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회장 직무정지를 통한 감리교회의 꽃에 대한 소회

관리자
  • 1968
  • 2018-04-29 04:25:25
전명구 목사의 감독회장 직무정지가 드디어 판결이 났다.
5천이라는 거액이 그 판결에 매우 큰 역할 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지난 번 '감독회장선거무효'도 있었으니 5천 때문이 아니라 할지도 모르지만 세상은 때론 법보다 돈이 빠른 법이다.

전명구 목사는 감독회장의 자격이 있을까?
여기에 난 과감히 그렇다고 표를 던지고 싶다. 왜냐하면 지난 32회 총회를 통해 최다의 득표로 당선이 되었으니 말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다.

감리교회는 의회제도를 기반으로 한 감독제도이다.
그러므로 총회에서 적법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 당선이 된 것이라면 일단 전명구 목사에게 있어서 감독회장으로 당선된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금권선거?

물론 목사로써 금권선거는 치명적인 부끄러움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금권선거를 하지않은 후보가 누구이며 금권선거 없이 감독회장에 당선된 이는 누구인가? 전용재 직전감독회장은 금권선거에 의해 총특재는 당선 무효를 판결하지 않았던가? 물론 사회법의 보험이 있었으니 그리 판결을 했을 것이다.

지난 신경하 목사의 출교 문제도 왜 그런 말도 안되는 판결을 총특재가 했을까 싶었는데 이젠 그 모든 일들이 일련의 과정이며 성난 대중들의 화를 달래기 위한 고단수의 작전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론은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전명구 목사에 대한 금권선거의 의혹은 감독회장으로 당선되었던 지난 총회의 일을 지울 수는 없다. 다만 목사로써의 부끄러움은 우리 감리교회 전체의 몫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전명구 목사만의 탓은 아니란 얘기다.

그러기에 나는 전명구 목사가 감독회장 직무정지를 당하였지만 감독회장으로서의 자격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을 한다. 항소의 변에도 주장하고 있듯이 '감독회장 선거무효'도 전명구 목사의 금권선거에 대한 의혹이 아님을 법원이 판단해 주지 않았던가?

만약 선거법에 위배된 금품수수가 있었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니 전명구 목사의 감독회장으로써의 자격문제엔 거론 하지 않겠다. 다만 감독회장 후보로써 선관위에서 그 자격엔 문제가 없음과 총회를 통해 선출된 것에 대하여 인정한 것을 말할 뿐이다.

전명구 목사에 대하여 그리 비난을 하더니 감독회장 직무정지가 떨어진 이 때에 왜 이런 글을 쓰느냐?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 줄 안다.
노재신 목사는 전명구 목사를 무척이나 싫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이다. 난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행한 불법을 미워하고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을 비롯한 권력형 비리를 미워 할 뿐이다.

나는 원형수 전관리자도 개인적으로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굳이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느냐?라는 항의이며 이의 제기이며 비판일 뿐이다.

나는 박성배 관리자를 개인적으로 미워 하지 않는다.
다만 굳이 그렇게 까지 해서 관리자의 자리를 보존하려 해야만 하느냐?는 항의일 뿐이다. 박성배 관리자는 관리자로써 자격이 없어 보인다. 내 눈에 보기엔 타 연회의 총무 만도 못하게 관리감독에게 쩔쩔매며 관리감독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직무유기를 하고 있기에 비판을 한 것이며 장난질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서희선 목사를 개인적으로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감리사의 직위를 그렇게 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냐?고 반문하고 싶으며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하여 온갖 거짓과 속임을 통해 감리사의 직무를 유기하였고 직권을 남용을 하여 불법적인 행정치리를 했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 뿐이다.

나는 지방의 어느 목사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쉽게 변심을 할 수 있느냐?를 질책하고 싶은 것이다. 그 또한 내가 지금까지 잘못 생활했기 때문이라는 자책도 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목사다워야 한다. 이것은 지난 내 모습에 대한 자책이며 지난 내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회의 그 어떤 목사들도 미워하지 않는다.
나를 유죄판결한 재판위원장을 비롯한 재판위원들도 말이다. 단지 그리 굽은 판결을 해야만 했을까? 누구를 위한 재판은 재판이 아니다. 그것은 재판놀이다. 이미 정해진 죄인을 두고 아이들이 소꿈놀이처럼 행하는 재판놀이 말이다. 목사와 장로가 되어 재판놀이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함이며 때론 이것은 엄청난 죄가 될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성경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 누구를 미워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에 그 악함을 행하는 것은 목사다움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항의를 하고 비판을 하고 때론 강한 어조로 비난과 정죄를 하기도 한 것 뿐이다.

