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광야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친 사람들.....

오재영
  • 1702
  • 2018-04-30 06:48:32
영혼을 인도하는 우리의 롤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사도바울께서 분쟁중인 고린도 교회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중에 구약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광야 40년"의 삶을 해석한 고전10장 1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은 혼돈된 시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두려움과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친구 여러분, 우리의 역사를 떠올려 경계를 삼기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로 구름의 인도를 받았고, 기적적으로 바다를 건넜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종의 상태에서 구원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 때, 그들은 우리가 세례를 받듯이 물속을 지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공급해주신 식사였습니다. 그들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하신 바위에서 솟아난 물은, 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그들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그 바위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를 경험한 것이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광야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동안, 그들 대다수가 유혹에 무너지고 말았으니까요. 결국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똑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다가 허를 찔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백성들이 먼저 파티를 벌이고, 그런 다음 춤을 추었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들처럼 우리의 신앙을 떠들썩한 쇼로 변질시켜서는 안됩니다.

성적으로 문란해서도 안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그들은 성적으로 문란하게 살다가 하루에 23,000명이나 죽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겨야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섬기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했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독뱀을 풀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불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불평하다가 멸망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위험!’을 알리는 경고 표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가 그들과 유사합니다. 그들이 처음이라면, 우리는 나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실패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순진하게 속지도 말고 자만하지도 마십시오. 여러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다른 누구처럼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는 버리십시오. 그런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기르십시오.(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고전10:1~12).”

또다시 교단의 지도자에 관한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섬김의 자리를 군림의 자리로 착각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 할 수없는 이들과, 부실한 틈새 노려 약점잡고 협잡질하는 소수의 품격 떨어지는 이들로 인하여 이제는 이교도들을 향하여 뭐라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이들도 입술로는 온갖 의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당위성을 주장하지만, 집착하는 행태들을 보면 교단과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은혜의 장소를 벗어난, 오로지 오기와 증오심외에는 소유한 것이 없는 이들이다.

철부지 같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인생은 부메랑이기에 던진 것은 자신이든 후손이든 자신들이 모두 도로 받게 되어 있음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성경에도 “심은 대로 거둔다 했다. 그러하기에 이단에 속한 사람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했다”(딛3:10-11).
등장하여 추태부리는 는 이들이야말로 봉투 들고 다니며 표 구걸하고, 자식의 성직거래를 하려한 이가 아닌가? 간통이라는 추문으로 멀쩡한 교회 풍비박산 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한마디로 “후안무치” 한 이들이며, 또 교단을 바로세운다며 이들과 한패거리인 인사들은 또 무엇인가? 이제 머지않아 허욕과 오만에 도취되어 시대적인 역사에 귀를 막고 눈이멀어 독선과 아집으로 은혜로주신 자신들이 서있는 가지에 톱질한 결과가 어떠한지를 아는 날들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명색이 성직자라면, 은혜로 살아온 날들이 있을것이니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아는 겸손함이 있어야한다.
드러나지 않았던, 드러났던, 주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를 까발리면 우리 중에 죄 없는 이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남의 부족함을 보게 될 때나, 넘어지거나 실수 할 때에 어쩌면 나도 넘어질 수도, 실수 할 수도 있음을 알고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아 각자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여 자중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교활한 사탄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온갖 유혹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구도자인 우리가 끊임없이“신앙의 대가(大家) 들로부터 배우는 것은 겸손함이다. 그래서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줄을 알고, 조급한 욕망과 주변의 선동과 인기에 함몰되지 않는 것도 자신을 지키는 지혜이며, 죄인의 기질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신의 주제를 아는 순수함이다.”원망과 불평, 이 구습(舊習) 으로 주님께서 계획하신“광야에서의 탈출”을 기대함은 불가하다는 생각이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를 중심한 우리 모두는 상대가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말아야한다.
그것은 천박한 자신의 생각과 뜻이맞기 때문이 아니라 주께서 모두가 친구라, 형제라 하셨기에 배려하는 것이다.
동시에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격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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