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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좇는 자의 보상(마 19:27-3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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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23 20:29:25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마태는, 이어서 주님 예수를 좇은 사람들의 보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는 마가복음 10:28-31과 누가복음 18:28-30에도 기록되어 있으나① 약간의 차이와 가감이 있다.
이 기사는 【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로 시작된다.
“보소서 우리가”(ἰδού ἡμείς)는 둘 다 강조하는 성격을 띠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ἡμείς)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만 하고 순종하지 못한 부자 청년 관원(19:16-22)과 대조되는바 자기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는 결단을 한 자신들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는 제자들이 아직도 영적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가치를 우위에 두고 있고, 또한 보상에 대한 전적 확신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쩌면 말이 난 김에 보상을 다짐받을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때나 장삿속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 마태는 【28】“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라고 하였다.
마가복음에도 “내가 ‘진실로’”(아멘, ἀμήν: 5:18의 “진실로”의 주석을 보라.) “너희에게 이르노니”로 시작하여 강조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ἐν τῇ παλιγγενεσίᾳ)의 ‘새롭게 됨’(팔링게네시아, παλιγγενεσίᾳ)은 “πάλιν(다시)과 γένεσίς(낳음)의 합성어(딛 3:5)로 ‘중생’, ‘새 세상’ 등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3:3의 γεννηθῇ ἄνωθεν(거듭 낳음)과는 다른 표현이나 사상은 분명히 공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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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을 밝혔음.
1) 저자의 마가복음 10:28-31의 주석과 누가복음 18:28-30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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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들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을 새 피조물(καινὴ κτίσις)이라 하였고, 헬라의 신비종교(mysteries)에서는 목욕 의식을 마친 신입자에게 ‘재생’ 또는 ‘갱생’이란 말을 사용하였다(Swete).②))(딛 3:5의 주석).
슈바이처(E. Schweizer)는 “<다시 남>의 표상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에 소급될 수 있다. 이 철학은 세계 대 화제를 기대했는데, 그 화제 다음에 새 세상이 또다시 계속해서 나타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희랍어를 말하는 유다의 작가들은 이 표현을 고난의 시대(Josephus)가 지난 다음에 이스라엘의 재건을 나타내는 데, 또는 대 홍수(Philo) 이후에 땅의 재건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다. 이것을 나타내는 아람어나 히브리어 낱말은 없다. 따라서 마태오는 이 말을 희랍적인 유다의 언어 용법으로부터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오는 세상(막 10:30)에 대한 언급을 이미 선취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말이 새로운 창조(따라서 1QS 4, 25)에 대한 의식적인 표상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마태오는 그 시대의 종말에 대해서 말하고 있긴 하지만(24:3의 주석 참조),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뒤의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심판하리라”를 보아 재림 때의 최후 심판과 직결된 인간과 우주의 대 변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참조: 사 65:17, 66:22, 벧후 3:13, 계 21:1-5). 인간과 우주의 대 변혁은 “우주적인 사건으로서의 성도의 부활과 만물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A. Barnes, 黑崎幸吉).
“인자(8:20의 주석을 보라.)가 자기 ‘영광’(독세스, δόξης: 4:8의 주석을 보라.)의 보좌에 앉을 때”는,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 세상에 대한 최후 심판을 하실 때라는 뜻이다(고후 5:10).③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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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n W. Lock.
3) 저자의 고린도후서 5:10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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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계 21:5)라고 하였다. 벵겔(J. A. Bengel)은 “그때에는 둘째 아담이 만왕의 왕 노릇하시고, 부활로 인한 소우주인 사람과 다시 지음 받은 대 우주인 온 세상은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에 대해, (1) 열 두 사도가 심판 때에 판사직을 비롯한 권세와 영광의 자리에 앉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높임을 받을 것이라는 설(A. Barnes, A. L. Williams & W. J. Deane), (2)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에 거듭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를 심판할 것이라는 설(J. Calvin, A. Clarke),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심판하실 때에 열 두 제자가 유대인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설(고전 6:2)④ 등이 있다.
전후 문맥상 (3)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의 보상에 이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보상을 말씀하신 것에 대해, 마태는 【29】“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라고 하였다.
“내 ‘이름’(오노마토스, ὀνόματός: 6:9의 주석을 보라.)을 위하여”가 마가복음에는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막 10:29)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눅 18:29)로 되어 있는데 문제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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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J. A. Bengel, R. C. H. Lenski, “Bruce, Plummer”(in 이상근),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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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없다. 그 이유는 이제까지 고찰해 온 결과 예수님과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사실을 의미하는 것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토”(막 10:29)가 누가에는 생략된 대신에 “아내”가 첨가되었다.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는, 문자 그대로 현세에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녀나 전토를 여러 배 받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의미에서 대가족(갈 6: 10, 엡 2:19)⑤인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영적‧물질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의 “영생”은 19:16의 주석을 보라.
결론적인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태는 【30】“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고 하였다.
누가복음 13:30에도 나오는 이 구절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왔다. (((1) 전자는 베드로 이하 신도들이고, 후자는 그 밖의 신도들이라는 설(E. P. Gould, “Plummer, Cranfield”⑥), (2) 전자는 유대인이고, 후자는 이방인이라는 설(A. Clarke), (3) 전자는 바리새인이고, 후자는 죄인 및 세리들이라는 설, (4) 전자는 부자이고, 후자는 가난한 자들이라는 설 등이 있다.))(막 10:31의 주석).
일반적인 원리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이 말씀은 심판의 최종적 기준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으며, 그 마지막 심판은 인간적인 판단을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그때에는 전후와 상하가 뒤바뀌는 문제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것 같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마 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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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자의 갈라디아서 6:10의 주석과 에베소서 2:19의 주석을 보라.
6) in 이상근.
※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 1판 1쇄), pp. 5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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