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제 역활하기 위해서 하나님앞에 정직히 서는 일이 우선 해야 할 일이다.

현종서
  • 1342
  • 2018-01-21 01:20:41
힛틀러가 국가사회주의를 하려고 획책할 때, 독일교회 지도자들은 힛틀러가 독일의 메시야라도 되는 양 교회의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 그를 지원하는 모양세를 보일 때, 바르트, 본 회퍼등은 교회의 본래의 길, 어느권력기관이 그의 머리가 아니라 오직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의 머리요 주인으로 인정하는 “바르멘 선언”을 하였다. 그중의 일부를 아래에 소개한다.

  1. "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大人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 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 : 25 - 26)


교회 안의 다양한 직책들은 어떤 직책이 다른 직책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전 공동체에 위탁되고 명령된 봉사를 수행하기 위한 직책이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이 봉사를 떠나서 통치권을 부여받은 특별한 영도자를 허용하거나 허용하게끔 할 수 있고 또 해도 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그릇된 敎說을 배격한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공경하라."(벧전 2 : 17)


성서는 우리에게 말한다. 국가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다음과 같은 과제 즉 교회도 속하여 있는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세상에서 인간의 통찰과 능력의 분량에 따라 권력으로서 위협하고 권력을 행사하면서 정의와 평화를 보호할 과제를 지닌다. 교회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분을 경외하면서 이러한 그 분의 섭리의 은혜를 인정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계명과 義 그리고 통치지들과 피통치자들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교회는 하나님게서 만물을 유지하시는 수단인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고 이에 복종한다.

우리는 마치 국가가 그 특별한 위임을 넘어서서 인간 생활의 유일하고 전적인 조직이 되고 그래서 교회의 사명까지도 성취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그릇된 敎說을 배격한다. 또 우리는 교회가 그특별한 위임을 넘어서서 국가적 형태, 국가적 과제 및 국가의 위엄을 취하고 그리하여 자신이 유일한 국가의 기관이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그릇된 敎說을 배격한다.

우리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교회가 자기 문제 가지고 해결해 달라고 사법기관을 찾아 간다. 그 사법기관에서 인정받으려고 고비용을 들여가면서 판결을 요청한다. 그 판결이 설령 옳았거나 틀렸다고 하자. 그러면 지은 죄가 인정되거나 또는 지은 죄가 없어져 의로와 지는 것인가? fact와 그의 대한 진정한 심판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앞에 설때 까지 유보될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기관이며 오직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하는 단체이다. 그리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그 사법기관위에 그리스도가 계시며 정부기관위에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증거해야 할 사명이 있다. 제 구실을 못하니 그리스도의 몸된 기관에 정부가 세금까지 먹이려 한다. 대상이 교회가 아니라 목회자라 한다.그러나 국가기관 세무서는 그 목회자의 소득 내역과 쓰임세, 나아가서는 교회의 경상비 사용까지 보고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그들이 정한 세금을 바쳐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관이 국가의 한 기관으로 전락되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회주의 국가, 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모양세이다.

교회가 교회 구실을 하려면 영성회복과 영권회복 교권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세속 법정이전에 양심의 법정, 그 보다 더 엄정한 하나님의 법정에 설 자들임을 알아야 하고 저 속권을 가진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법으로 예언자적인 발언을 해야 하는 게 교회의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교회 일을 가지고 사회법정에 가지 말라 하며 그러한 자는 목사직을 박탈해야 한다 말할 수 있는 배경에는 영적인 지도자는 양심의 법정과 하나님의 법정앞에 먼저 서는 자이기에 하위 법정 까지 가지 말라는 것이 원래의 취지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법정 투쟁하기보다 남이 나를 정죄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자기를 정죄하자 남이 나를 벌주기 전에 내가 먼저 내게 벌을 주자. 이런 풍조가 살아날 때에 우리 교회는 자연히 정화되고 영권이 되살아나고 교권이 되살아 날 것이라고 믿는 다.

내가 그리스도에게만 순종하겠다 아니한다면 저 악한 권력자의 잘못도 지적할 수 없을 것이다. 미친 운전사의 운전을 멀거니 바라보며 동반 자살을 하게 될 것이다.

군사 독재시절에 민주화를 외치던 세력들이 이젠 민주화가 되어서 벙어리가 되었는가. 군사 독재보다  무서운 공산독재, 아니 광신 봉건 독재치하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내 동족들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그들을 건져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들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불의한 권력과 위장 타협으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교회는 교회의 본연의 업무를 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앞에 바로 서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을 까?

부흥을 말하기 전에 회개부터 하자! 통일을 말하기 전에 회개부터하자. 화해를 말하기 전에 회개부터 하자. 평화를 말하기 전에 회개부터 하자. 예수님은 위선을 가장 싫어하시고 책망하시었다. 진정회개하는 자라면 친구가 되어 주신다. 부흥과 화해와  평화는 그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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