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 성탄(聖誕)

함창석
  • 1210
  • 2017-12-08 21:12:26
크리스마스(Christmas)

크리스마스(Christmas)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기념일로 성탄대축일이다.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의 의미한다. 라고 쓰는 경우는 X는 그리스어의 그리스도(크리스토스) XPIΣTOΣ의 첫 글자를 이용한 방법이다.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 이탈리아에서는 나탈레(Natale), 독일에서는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고 한다. 또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 데이>, 그 전야를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한다.

『신약성서』에는 마리아의 처녀 회임으로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날이 언제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 교도는 1월 1일, 1월 6일, 3월 27일 등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였다. 크리스마스가 고정되고 본격적으로 축하하게 된 것은 교황 율리우스 1세(재위 337~352)때이며, 동세기 말에는 그리스도교 국가 전체에서 이날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정착된 시기는 서방교회에서 4세기 중반, 동방교회에서는 5세기 말로 추정된다.

유럽사회는 하루해가 가장 짧았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점으로 하여 농경신인 사투른(Saturn)과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숭배하는 축제가 거행되었다. 로마인이나 게르만인 사이에는 동지 제사가 성대하게 행하여졌는데 창고에는 수확된 곡물이 가득 차 있다. 목초가 부족한 겨울을 대비해서 도살한 가축의 고기도 충분히 저장되어 있다. 1년의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는 시기, 사람들은 이어서 찾아올 식량부족을 잊고, 먹고 마시는 성대한 축제를 행하였다. 생명의 은혜를 준 태양의 힘을 약화시키고, 겨울을 가져올 자연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공물을 바치고, 풍작ㆍ풍요를 기원해서 불을 피웠다.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는 사투르날리아라고 불리는 농경신 사투르누스의 제사가 행하여졌다. 이 기간에는 집집마다 밝게 불이 켜지고, 상록수가 장식되었으며 선물이 교환되고 남자들은 여자의 의복이나 동물가죽 등을 두르고, 보통은 금지되어 있던 행위가 행하여졌는데 주인과 노예가 자리를 교환하는 소동도 행하여졌다. 이와 같은 로마의 사투르날리아와 게르만의 율 축제의 시기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로서 선택되었다. 교회는 기존의 제일을 가능한 한 이용할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트라스교는 그리스도교의 강적이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이보다 앞서 유사점이 많은 미트라스교와의 습합을 고려, 321년에는 매주 휴일을 <태양의 날(dies solis=sun day)>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597년,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영국 전도를 개시했을 때, 크리스마스는 로마교회의 3대 축일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이듬해 크리스마스에 1만명 이상의 앵글로 색슨인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약 1세기 후, 베다는 이 날이 원래 <어머니들의 밤>이라고 불리며, 어머니인 여신의 축일이었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개종해도 관대한 교회의 자비에 의해서 죄없는 이교의 축제를 즐겼던 것이다. 그들은 상록수로 장식하고 율의 통나무를 태우고, 가면극이나 주술적인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이와 같이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율과 탄생절의 습합으로서 성립하고, 앵글로 색슨력은 이날부터 신년을 기산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부활한 것은 대영제국의 위광이 가장 확대된 시기였다. 새로운 크리스마스에서는 이웃사랑, 자선이 중시되고, 종교심의 부활에 의한 종교적 측면의 보정이 행하여지고, 그 위에 과거의 화려한 축제의 관습이 빛을 더했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어린이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의 축제가 된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 카드가 도입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부활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정찬(디너)이 서민 가정에 진출하였는데 오늘날의 크리스마스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단순하고 율동적인 노래인 캐럴은 원래 15세기에 영국에서 황금기를 맞게 되나, 종교개혁과 뒤이은 개신교의 영향으로 캐럴의 발전이 둔화되어 미약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던 중 19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베들레헴의 작은 성(O Little Town of Bethlehem)」·「오 성스러운 밤(O Holy Night)」 등이 이때 작곡되어 현재까지 계속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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