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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 남 탓, 신 탓
관리자
- 2021
- 2017-12-26 22:51:16
- 시작하는 말
한동안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하는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끼어든 승용차 때문에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내 탓이오’라고 쓴 스티커가 붙어 있었습니다.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왜 내 탓이야? 네 탓이지. 앞 유리에 붙여야지.” 하고는 아내와 함께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이나 단체나 문제가 생기면 으레 남 탓을 합니다. 남 탓을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욱 힘들게 할 뿐입니다. 남 탓이 60%이고, 환경 탓이 35%이고, 내 탓이 5%라고 할 때, 제일 많이 신경 써야 할 것은 남 탓 60%가 아닌 내 탓 5%입니다.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입니다. 사람은 안 볼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탓 5%가 술주정이건 잘난 척이건 고치지 않는 한, 계속 문제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 시험에 대한 핑계, 그리고 시험의 원인과 결과
야고보 사도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시험을 받을”의 헬라어 페이르조메노스(πειρζόμενος)는 ‘더 큰 인물로 만들거나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련 또는 연단을 받는다는 뜻과 인간을 타락시키거나 파멸시키려는 사단의 유혹을 받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유혹에 넘어가거나, 죄와 타락과 불행에 대해 책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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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합니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며, 신 탓이라고 하는 책임전가는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죄에 대해 문책하셨을 때, 아담이 한 대답이 창세기 3:12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죄와 그로 인한 두려움과 수치는 자기 탓이 아니라, 아내 하와 탓이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런 여자를 아내로 주신 하나님 탓이라는 것입니다. 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와를 보고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라고 환호성을 질렀던 그 입으로, 하나님과 하와를 싸잡아 탓하며 원망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아내 하와도 별로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창세기 3:13을 보면, “뱀이 나를 꾀므로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기 탓이 아닌 뱀 탓이고, 그런 뱀을 창조하신 하나님 탓이라는 것입니다.
포티트(G. Poteat)는 “아담과 하와로부터 모든 인간에 이르기까지 시험에 굴복한 핑계는 한결같이,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이다. 내가 아니라 운명이나 환경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죄로 인한 고난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본성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환경이나 운명이나 본성 등을 탓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책임 전가요 원망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그 유혹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처럼 말하여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유혹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헨리(M. Henry)는 “모든 도덕적 악은 책망 받아야 할 인간의 내부의 어떤 무질서에 기인되는 것이고, 지혜나 능력이나 예절이나 의지의 순수성의 결핍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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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본질을 소유하셨으므로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않으신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본질 때문에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게 하는 시험을 하시지 않는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와드(R. A. Ward)는 하나님의 전능성은 악에게 침해될 수 없고, 오히려 전능성과 성육에 의해 인간이 당하는 시험을 아시고, 시험 당하는 자를 도우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타락과 멸망으로 이끄는 유혹에 대해 무관하다고 한 야고보 사도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혹인 시험의 원인이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이며, 외부가 아니라 자기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욕심(에피튀미아스, ἐπιθυμίας)이 악한 것인가, 선한 것인가, 중성인가 하는 것입니다. 포티트(G. Poteat)는 “불교의 교훈은 욕심을 악한 것이며,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 교리가 아니다.…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범죄하도록 시험하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이 모든 천성들인 욕심 또는 욕망 등은 선한 것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욕심을 잘못 지도하고,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남용할 때, 끌려 미혹되어 악한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욕심이 하나님의 창조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욕심 자체는 선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본래 선하고 좋은 것이었던 욕심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섭리를 이탈하여 남용되거나 오용될 때, 죄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식욕이나 성욕 등은 본래 좋은 것이며, 삶에 필요한 것이지 악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욕심의 대상과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신령한 은사와 능력과 은혜를 위한 믿음과 기도의 욕심과 사랑을 위한 욕심을 부려야 합니다. 보다 더 나은 실력을 위한 욕심, 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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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실적을 위한 욕심, 보다 더 많은 사랑을 하려는 욕심은 부리면 부릴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잘못된 욕심으로 인한 시험과 범죄와 타락의 과정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결정적 요인은 창세기 3:4 이하에 잘 나타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따먹었지만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커녕 타락한 존재가 되어 낙원을 상실하였고, 선악의 지식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완전한 것도 아닌데다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할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제대로 걸려 든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오한 역설적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이 피조물임을 망각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욕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가 지배해야 할 사단의 유혹의 소리를 복종하게 했습니다. 이 원죄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이자 인간 이하로 전락하려는 자기 비하입니다. 원죄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인 교만은 정답이 아닙니다. 원죄란 교만이자 자기 비하입니다.
이런 현상은 모든 인간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회개하고 나를 믿고 말씀을 순종하라.”라고 하나, 사단은 인간에게 “네가 제일이고, 선이고, 정의이다.”라고 합니다. 실상, 사람들은 자기 잣대가 하나님 앞에서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인 것처럼, 자기 잣대로 모든 것을 재는 나쁜 습성이 있습니다. 자기 잣대에 맞지 않고, 길거나 짧은 사물이나 사람은 다 틀린 것이며 잘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교만과 천한 습성 때문에 오판해서 자신은 물론, 남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담으로 대표되는 인간은 시험을 받게 된 원인으로서의 욕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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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하나님이나 타인이나 환경에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철저하게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책임을 추궁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욕심에 끌려 미혹됨으로써 받는 시험의 결과에 대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욕심이 죄가 아니라, 죄의 발단이 된다는 뜻입니다.
“죄”의 헬라어 하마르티안(ἁμαρτίαν)은 활쏘기에서 나온 말로 표적에서 빗나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죄 곧 하마르티안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분에 맞는 언행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부모답지 못한 것이 죄이고, 자녀가 자녀답지 못한 것이 죄이고, 정치인이 정치인답지 못한 것이 죄이고, 직원이 직원답지 못한 것이 죄이고, 임원이 임원답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죄 곧 하마르티안이란 신분에 안 맞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신분에 안 맞는 언행을 하는 것입니다.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것은, 죄가 기세가 등등하여 왕성하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 죽음에 이르게 하고, 멸망의 심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 맺음말
문제나 시험을 해결하려면 남 탓이나 환경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죄와 죽음과 멸망으로 이끄는 사단의 시험인 유혹에 대해 남 탓이나 하나님 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않으시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시험을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그런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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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서 주신 좋은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떠나 남용되거나 오용됨으로써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되고, 영육의 죽음과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4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야고보서 1:13-15)
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