1:8-11, 4:7-8, 딛 2:11-13, 3:44-7과 롬 1:5, 14-17, 15:5-9, 고전 1:17, 15:1-11, 고후 4:4-7,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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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자신의 회개에 대한 회고(딤전 1:12-13과 고전 15:9, 엡 3:8),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딤전 2:7과 롬 11:13), 자신의 수난에 관한 기록(딤후 1:8, 12, 2:9, 10, 3:10-11과 고후 1:4-10, 4:7-12, 6:4-10, 11:23-28, 살전 2:2), 경건한 생활의 기본이 될 교리적 전제(딤전 3:15-16, 6:12-16, 딤후 1:8-12, 2:19, 딛 2:11-14, 3:4-8과 엡 4:20-32, 5:1-4, 골 3:1-5, 8-17 등), 서신 중간에 송영을 삽입한 것(딤전 1:17과 롬 1:25, 9:5, 11:36, 16:27, 엡 3:20-21), 징계에 관한 것(딤전 1:20과 고전 5:3-5), 하와의 유혹(딤전 2:13-14과 고후 11:3), 신명기 25:4의 인용(딤전 5:18과 고전 9:9), 노예에 관한 것(딤전 6:1-2과 엡 6:5-8, 골 3:22-25), 경기의 비유(딤전 6:12, 딤후 2:5, 4:7-8과 고전 9:24-27), 금, 은 등의 여러 그릇들(딤후 2:20과 고전 3:12), 배교의 예고(딤전 4:1과 살후 2:3), 예배를 위한 지도(딤전 2:8-13과 고전 15:34), 주님의 재림에 대한 강조(딤전 6:14, 딤후 4:1-8, 딛 2:13과 고전 1:7, 15:23, 살전 2:19, 3:13, 5:23, 살후 2:1, 8, 빌 3:20), 자신의 주위 환경에 관한 것(딤후 4:9-17과 고전 16:5-8, 골 4:7-13), 지난날에 대한 회고(딤후 1:3-5, 16-18과 살전 1:2-8), 디모데에 관한 것(딤전 1:2, 딤후 1:2-5, 4:9, 21과 고전 16:10, 빌 2:19-20), 누가에 관한 것(딤후 4:11과 골 4:14), 마가에 관한 것(딤후 4:11과 골 4:10) 등의 기사에 현저한 공통점이 있고, 그 외에도 사상적 유사점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A. C. Hervey).10)
⑵ 문체와 용어의 차이, 특히 헤리손의 논지(반대설 ⑵)에 대해 메츠거(Bruce M. Metzger)는 “그의 통계 방식 사용은 근거가 불충분하다.”라고 반박하고 있다.11) “케임브리지의 통계학자 율(Yule)은 논리상 타당한 통계 연구를 위한 기초로서 약 일만 단어의 표본이 필요하다.”12)라고 언명하였다. 물론, “우리는 이것을 목회서신을 연구하기 위해 가지고 있지 않다”13). 그트리(D. Guthrie)는 “숫자에 의한 계산은 바울 서신에서 이용 가능한 한정된 자료로는 주제 문제의 차이, 환경의 차이, 수신인의 차이 등을 고려할 수 없다. 새로운 낱말을 사용한 것은 이러한 모든 차이점 때문인지도 모른다.”14)라고 답변하고 있다.
실제로 용어가 특이한 것은 목회서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에베소서에도 특이한 낱말이 44개나 되어 역시 바울 저작권에 반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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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근거가 되었다. 그 외에도 갈라디아서는 33개, 빌립보서에는 41개, 고린도후서에는 95개, 로마서에는 100개 이상, 고린도전서에는 180개나 되는 독특한 용어들이 있다. 또한, 바울 서신들은 대체로 대필된 것이므로(로마서의 더디오, 고린도전서의 소스데네처럼), 대필자에 따라 문장이 다소 변동된 것도 자연스런 결과일 것이다(J. N. D. Kelly).15)
⑶ 바울의 행적에 관한 사도행전의 기사와 목회서신의 기사가 상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목회서신의 바울 저작설을 반대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생애를 알려 주는 부분적인 재료가 있을 뿐이지, 바울의 전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그 사건들은 사도행전의 기사 이후이며, 바울이 죽기 바로 전에 발생한 것이다. 둘째 것이 가장 일반적으로 용납되고 있다”(D. D. Welt).16)
더욱 자세하게 말하면, 사도행전은 바울의 3차에 걸친 선교 여행과 로마에 투옥된 것으로 종결하고, 그의 순교나 베드로의 후사에 관해서도 일체 언급이 없다. 이와 같은 사도행전의 기사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조화가 잘 되나, 거기에 목회서신을 기록할 시기와 경우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 “만일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일단 석방되어 선교 여행을 하다가 재차 투옥되어 순교한 것이라면, 그 기간에 바울이 침묵했을 리가 만무하다. 따라서,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에게 목회에 관한 교훈을 보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의 제2차 투옥설 여부로 목회서신의 진부(眞否)도 판명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96년경)는 바울에 대해 ‘동방과 서방에 복음을 전하며, 전 세계에 의를 가르치며, 서방 경계에 이르렀다. 통치자들에게 증언한 후, 그의 믿음에 합당한 명성을 얻었다. 