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사와 간음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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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16 06:58:24
율법사는 많고 많은 죄 가운데 왜 하필 간음죄를 택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야 율법사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런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1. 간음죄는 쉽게 조작 가능한 범죄이다.
간음죄는 밝히기가 쉽지 않다. 현장에서 잡히지 않는 한은 간음죄는 입증할 수 없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간음을 행한 이들이 내가 간음을 했노라고 스스로 밝히지는 않을 테니말이다. 간음죄를 밝히기 어렵다는 것은 반대로 조작하시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내가 누구와 간음을 했노라 하면 그 것에 대한 무죄를 밝히기 또한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만 간음을 했다 하면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한 진위는 밝히기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율법사는 한 여인에게만 돈을 주기로 하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것처럼 연기해줄 것을 요구하면 다른 조작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 된다. 누가 스스로 간음을 했다고 인정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것도 여자가 말이다. 그냥 율법사에 의해 끌려가기만 하면 그렇게 조작이 되는 것이 간음죄인 것이다.

2.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영적인 간음죄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스스로 자신의 범한 잘 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를 하곤 한다. 곧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영적으로 간음의 죄를 범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실상은 돈과 권력을 쫓는다. 이것이 영적인 간음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돈을 사랑하지 말라 하지만 자신은 돈이 전부인 듯한 삶을 살아는 것 또한 영적인 간음이다. 백성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백성들을 이용하는 것 또한 또 다른 간음이다.
현실(육체)적인 간음은 입증하기 어려운 관계로 실재는 흔하지만 법으론 흔하지 않은 죄이다. 그와 같이 영적인 간음 또한 너무도 흔한 일이지만 세상의 법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죄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외식주의 또는 이중적인 삶이란 표현을 하게 된다.
예수님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되 이 영적인 간음인 외식적인 믿음의 삶을 꾸짖으셨다. 곧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독사의 자식은 음탐하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른 또 다른 실재의 모습을 갖고 있는 이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율법사는 조작을 통해 예수님을 시험해 넘어트리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율법사들의 간음죄 조작 행위를 통해 지금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죄(영적 간음)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려 하셨던 것이다.

3. 율법사들의 이러한 외식적인 행위(영적인 간음)가 드러난 것이다.
"너희중 죄없는 이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들이 외식적인 행위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 외식적이라는 것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았다는 이 여인은 조작되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조작은 거짓이자 외식이며 또 다른 간음인 것이다.
물론 율법사들이 자신의 영적인 간음을 인정한 것은 아니리라. 다만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어쩔수 없이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상황이 되어졌다는 것이며 스스로 조작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율법사 중 돌을 들어 그 여인에게 던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그것에 대한 반증이다.
스데반 집사의 경우를 살펴 본다면 그들이 얼마나 율법적인 열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수가 있다. 율법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도 망설임 없이 행하였었다. 그런데 어째서 진짜 간음한 여인이라면 이 여인에겐 돌을 던지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는 갑자기 양심적이 되어 돌을 던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 여인에겐 간음죄가 없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4. 왜 하필 간음한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을까?
당시 사회는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 관습이 다분했다. 그러나 남성우월주의가 여성을 노예처럼 대하거나 짐승처럼 대하였다는 뜻은 아니다. 비록 사회는 남성우월적이었지만 가정은 극히 여성(어머니)중심적이었다. 성경도 남성우월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 여성(어머니)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이 된다. 그러기에 여성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보호대상자이거나 우선대상자였다. 남자가 힘이 있다고 여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었다.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자는 남자 답지 못한 가장 머저리 같은 놈인 것이다.
또한 여자는 같은 죄를 지었다 하여도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감형의 대상이 되며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러한 여자에게 아무리 율법이라 하여도 자세한 전후 사정도 살피지 않고 율법사의 말만 듣고 예수님이 모세의 법을 따라 돌로 치라 하였다면 그것은 율법적으론 문제가 없다하여도 남자인 예수님에겐 치명적인 이미지 추락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사도 아니지 않는가? 남자라 하여도 율법사라면 율법사라는 직위 때문에 남자가 행하지 말아야 할 행위가 아니라 직업적으로 어쩔수 없는 일로 용납이 되는 것이다. 더더욱 여인을 돌로 치라 하였다면 로마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기에 로마의 법을 어긴 범죄자가 되는 것이었다.

