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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천주교인을 위하여 만들었고, 성경에 맞지 않는다.
백영찬
- 1924
- 2018-04-13 01:12:15
사도신경은 천주교인을 위하여 만들었고, 성경에 맞지 않는다.
(사도신경의 유래)
로마카톨릭은 초대교회에서 분리되어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로마카톨릭이 탄생하였고, 사도신경은 AD 4세기 말경 로마에서 8-9개의 신조로 이루어진 “고대로마신경”으로 발전하고 바로 이것이 사도신경의 모체인 동시에 후기에 나타나는 모든 신경의 원형이 된다. 이처럼 큰 골격이 만들어지어 발전을 거듭하여 7세기에 완성이 되어 오늘날과 같은 사도신경의 표준문이 완성되어 로마를 제외한 다른 서방교회에서 “예비자교리지침서”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이것이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98-1216)에 의해 비로소 서방 교회의 공식 신경으로 인정되었다.
그 이후 현재까지도 사도신경은 모든 서방 교회에서 세례 의식에 사용되고 있으며 주일 미사 때마다 신자들은 이 신경을 외움으로써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이와 같이 로마 카톨릭에서 작성하여 사용하기 시작한다.
카톨릭은 성경보다는 자체적으로 37개 이상의 신앙고백문과 교리를 만들어 미사와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이 프로테스탄트에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로마 카톨릭에서 카톨릭 교인을 위하여 7세기에 만든 신앙고백서로서 프로테스탄트(그리스도교)에는 5개항목 이상이 합당하지 아니하다. 즉 5개항목이 성경과 맞지 않는다.
1. 동정녀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 perpetual virgin)라고 한다.
동정녀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처녀, 미혼의 여자로 기록, 그러나 진정 동정녀라 함은 미혼의 여자 즉 처녀가 혼기가 지났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고 남자를 모르고 처녀상태로 살아가는 여자를 지칭함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 할 시에는 동정녀라기보다는 처녀라 함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는 정혼 (약혼)을 하였지만 결혼 전의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였기 때문이다. (사7:14)
마리아는 예수탄생이후 요셉과 결혼하여 자녀를 생산하였기에 그는 동정녀 로 일생을 살지 않았다. 즉 예수님을 낳은 후에도 다른 자녀들을 낳았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사람이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 하지 아니하느냐?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셉, 과 시몬, 유다라 하지 아니하느냐(마태복음:13~55)
이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마가복음:6~3)
그러나 카톨릭 교회헌장 [52항 제1편 p188 #499]에 교회전례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찬미 한다로 교인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과 카톨릭교리는 너무나 명백하게 모순되기 때문에 교리문답서는 사실 예수의 형제들 (마태복음:13~55 마가복음:6~3)야고보와 요셉은 다른 마리아 (마태복음:28~1)라고 명시된 예수님의 제자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제1편p188 #500]라고 성경을 왜곡하여 가르치고 있다.
왜 성경을 왜곡한 교리일까라는 의구심에 대한 진실은 “마리아는 남편 요셉의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초월한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여 세운교리로서 면밀히 검토 해보면 카톨릭의 핵심교리인 마리아 숭배는 “마리아는 또다른 구원자”, “마리아는 무염사태”,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 “마리아는 성덕의 근원”, “마리아는 또 다른 중재자”, “마리아는 기도의 응답자”, “마리아는 천지의 여왕”으로 마리아를 숭배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 교리는 마리아가 독신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신부(사제)들 및 수녀들과 비슷하게 인식되어지게 함이다.
초대교회에서 만들어진 신앙고백 이라하면 처녀 마리아라 하였을 것이고, 동정녀 마리아라고 고백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왜곡하지 말라 하였고, 이사야서 7장14절 말씀에 명확하게 “처녀탄생”을 예고하였으며, 성경은 마리아를 동정녀라 기록하지 않았다.
2.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예수님께서 인간구원을 위하여 계획(사7:14,렘32:22)된대로 이 땅에 찾아오시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었으나 “예수님이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시어 십자가에 돌아가시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왜곡되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인류구원을 위하여 오시었기에 구원사역에 쓰임 받은 사람의 이름을 신앙고백에서 까지 고백하여야 할 이유는 없다. 마리아, 본디오 빌라도 등의 사람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구원사역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사도신경을 만든 카톨릭의 원의(原意)는“장사가 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지“로서 공인된 원문 (Forma Recepta)에는 있으나 ,대다수의 본문에는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지 프로테스탄트교에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구인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라고 성경 말씀대로 수정하여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사도신경을 만든 카톨릭의 의도를 수정하면서까지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상당한 무리를 수반한다.