이와 같이 그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Corinthians. Ⅴ)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의 서방 경계는 논쟁의 한 주제가 되어 로마라는 설이 있으나(Moffatt), 로마는 당시 대제국의 수도이며, 또 클레멘트 자신이 로마의 시민으로서 로마에서 편지를 쓰면서 그 곳을 서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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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를 서반아로 본다면, 그 곳은 바울이 숙원하던 곳이기도 하고(롬 15:23, 28), 그가 제1차 투옥 중에 석방되어 서반아 전도를 했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무라토리 정경을 들 수 있다. 그 곳에는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를 위해 이뤄진 일들에 관하여 그 앞에서 상세히 편집하였다. 그것은 두 가지 사건에 대한 기록, 즉 베드로의 죽음과 바울이 성(로마)을 떠나 서반아로 향한 일을 같이 생략하면서 상세히 보인 바와 같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바울은 자신을 변호한 후에(행 28장의 기록) 다시 선교 사역에 착수했으며, 두 번째 그 성(로마)에 들어가 그 곳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그 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기록하고, 자신의 처음 변호와 임박한 죽음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Eus. H. E. ii. 22, 25)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외증의 약점은 이레니우스(Irenaeus), 터틀리안(Tertullian: 160-?), 오리겐(Origen) 같은 유력한 교부들의 글에는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증으로서는 바울의 옥중서신(엡, 빌, 골, 몬: 1차 투옥 때 기록)과 목회서신의 차이점들울 들 수 있다. ① 디모데가 옥중서신에는 바울과 같이 있었으나(골 1:1, 몬 1) 목회서신에는 에베소에 있다(딤전 1:2, 3). ② 마가가 전자에는 바울과 같이 있었으나(골 4:10) 후자에는 떠나 있다(딤후 4:11). ③ 데마도 전자에는 바울과 같이 있었으나(골 4:14, 몬 24) 후자에는 바울을 버리고 떠났다(딤후 4:9). ④ 재판 사정이 전자에는 희망적이나(빌 1:25, 2:24, 몬 22) 후자에는 절망적이다(딤후 4:6).
결국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일단 석방되어 바라던 서방의 서반아에 가서 전도하고, 다시 동방으로 가서 전도하면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기록하고, 재차 로마에 투옥되어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후 순교하였다고 볼 수 있다.”17)
⑷ 목회서신에 나타나는 교회의 조직과 제도가 발달된 형태의 것이므로, 목회서신은 바울 시대 이후 약 1세기 말이나 2세기에 쓰여진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목회서신보다 먼저 쓴 것으로 인정되는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 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립보서, 야고보서 등에도 감독, 장로,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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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여집사 등 교회의 조직에 관한 기록이 많기 때문이다(행 14:23, 21:17, 롬 16:1, 고전 1:28, 살전 5:12, 빌 1:1, 약 5:14). “그뿐 아니라, 주후 64년에 교회에 대한 핍박이 공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후에는 교회 조직에 있어서 도리어 바울 시대보다 더 발달하지 못한 지방도 없지 아니하였다”(채필근).18)
⑸ 신학 문제에 대해서는 경건 또는 선행이나 율법 준수가 강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 신학의 근본 문제 곧 믿음을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적 신학 사상이 무시되었거나 거부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 예수(딤전 1:14-15, 2:6, 딛 1:14), 구원의 방편인 믿음(딤전 1:16, 4:2, 딤후 1:5, 3:15), 그리스도의 성육(딤전 1:15, 3:16), 은혜(딤전 1:2, 14, 딤후 1:2, 9, 딛 1:4), 중보자(딤전 2:5), 그리스도의 인성(딤후 2:8) 등 바울의 주요한 관념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목회서신에는 그러한 교리를 근간으로 한 행위 곧 믿음에 따르는 행위를 강조한 것이다. 이 점은 바울의 복음서라 할 수 있는 로마서(처음 몇 장과 12장 이하는 선행에 관한 교훈이다.)나 갈라디아서(5:1-6:10에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에 관한 교훈이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두 서신뿐 아니라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은 교리와 실천에 관한 교훈으로 되어 있다.