그러한 나의 행동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의 행동에 대하여 많은 왜곡을 불러 일으킬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그리 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불법과 불의를 행하는 이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신의 권력을 통하여 나를 무시하고 나는 적대하고 비방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러한 오해와 왜곡으로 인해 나를 경계하며 나를 적대시하며 무시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오해와 왜곡이라면 언젠간 풀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진심이 통한다면 말이다.

전명구 목사에 대한 내 진심도 다르지 않다.
전명구 목사는 감독회장으로써 자격은 충분하다 생각을 한다. 다만 그동안 감독회장이 된 이후로 전명구 목사가 행한 많은 일들은 감독회장 답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호선연의 관리감독으로써 행한 나에 대한 행정치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염려하며 전명구 목사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기독교 타임즈의 기자들을 대하는 모습 속에서 더더욱 전명구 목사의 감독회장 답지 않음을 염려하는 많은 이들이 있을 줄 안다.

감독회장으로써의 전명구 목사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것에 대한 기독교 타임즈의 기자들에게도 아주 문제가 없었다 하진 않고 싶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판단을 할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아니함으로 권력적 강자인 전명구 목사의 편을 들지 못하고 기독교 타임즈의 기자들의 편을 들뿐이다.

어쩌면 이러한 나의 태도에 대하여 또 다른 편견이며 또 다른 선입견이며 또 다른 차별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판단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나 왜곡되게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오류를 지적하고 오해를 바로 잡아주길 바랄뿐이다.

나는 늘 나에 대한 칭찬보단 나에 대한 비판과 비난에 귀를 기울이려 했다.

언제가 긴 입씨름과 같이 논쟁을 하였던 최신석권사님을 비롯하여 나에 대하여 '또 다른 사이비인가'라고 간단히 지적했던 그 댓글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그러한 논쟁에서 너무 세게 또는 강하게 말하는 것이 있었기에 거부감을 갖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았던 분들이 많았을 줄 안다. 그런 분들에겐 다소 미안함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이 글에 대한 비판이나 오해 및 왜곡에 대하여 수정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잡아 주길 바랄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병철 관리자에겐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그 의혹의 문제는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내가 이해력이 좀 딸릴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야겠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전명구 목사는 감독회장으로서의 자격은 그 누구보다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러나 전명구 목사는 다른 이전 감독회장들과 같이 감독회장 답지 못 했다.
권력으로 누르려 하고 권력으로 다스리려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

남과 북의 그 살벌한 빙하기도 봄이 온 것과 같은 시대가 아니던가?
지금의 시대는 민의에 따라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으며 새로 뽑을 수도 있는 시대가 아닌가 말이다.
물론 민의가 법을 대신할 수는 없다. 때론 민의도 법에 의해 통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법이란 그 자체가 민의의 또 다른 표현이며 결정이기 때문이다.

민의와 민의가 서로 대립을 한다면 그것은 갈등이며 대립이며 또 다른 냉전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한번 나는 전명구 목사가 비록 사회법의 판결에 의해 '감독회장 직무정지'를 당하였지만 감독회장의 자격으로썬 그 누구보다 출중하다 생각을 한다. 다만 지난 시간 보여준 감독회장으로서의 전명구 목사의 인사와 행정치리는 감독회장 답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전 감독회장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어차피 떨어진 '감독회장 직무정지'라면 우리 감리교회도 다시 한번 교리와 장정을 존중하며 교리와 장정에 따라 연회를 비롯한 의회제도들이 제 자리를 잡아갔으면 한다. 우선 총대 선출에 있어 정족수 미달의 문제는 모든 연회가 앞장서서 시정해야 할 불법적인 전례이다.

앞으로 총회를 통해 새로운 감독회장 선거가 있게 된다면 이 문제는 또 다른 논란이자 분란거리가 될 것이다.
때에 따라선 또 다른 '감독회장 선거무효'의 원인이 될수 있는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전명구 목사는 호선연의 사회를 보며 이 불법적인 전례를 과감히 수정하고 바로 잡았다. 이것이 감독들의 몫이다. 감독들이 행해야 할 감독제의 아주 중요한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의회제도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너무도 편만하게 퍼져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굳이 관심을 갖으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회원들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꿔야 하는 사명이 감독들과 감리사들에게 있다 할 것이다. 교묘하게 이용해 먹으려 하지말고 말이다.

혹자는 감리사(감독)가 감리교회의 꽃이라 한다.
나는 그 말에 대하여 '아니오'라 말할 것이다.

감리교회의 꽃은 바로 모든 의회원들이 의견을 발표하고 결의하여 그 결의에 따라 행정 치리할 수 있는 의회제도에 있는 것이다.
감리교회 내의 각종 의회제도야 말로 감리교회의 꽃이며 민주주의의 꽃이기도 하다.

감리사와 감독은 이 의회제도의 꽃이 바로 필수 있도록 감독 및 감리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아주 중요한 직위일 뿐이다.

이글을 마치며 론 케놀리의 "Jesus is Alive"를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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