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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동방(東方)
함창석
- 1143
- 2018-04-26 23:06:01
산돌 함창석 장로
도마는 그리스도교의 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아람어로 ‘쌍둥이’를 뜻한다. 도마는 갈릴래아 출신으로 겐네사렛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일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사도의 반열에 올랐다. 요한복음서의 라자로 소생설화에 따르면, 예수가 죽은 라자로를 되살리려고 베다니아로 가려고 하자 다른 사도들이 바리사이파의 음모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모두 극구 만류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우리도 함께 가서 그 분과 생사를 같이 하자.”라고 말하였다.
최후의 만찬 때에도 예수가 사도들에게 이별을 고하자, 다른 사도들이 비통에 잠겨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토마스는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한 예수의 말에 “주님, 저희는 당신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그리고 예수와 더불어 게쎄마니 동산에 갔는데, 예수가 병사들에게 사로잡히자 다른 사도들과 같이 예수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도마는 자신이 없을 때 예수가 부활하여 다른 사도들에게 나타났다는 증언을 처음에는 “내 눈으로 그 분의 손목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그 못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 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라며 믿지 못하였다. 여드레가 지나고 사도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 예수가 다시 나타나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하고 그 표징을 보여 주자 토마스는 그제서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하고 대답하였다.
기원후 1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정경을 할 때에 도마복음은 외경으로.... 이덕주 교수는 《기독교사회주의 산책》(홍성사)에서 외경인 도마행전 또는 토마스 행전에 나오는 성 도마 전승을 들려주었다. 예수가 인도에 성 도마를 사도로 보내려고 하셨는데, 성 도마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는 성 토마스가 재산을 잃고 목수 수드라가 되어 인도에 가게 했다. 인도 왕이 궁전을 지으려고 목수를 구하려 예루살렘에 신하를 보내었는데, 노비시장에서 신하가 은 30에 도마를 샀던 것이다.
인도에 온 성 도마는 궁전 지을 돈으로 도시의 가난한 이들에게 "임금님이 주시는 돈입니다."라며 나누어주었다. 황금지붕을 만들라고 돈을 주자, 가난한 이들에게 또 나누어주었다. 공사가 진척되었는지를 묻자, "당신이 죽는 날에 궁전을 볼 것"이라고... 분노한 왕은 성 도마를 감옥에 가두고 다음날 처형하려고 했는데, 왕의 동생이 죽었다 살아나 형에게 하늘나라에서의 이야기를 전하였다. 왕은 도마의 뜻을 이해하여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인도에서 전도하는 종교의 자유도 존중했다.
인도 서남부 말라바르 지역에서는 "사도 도마를 통해 복음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도마교회 전통이 있다. 그러나 이들 도마교회인들은 예수회에게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모든 새로운 제도들, 의식들, 성찬식 등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1560년대 인도에 온 예수회원(제수이트)들은 인도 고아에 종교재판소를 설치하고 성 토마스 교회 그리스도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신학자 벤자민G 윌킨스가 쓴 《이것이 기독교회사입니다》에는 인도 고아에서 예수회 종교재판을 기록을 하였다.
인도 기독교가 유럽 기독교의 역사보다 더 길다면 믿을 수 있는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가장 의심이 많았던 성 도마가 크게 회심하여 포교하러 온 곳이 인도라고 한다. 케랄라 해안에 당도한 성 도마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다 순교했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신자들이 도마파 교회의 시초가 되었다. 현재까지 수백만 명의 신자를 거느리고 있는 시리안 정교회는 도마파 교회의 전통을 잇고 있는 2,000년 역사의 인도 교회다. 케랄라에 가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2,000년 기독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