특히, 목회서신이 노 사도가 아들(딤전 1:12, 18, 딤후 1:2, 2:1, 딛 1:4)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친밀한 제자들에게 보낸 말기의 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가 신학적 문제를 강조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다만 목회에 임한 제자들에게 그러한 신학을 전제로 한 실천적인 문제를 강조하여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⑹ 목회서신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단 사상, 즉 영지주의는 바울 시대 이후인 제2세기 중엽의 것이므로, 목회서신은 바울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영지주의가 2세기에 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사상이 발전되기 이전에 이미 1세기 말에 대두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탁월한 영적 예지의 소유자인 바울이 이단 사상이 대두한 것을 보고 경계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위의 사실들을 미루어 보아 목회서신이 바울의 작품이라고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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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을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White)는 “우리는 목회서신의 저자는 바울이라는 주장을 견지한다. 그러나 늙은 바울이었다. 참으로 그가 빌레몬서를 기록한 때보다는 훨씬 늙은 그였다.”19)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바울이 목회서신의 저자라고 하는 학자들은 “랑게(Lange: 1802-1884, 독일 신학자), 플루머(Plummer: 1841-1926, 영국 성경학자), 산데이(Sanday: 1918-1920, 영국 신학자), 찬(Zahn: 1838-1933, 독일 신학자), 핀들레이(Findlay: 스코틀랜드 성경학자), 바르트(Barth: 1866-, 스위스 신학자), 라이트후트(Lightfoot: 1828-1889, 영국 신학자), 람제이(Ramsay: 1851-1939, 영국 신학자), 바이스(Weiss: 1827-1918, 독일 신학자), 고데이(Godey: 1804-1878),”20)20) 록(W. Lock),21) 켈리(J. N. D. Kelly),22) 티쎈(Thiessen),23) 웰트(Welt)24),24) 어드만(C. R. Erdman),25) 얼레(R. Earle),26) 메어(F. B. Meyer),27) 그트리(D. Guthrie),28) 헤베이(A. C. Hervey),29) 헨드릭슨(W. Hendriksen),30) 반즈(A. Barnes),31) 모리스(L. Morris),32) 발로우(G, Barlow),33) 로우스투터(W. J. Lowstuter),34) 니콜손(R. S. Nicholson),35) 웸프(C. S. Wemp),36) 박윤선,37) 黑崎幸吉,38) 채필근,39) 이상근40)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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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을 밝혔음.
1) 참조: W. Hendriksen, pp. 4-5. 이상근, pp. 136-137. 특히, 內村鑑三은 바울의 인격과 사상을 미루어 목회서신이 바울의 작품일 리가 없다고 한다(pp. 33, 38-40).
2) 참조: W. Hendriksen, pp. 6-11. F. B. Meyer, p. 133. F. D. Gealy, pp. 360-364. W. Lock, pp. xxx-xxxi. J. G. Gould, pp. 644-645. 이상근, pp.137-138.
3) 참조: F. B. Meyer, p. 133. W. Hendriksen, pp. 23-28. J. G. Gould, pp. 639-640. 이상근, p. 140. 7.
4) 참조 : F. B. Meyer, p. 132. W. Hendriksen, pp. 22-23. 이상근, p. 139.
5) 참조: F. B. Meyer, pp. 133-134. W. Lock, pp. xxi-xxii. W. Hendriksen, pp. 18-19. F. D. Gealy, pp. 364-367.
6) 참조: F. B. Meyer, p. 134. J. G. Gould, p. 643. W. Hendriksen, pp. 1922.W. Lock, p. xvii. F. D. Gealy, pp. 350-360.
7)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신약 목록표로 신약 정전의 성립을 아는 데 극히 중요한 자료이다.
8) 참조 : W. Hendriksen, pp. 29-33. W. Lock, p. xxii. F. B. Meyer, p. 134. A. C. Hervey, pp. i-ii. 이상근, pp. 142-143.
9) 이상근, p. 143.
10) A. C. Hervey, pp. ii-v.
11) in R. Earle, p. 341.
12) 상동.
13) R. Earle, p. 341.
14) in R. Earle, p. 341.
15) J. N. D. Kelly(in J. G. Gould, pp. 644-645).
16) D. D. Welt, p. 14.
17) 참조: A. C. Hervey, pp. viii-xviii. W. Hendriksen, pp. 39-41. D. E. Hiebert, p. 340. D. D. Welt, pp. 15-16. F. B. Meyer, p. 135. J. G. Gould, p. 638. W. J. Lowstuter, p. 1276. 채필근, pp. 3-6. 이상근, p. 141.
18) 채필근, p. 14.
19) in 이상근, p. 146.
20) in 채필근, p. 10.
21) W. Lock, p. xxxi.
22) J. N. D. Kelly(in R. Earle, p. 342).
23) in 이상근, p. 146.
24) D. D. Welt, p. 15.
25) C. R. Erdman, p. 1117.
26) R. Earle, p. 342.
27) F. B. Meyer, p. 135.
28) D. Guthrie(in J. G. Gould, pp. 638-639).
29) A. C. Hervey, p. viii.
30) W. Hendriksen, p. 33.
31) A. Barnes, p. 1123.
32) L. Morris, p. 325.
33) G, Barlow, p. 1.
34) W. J. Lowstuter, p. 1276.
35) R. S. Nicholson, p. 565.
36) C. S. Wemp, p. 603.
37) 박윤선, p. 455.
38) 黑崎幸吉, p. 249.
39) 채필근, p. 16.
40) 이상근, p. 146.
출처: 최세창, 목회서신‧빌레몬서(서울: 글벗사, 2002년 2판 2쇄), pp. 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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