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길을 버리면 사역의 길도 막힙니다.....

오재영
  • 1407
  • 2018-04-10 19:03:53

어느 날 남루한 차림의 맹인 한사람이 멀쩡한 날 대로변의 좁은 시궁창에 서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지팡이를 휘두르며 악담을 퍼붓고 있었다. “어느 놈이 이런 시궁창을 여기에 만들어 놓았느냐고...”


잠시도 태만할 수 없는 영적 전쟁의 변화 많은 사역의 현장에서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면, 나에게도 만약에 그때 내가 그분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이토록 형편없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더 초라하고 남 원망하며 민폐를 끼치며 부끄러움으로 추해졌을까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함께 그분들의 만남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 드릴뿐이다. 동일한 시대,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주변에 있는 이들을 보면서 느낀 생각이다.


참으로 별 희한한 사람들이 다 있다. 영혼을 교도할 지도자의 자리에서 주님 명령대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십자가지고 다른 이들을 섬기겠다는 이들이 어디서 길을 잃었기에 그가 지고 있어야 할 십자가는 보이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남 탓으로 돌리며, “적반하장, 후안무치”의 가엾은 모습들인가? 도대체 이들에게 수치와 부끄러움이란 무엇 인가? 그리고 이들에게 자신이 그토록 목소리 높여 말하는 법의 기준은 누구에게 적용하고 있는가? 본인이 기준이고 법인가?


더욱 해괴한 것은, 자기들이 목회를 실패하고 입에 올리기도 부담스러운 패역함으로 역사가 있는 교회 1천여명의 성도의 교회를 “풍비박산” 시키고, 거짓으로 교회를 담보하여 부도시킨 자신의 부실함이 도대체 최근의 감독회장의 “금권선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최소한 부끄러움을 알면 공적게시판 의 등장 자제하고 자중들 하라. 도대체 그 생각 속에 미래에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 앞에서 물으실 질문에 대한 두려움은 있으며 영혼을 치유할 말씀들은 있는가?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회개에는 왕복거리가 필요하다”고...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세상에서 나보다도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교활한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영혼을 교도할 성직자의 길을 가는 와중에 왜 어려움이 없겠는가? 그러나 위에 거론한 이들의 패악에 가까운 모습들은 이미 자신들이 행동으로 침륜(沈淪)에 빠지기 전에 먼저 구도자(求道者)로서 자기영혼이 침륜을 당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남을 끄집어들이는 지금의 이러한 태도로는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주님은 환경을 통해서 우리를 다듬으신다고 하지만, 모두가 사안마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난과 풍파 때문에 그의 마음이 더욱 강퍅해지고 성품이 모질어지며 잔인한 생을 이어가는 이들이 환난과 풍파로 인한 긍적적 변화는 소수일 뿐, 대부분 소멸로 마친다. 그것은 단순히 환경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거나 성화시킴이 아니라는 증거다.


진리는 단순함을 알면서도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나, 주님의 피 값으로 구원하신 영혼을 맡아 양육하는 목회자에게, 요행을 바람이 아니라면 고난은 당연하며, 그가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숙명과도 같은 것이기에 그에 따르는 고난을 대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참고 견디는 것이라 했다. 나의 주변에도 나는 상상 할 수도 없는 고난의 과정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그이만이 지니고 있는 의연함과 초연함, 담대함이 있다.


오늘 교단과 주변에 자리의 비중과 상관없이 남의 이목을 개의치 않고 행하는 홀로 단독으로 주님을 만남이 없는 품격 떨어지는 천박함은 모두가 하나같이 요행을 바랄뿐, 고난의 과정을 생략한 증거다. 늘 묵상하는 말씀 중에 평신도 지도자 위치만니 의 어록 중에 “용서받은 죄인은 보통죄인과 매우 다르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은 보통그리스도인과 현저히 다르다.” 했다. 누구나 거듭남이 분명하다면 각자가 수시로 점검할 진정한 죄의 용서와 헌신됨은 있는가?


누군가 영국 속담에 목사에게 하는 최고의 저주 중에 하나가 “평생 성령 받지 말고 목회나 해라,”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맷돌은 서서히 돈 다”고 했다. 맷돌에 들어갔다면, 속도와 관계없이 결과는 가루로 마친다. 나또한 마음으로야 그들과 다를 바 없겠으나, 모두가 엄위 앞에 방종이 아닌 타인의 실패를 “반면교사,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그것이 자신이 사는 길이요, 본래의 소명에 돌아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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