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 절약(節約)

함창석
  • 1057
  • 2018-01-13 23:24:35
절약(節約)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6:11-13)

절약은 오늘의 씀씀이를 아껴서 내일에 대비하는 생활의 지혜이다. 節用과 儉約의 복합어로서 우리말의 ‘아껴 씀’과 같은 뜻이다. 사물을 귀중히 여겨 함부로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손실을 입지 않도록 힘쓰는 알뜰한 행위까지를 포괄한다. 또한 유형의 물건 외에도 무형의 용역 및 시간 등을 포함한다.

‘절(節)’이란 한계를 두어 억제하는 것이며, 한계를 두어 억제하는 데에는 반드시 법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 법식이 절용의 근본이라 하였다. 따라서 의식주는 검소로써 법식을 삼아야 마땅하고 제사와 손님에 대한 대접에도 일정한 법식이 있어야 하며, 이를 넘어서면 지출에 절제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절약은 구두쇠 같은 맹목적인 인색함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사물을 사용하되 법식에 맞추어 낭비와 방종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절약의 결과는 저축으로 표현되며, 절약이 유량(流量)의 개념이라면 저축은 저량(貯量)의 개념으로서 서로 인과관계로 연결된다.

절약의 능동적인 동기는 사회규범과 생활관습 등에서 유래된 정신적 지침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고, 절약의 결과 얻게 되는 저축은 그 구체적인 목적이 된다. 오늘날 이러한 저축은 자녀교육과 노후생활, 병이나 불시의 재해, 주택구입과 같은 미래생활에 대비하려는 적극적인 동기를 나타내고 있다.

절약관으로 볼 수 있는 청빈사상을 행동적으로 승화시킨 예가 비우사상(庇雨思想)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향을 피우지 않으며 초를 밝히지 않고, 잔치를 베풀지 않으며 성악을 듣지 않고, 색깔이 있는 옷을 입지 않으며 가재에 칠이나 조각을 하지 않고 베옷으로 소식(素食)을 하는 생활철학”을 뜻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눅16:1-3)

오늘날은 경제의 발전을 자본축적에 두고 생산과 소비에 있어 경제행위의 합리화를 추구해 효율적인 이익달성에 목표를 둔다. 따라서 자본축적과 합리적 경제행위는 근검절약에 의한 저축정신과, 낭비를 비윤리적이며 반도덕적으로 보는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결합해 자본주의 정신의 기본 사상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행위의 합리주의와 능률우선주의는 개인주의의 무절제한 영리활동에 치중되고 기독교정신과 우리 민족의 전통정신까지 약화시키게 되었다. 거기에 독점자본주의에 입각한 상업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절약보다 소비가 미덕으로 표현되는가 하면 인간생활의 행복을 대량소비서 찾기까지 한다.

절약생활에 의해 비축된 물자를 실물로 대여해 원금과 이자를 받아 재산을 모으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의 보(寶)는 불교가 도입된 이래 사원에 시납된 금전, 곡식을 축적하여 대부에 이용함으로써, 이를 자본화하고 사원의 유지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서민들의 대부수단이던 장생고(長生庫)도 마찬가지였다.

국민 대중에 널리 퍼져 있던 계(契)는 공동사회적인 조직이었다. 신라의 가배(嘉俳) 또는 향도(香徒)가 계의 기원이라고 하며, 고려에는 동년계·동족계·문무계 등으로 널리 조직되어 사회의 절약생활과 연결되는 축재의 수단으로서 조직체를 형성하여 우리 민족과 함께 오랜 역사를 가지고 변모해 왔다.

환곡제도는 정부나 민간이 춘궁기에 관리양곡을 대비하였다가 추수기에 상환 받아 빈민을 보호하고 흉년과 병란에 대비하는 비축수단이었다. 이는 바로 고구려의 진대법으로서, 고려에는 흑창이라 하였으며, 조선에는 의창으로 개명되었으나 차츰 국가재정으로 활용되어 강제적 비축수단이 되었다.

재물이 풍족한 집안이라도 생활 속에서 절약의 중요성을 가르쳤고, 재욕에 빠지면 부모형제의 의를 갈라놓고 가문과 마을 인심까지 잃게 되어 일신을 망치게 된다고 보았다. 결국 우리 조상들의 재물관은 물질보다 정신을 보다 우위에 두어 근검절약생활에서 오는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였다.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셔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 하리이다.(창41: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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