4. 거룩한 공회 (그리스도교) / 거룩한 카톨릭교회(카톨릭)
한국 카톨릭 주교회의에서 발행한 “카톨릭기도서”에 영문은 “the holy catholic Church.”로서 직역으로 “거룩한 카톨릭교회”이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는 카톨릭 기도서에서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라고 수정하여 사용한다. 이는 프로테스탄트교와 동질성을 암시하는 변화이다.
그리스도교는 1994년5월25일 오픈찬송가에 “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기록되었으며, 2003년3월31일 한국찬송가공회 발행본에는 “the holy universal church,“라고 기록되었다. 이는 거룩한 로마카톨릭교회라고 전제 되어야만 성인의 통공으로 즉 성인의 중보기도로서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카톨릭 특유의 교리에 의한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국의 프로테스탄트는 “The Holy Catholic Church.(보편적인 교회)”라고 표기 하다가 최근에는 카톨릭과 구분하겠다는 표현으로 영문의 Catholic 단어를 “the holy universal church,“라고 바꾸어 표기 하고 있다. 이는 카톨릭의 원의(原意)가 무시되는 처사로서 사도신경을 빌어쓰고 있는 처지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빈약함을 여실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영문의 catholic 단어에서 대문자일 경우에는 보편적이라는 의미이고, 소문자일 경우에는 로마카톨릭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도신경의 원조인 카톨릭의 사도신경과 그 원문을 검토하면 신앙고백의 본뜻을 알 수 있다.
5.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프로테스탄트)/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카톨릭)
the communion of saient 라고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공히 영문은 똑같이 사용한다. 그러나 사도신경을 만든 측 즉 카톨릭의 원의(原意)는 인천카톨릭대학 교수이자 사제인 차동혁신부의 저서 “사도신경(p242-243)”에 의하면 “통공 이란 단어의 원어는 코뮤니오(communio)”이다. 이는 친교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눔 이나 교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먼저 통공을 친교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15,5) 포도나무 가지와 잎새들이 줄기와 연결되어 한 생명으로 살고 있다. 한 생명체에는 수억의 세포들이 결합되어 한 생명을 이루는 것처럼 지상, 지옥, 천국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은 한 그리스도의 생명에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친교다.
다음으로, “통공”은 말 그대로 공(功)을 통(通)한다는 뜻을 지닌다. 즉, 누군가 다른 성도들 위해서 기도, 선행, 희생 등을 통해서 대신 공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지상 교회의 성도들끼리 서로 육신과 영혼에 필요한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 “통공”을 행할 수 있고, “지상교회”의 성도가 “연옥교회”의 성도들 위해 공을 쌓음으로 죄로 인하여 당연히 받아야 할 잠벌(涔罰)을 면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천상에 있는 성인들을 공경하며 그들의 전구를 청하고 그들은 우리를 위하여 은총을 빌어줌으로서 지상교회와 천국교회 사이에 통공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카톨릭의 사도신경에서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라고 고백한다.
* 카톨릭주의에서 성인(saint)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살아있을 때 행한 선행들로 인해서 죽은 후에 교회가 거룩한 사람으로 공표한 사람들 즉 카톨릭에서 엄선된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도신경의 원문인 카톨릭의 사도신경에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라는 해석은 카톨릭에서는 성인들(성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아버지와 우리사이를 중재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지상 여정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인들과의 일치 ( our communion with the saints)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주는 것이다라고 카톨릭교회 헌장 [제1편p363#957]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과” 라는 원의(原意)인 카톨릭주의 고백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로서 이는 “일반 교인들은 성인의 중보기도를 통하여야만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는다“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는 카톨릭의 고해성사를 합리화하는 고백이기도하다.
* 카톨릭의 사제 차동엽 신부의 저서 “사도신경”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트와는 성경,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공히 사용하며, 동일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공통성을 가진다라고 동질성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성경과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주기도문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공통성은 인정되나 사도신경은 성경밖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카톨릭신자를 위하여 만든 카톨릭의 교리서에 불과하므로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사도신경을 고백해서는 안된다.
500년전 종교개혁의 목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로서 신앙고백도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 참고도서 / 사도신경(차동엽 신부 저), 교황의 역사(Pg 맥스웰스튜어트), 카톨릭의역사(한스큉 저), 카톨릭 기도서(한국천주교주교회의), 천주교와 개신교(박도식 저), 카톨릭의 전통과 그리스도교 영성(조던 오먼 저), 천주교는 기독교와 완전히 다릅니다(릭 존스 저),
상암교회 백영찬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