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위에 어른이 계시다하며 지내 왔는 데

현종서
  • 1519
  • 2018-01-29 03:20:43
후배들속에 신뢰가 가는 스승이 있는가?

교회내의 민주화운동속에는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를 빼버린 민주주의로서 민중-진보-민주 주의라 하면서 실상은 공산주의를 주장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youtube.com 통해서

*[뉴스타운TV] 기독교내의 좌편향 현상과 침투 좌파의 실체 -손상윤의 나라 사랑과 정의를 노래하리라 제39회-

*[뉴스타운TV] 방북 목회자들 성접대 실상과 교회내 종북들의 행태와 기생충 논란 -손상윤의 나 사랑과 정의를 노래하리라 제43회-

를 꼭 시청바랍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 실존경험에 근거를 둔 민중신학이라면 제 아무리 그럴듯하다 해도 진리라 말하기 어렵다.

지난날 김홍기 박사가 군사독재와 싸운 한국의 민중신학을 소개하면서 웨슬리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웨슬리적 사회성화”로 교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특히 한신은 칼 바르트 신학을 기초로 하여 기독교회의 사회적 관심과 역할에 관심을 두고 신학을 하는 과정속에서 정치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맑시즘에서 사회분석을 이용하여 현 정치사회속에 억압당하고 있는 기층민에게 자유를 안겨주려 노력한 남미의 정치신학을 많이 배우고 한국의 군사정부사회에서 그 상황을 을 벗고자하는 민주화운동에 배후 이론으로 삼은바 있었다.

그런 신학을 한 이들이 한 때 소위 민주 정권탄생하면서 중요한 자리에 대거 기용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운동권 세력중에서 “자유”를 빼버린 민중-, 진보-, 민주화운동을 주장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유민주 사회를 전복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전위병 노릇을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사상운동이 신학교에 교묘히 들어와 진보신학이라는 이름하에서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해체하는 운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 대속의 진리와 와 부활과 영생의 복음을 없애려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 오직 예수를 통한 구원” 이 아니라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여 산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개라 하면서 기독교의 복음도 그 길들중에 하나로서, 타 종교를 믿어도 기독교가 가르치는 구원을 받고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는 양 가르치는 단계에 이르렀고 그것이 아주 고도록 발달된 신학의 이론인 듯 호도하였었다.

하지만 루터가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종교개혁의 삼대원리,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외쳤고 그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칼빈과 쯔윙그리, 웨슬리를 거쳐 개신교 신학원리로서 서구 문명사회 건설을 이룩해 왔던 것이다.

종교개혁 정신이 시들어가자 하나님께서는 아메리카 신대륙에 대각성운동을 여러 차례 일으켜 주셨고. 또 오순절운동을 통해 기독교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일어났고, 대형 교회도 생기고 세계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었다.

그러나 서구문명사회가 문화가 발달하고 경제수준이 높아졌으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물질과 명예와 권세를 탐하는 일에 사용하자, - 즉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일에 등한하다보니 -그들의 관심이 현세적 욕망추구에 머물고 음란 문화를 양산하고 다시 옛 민속 종교와 부대문화를 부활시키고 또는 네오 맑시즘에 포로가 되어 자신들의 정치력과 선전 문화로 인간중심의 이상국가를 만들겠다는 무리들이 나타났다.

이단들이 기독교회의 대형교회들이 취한 문화선교를 흉내내어 기독교인의 기본체험-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경건생활고 성결추구의 삶이 없이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인정받는 삶,사회에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을 통한 교세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든 시대에 도달해 있다.

기독교의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가?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무엇이 바른 신앙인의 삶의 모습인가? 이런 때 일수록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 운동도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성령께서는 오늘날의 교회들에게 어찌하라 말씀하시는 가? 보수적 방식? 진보적 방식? 북한주민과 직접 또는 북한 권력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우리에게는 고정된 방식이 따로 있을 까? 기도하면서 그때 그때 가장 적절한 방식이 무엇일는지 찾아가면서 창조적인 방식으로 해야 하는데 그게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안심하고 믿고 따를 만한 교회 지도자는 과연 누구일까? 대형교회 목회자? 교단의 최고위직? 어떤 수도자? 어떤 교회의 원로? 어떤 학덕이 높은 학자? 신문 방송에 많이 오르내리는 이? 기라성 같은 교회지도자들이 떠난 자리를 메꾸어 줄 인물들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는가?

옛날 도산 안창호는 인물이 없다고 탄식하지 말고 네가 바로 그 인물이 되라고 말씀을 하였는데--- 아 한국교회여, 오늘의 이 시국을 바르게 진단하고 교훈을 주며 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인물들이 요청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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