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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교 25주년 기념하여 만든 종의 소유는? (2-)
박상연
- 1448
- 2018-04-20 21:48:35
동대문교회 소유권이전소송에서(대법원 2014다 67782 2016. 12. 29.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 1883년 9월 L.B, Baldwin 부인이 미감리교 해외여선교회에 거액을 기부하여 구입한 땅 임을 인정하여 유지재단 소유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미 감리교회 해외선교부가 한국선교 25주년 기념으로 만들어 기독교대한감리회에 기증한 것이라면 이 종 역시 동대문교회에 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대문교회는 그 종을 통하여 마치 동대문교회가 대단한 역사를 가진 것처럼 127년의 역사를 자랑해 왔는데 동대문교회가 제자리를 지키는 소명을 다하지 못 했다면 이제는 총회(서울연회)가 동대문교회 벙커의 종을 회수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틀렸습니까? 저의 생각이 맞다면 총회(S연회)는 이러한 유물은 회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 K 감독께서는 감리교회 4대 감독 정춘수 목사처럼 그 유물이 고철 덩어리라서 관심 없는 것인지요?
동대문교회 장로님들은 3.1운동 시 종이 울렸다 지만 사둔 남 말 하듯이 말 합니다. 누가(단체를 포함) 어떻게 울렸나? 물으면 답이 없습니다. 그 근거를 기록이나 사진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당사자로서 남은교인으로서 슬프기만 합니다.
민족대표 33인의 정춘수목사는 1938년 9월 '전향 성명서' 발표 후 조선감리교 제4대 감독으로 피선되자 친일행각을 벌입니다. 1941년 10월 조선총독부에 교회의 철문, 철책은 물론 교회의 종까지 헌납을 하여 3.1 운동시 타종한 종이 아니다는 설과. 6.25 때도 북한군이 가져갈려 하였으나 파괴된 종탑에 걸려 있는 종을 보고 영물이라 가져가지 못하였다는 설 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존하는 ‘자유의 종’을 동대문교인들이 헌금하여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조선 총독부도 인민군도 가져가지 못했다고 보아 이 역사적 사실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자유의 종의 명칭은 이렇게 바뀌어 왔습니다.
1910년 벙커의 종→1919년 3.1운동시에는 자유의종→ 1990년 100주년 기념으로 설치하면서 동대문교회 종→2013.11월 동대문교회 철수하면서 여추위의 백영찬장로는 ‘여명의 종’이라 부르니 총회(서울연회)에서 이 종의 명칭 정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제 총회나 재단이나 동대문교회역사문화 재단하는 일 그만 좀 하시고 회복에 나서 주십시오. 감리교회 정체성을 되 찾아야 감리교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한테 기도하겠습니다. ctnclub@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