5. 양심을 버리고 율법사가 돌을 던졌다면...
이상과 같은 이유를 들어 만약 율법사들이 돌을 내려 놓지 않고 여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이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를 상상해 보자. 만약 율법사들이 돌을 들어 여인에게 던졌다면 말이다.
여자이겐 이제 돈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가 되었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방어적 수단으로 율법사들의 조작을 폭로하였을 것이다. 율법사들은 여자가 간음한 것으로도 부족하여 거짓말로 율법사인 자신들을 말도 안되는 말로써 모함을 한다며 여인을 희생물 삼고 위기를 모면하려 할 것이다.
간음의 현장은 율법사와 여인밖에 모르는 곳이며 간음을 하지 않았다고 입증해 줄수 있는 증인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6. 군중들의 선택?
이 때 중요한 것은 그 주변을 둘러 사고 있는 군중들이다. 과연 군중들은 간음의 현장에서 이 여인을 잡아 왔다는 율법사의 말과 이 모든 것은 율법사들에 의해 조작되다는 여인의 말 중 누구의 말을 더 믿기 쉬울까? 당연 율법사가 군중들의 신뢰를 얻기에 모든 것이 유리한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나서서 이 여인의 죄없음을 입증해 줄 수도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꼼짝없이 이 여인은 율법사가 권한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간음한 여인처럼 이끌려 왔던 조작 연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간음을 하지 않았지만 이젠 실재로 간음죄로 죽게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제 아무리 나는 죄가 없다. 모든 것은 율법사들이 조작한 것이며 나는 돈 때문에 그리 했다 한들 누가 이 여인을 믿어 주겠는가?
율법사가 모세의 법을 따라 돌을 들었으니 이젠 여인이라는 것도 동정표가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군중들도 알고 있다. 인정보단 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더군다나 그 법이 모세의 법이라면 유대인들에겐 더 이상 타협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7. 군중 속에서 안 아이가 소리 지르며...
"내가 저 아줌마 알아요. 저 아줌마 저 시장에서 공연하는 아줌마예요? 제가 여기 오기 조금전 저 시장골목에서 어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는 걸요? 난 아줌마가 오늘 여기서 공연을 하는 줄 알았어요. 아줌마 너무 연기를 잘해요 짱이예요?"
"그래, 네가 나를 아니? 그래 맞아 내가 그 시장 광장에서 공연하는 아줌마야! 네가 잘도 나를 기억하고 있구나!" 그러자 여기 저기에서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그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 보더니 아는 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니 군중들은 오히려 율법사의 말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을 하게 될 것이며 상황은 급반전을 하게 될 것이다.
"정말 이 여자가 간음하다 잡힌 것이 맞는가? 그 현장이 어디인가? 그리고 이 여자가 간음했다는 데 그럼 그 남자는 어디 있는가? 그 남자는 왜 잡아 오지 못한 것이냐?"는 등의 질문으로 율법사 말에 대하여 의심을 털어 놓기 시작을 할 것이다.
거짓은 언제나 드러나게 되어 있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만을 양상해 놓을 뿐이다.
그러니 결국은 율법사들이 이 여인에게 돈을 주고 연기 부탁을 했단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자 군중들은 화가나 율법사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의 옷을 다 벗겨 놓을 것이다.
"여러분 나는 이 여자도 알고 이 율법사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놈들은 율법사라곤 하지만 거짓말쟁이들 뿐입니다. 우리 유대인들 앞에서 모세의 법을 말하고 로마인들 앞에선 로마의 법을 얘기하는 놈들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여인이니 이 외식적인 놈들을 우리가 혼을 내줍시다. 이런 놈들이야말로 모세의 법을 이용하여 모세의 법을 더럽히는 놈들입니다."
결국 율법사는 군중들에 의해 발가벗겨져 도망가는 신세가 될 것이다.

8. 예수님 죄송합니다.
군중들도 사라지고 여인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굻고 용서를 빈다.
"예수님, 너무 죄송합니다. 전 이런 일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고 제가 하지 말아야 할 거래를 한 것이라 생각을 하였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요."
그러자 예수님은 여인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여 주실 것이다.
"그래, 알겠다. 하나님께서 네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네 죄를 사하셨으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노라. 다시는 그런 죄를 행하지 말거라!"

9. 상황은 180% 달라졌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같았을 것이다.
"너를 정죄하는 이들이 어디있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이런 죄를 행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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