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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와 함께 죽고 산 사람들 (부활절 설교)
최세창
- 1311
- 2018-04-10 20:10:23
- 시작하는 말
주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셨다면, 대속의 의미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인간은 여전히 죄의 값인 죽음을 맞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주님의 죽음이 인류를 구원한 대속 제물임이 확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3에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떼어놓고는, 주님을 믿는 우리의 죄 사함과 중생과 성결한 삶과 영생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구원받은 것이 순전히 주님의 대속에 의한 것이므로 더 많이 범죄하여 더 많은 은혜를 받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구원받은 사람이 주님과 함께 죽고 산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2. 주님과 함께 죽고 산 자
로마서 6:1 이하를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청산하는 대속 제물이 되셨으므로, 또다시 죄의 종노릇을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속의 주님을 믿어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죄의 종노릇하던 옛사람으로 일하며 사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지 않는 그들은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세례인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세례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과 합하여 세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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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합하여”의 헬라어 에이스(εἰς)는 ‘에게로’라는 전치사입니다. 내적 결합, 또는 분급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주님 안에 속해서 주님과 한 생명이 되었고, 유기적 일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접목을 하면 새 나뭇가지가 본 나무와 한 생명이 되고, 본 나무의 뿌리와 줄기를 통해 영양분과 수분 등을 받아 살면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주님과 하나가 된 것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과 합하여 세례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죽음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써 주님과 함께 장사된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는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신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죽고 장사된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놀라운 영원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6:5을 보면,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세례란 신을 떠나 살던 옛사람이 죽고 신과 연합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시 출생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세례는 전신 침례로 행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인 죽음을 당하신 주님과 함께 죽어 장사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물속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세례받기 전의 옛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오직 주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 새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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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람으로 거듭난 교인은 불의와 거짓과 미움과 세상 것의 종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거듭난 교인은 오직 성령을 좇아 사랑과 의와 진리와 자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영적으로 죽고 다시 산 증거이며, 영생의 부활 소망이 완전히 성취되는 길입니다.
이솝 우화입니다.
생쥐 한 마리가 요술쟁이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고양이가 무서워서 늘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지냈습니다. 생쥐를 측은히 여긴 요술쟁이는, 생쥐를 고양이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개를 무서워하므로 개의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호랑이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생쥐에게 실망한 요술쟁이는 “너는 모양만 바뀌었지 마음은 계속 생쥐이니 너는 가망이 없다. 그러니 다시 생쥐가 되거라.”라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거듭난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죄와 죽음과 지옥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종노릇하던 옛사람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옛사람들 중에는 사단이 좋아하는 일과 일하는 태도와 처리를 따르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새사람답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물론, 일과 일하는 태도와 처리 등의 위의 것을 추구하는 거듭난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사면 받은 자요, 자유롭게 된 자요,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요, 거듭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는 영적 체험을 했다면, 또한 주님과 함께 다시 살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부활 신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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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능합니까? 이는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매 다시 죽지 않으시고, 세상 죄를 지신 주님을 잠시 지배했던 사망이 다시는 주님을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상, 주님의 죽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해 단번에 청산하신 것이고, 주님의 부활은 영원하신 하나님께 대해 사신 것이므로 부활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주님과 함께 죽고 산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바울 사도는,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옛사람이 죽었고,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해서는 산 자인 새사람이 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된 우리는, 사랑과 의와 진리와 자유의 삶을 살면서 천국을 향해 전진해야만 합니다.
주 예수님과 달리, 죽음에 이른 사대성인이나 성자나 군자나 철인이나 정치가나 종교 교주 등의 인간의 교훈이 아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6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께 이르는 방도는 말씀밖에 없습니다. 시편 119:105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1:2을 보면, 솔로몬 왕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통치자들과 고위층, 걸인들과 범죄자들, 현자들과 지자들, 부자들과 빈자들의 삶 전부에 대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솔로몬은 전도서 12:13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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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어느 여행가가 아프리카에서 길들여진 거대한 코끼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난 힘에 놀랐습니다. 일을 마친 후에 그 코끼리를 땅 속에 박힌 작은 말뚝에 줄로 매어 놓았는데, 그 거대한 코끼리가 왔다 갔다 하면서도 줄 길이 이상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더욱 놀라 물었습니다. “아니, 엄청난 힘을 가진 코끼리가 어째서 약간만 힘을 써도 뽑힐 저 작은 말뚝에 매여 꼼짝을 못하죠?” 그러자 코끼리 조련사가 “코끼리를 아주 어린 새끼 때부터 말뚝에 매어 놓습니다. 처음 한 동안은 답답해서 야단하지만, 그래도 뽑히지 않는 말뚝에 대해 포기하고 맙니다. 그리고는 그 머리에 이 말뚝은 절대로 뽑을 수 없다고 스스로 각인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아무리 큰 코끼리가 되어도 일단 말뚝에 매이게 되면 꼼짝을 못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혹시 우리에게도 그런 말뚝이 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신 주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산 사람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맺음말
주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대속 제물이 되신 주님과 함께 죽은 자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다시 산 자가 되는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죄와 죽음과 지옥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종노릇하던 옛사람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사랑과 의와 진리와 자유의 삶을 살아가는 새사람입니다.
옛사람이란 사단이 희희낙락하는 죄악은 물론, 일과 일하는 태도와 처리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사람답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물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과 일하는 태도와 처리 등의 위의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로마서 6:1-11)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TEL. 02-426-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