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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파의 원인이 된 요나와 종교다원주의
최세창
- 1428
- 2018-04-24 20:17:14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지만, 저는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왜 떨어집니까? 나무에 올라갈 일이 없는데. 전문가의 권위와 의견과 해결책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료 사고나, 무력적화통일 같은 잘못된 정책과 잘못된 교육이나, 오판 같은 전문 분야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는 전문가들이 저지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종교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23:15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하신 주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2. 니느웨 선교 명령을 거역한 요나로 인한 풍파
요나 1:1 이하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는 티그리스 강의 동쪽 언덕에 위치한 살기 좋은 곳이라서 인구가 매우 많았고, 문명과 문화가 발달한 매우 큰 도성이었습니다. 높이가 약 30.48m나 되는 성벽이 있었고, 성벽과 성벽 사이로 말이 끄는 전차 세 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지경에까지 이른 도성이었습니다.
사람은 외면의 아름다움과 화려함과 웅장함에 도취하고, 생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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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를 추구하나, 하나님은 인간의 속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내적 발달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3:16 이하를 보면,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했습니다.
내면을 간과한 외적 발달의 결과는 파멸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상관없는 인본주의적인 서구 교회들의 쇠락에 이어, 어르신들의 눈물과 땀으로 경제 기적을 이룬 한국의 교회들도 벌써 쇠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원인은 디모데후서 4:3 이하에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영생 복음의 결여로 인한 영적 기갈과 정신적 공허와 잠시 후일 수도 있는 죽음 후의 지옥의 멸망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지중해의 동쪽 해안에 있는 욥바에서 니느웨의 반대편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을 거역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신학적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가진 자기 민족만이 하나님의 선민이고, 이방인은 다 멸망당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방인들과 상종하거나 이방 땅을 밟는 것은 부정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 잘못된 신학을 가진 요나에게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사실은, 이 잘못된 신학이 유대의 민족적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되어 신약 시대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1 이하를 보면,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유대인들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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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백부장 고넬료는 지금의 오후 세 시인 구 시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욥바에 있던 베드로에게 사람들을 보냈고, 초청에 응한 베드로는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나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이지만, 환상 중에 아무도 속되다고 하거나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왔는데, 초청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주님이 베드로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기 위해 다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 이방인들에게도 미치는 것을 깨달은 베드로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설교했습니다. 도중에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그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이를 본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교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훗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은 사실을 들어 힐난하는 할례자들에게 자초지종을 밝힌 결과가 사도행전 11:18입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둘째는, 민족적 원한입니다. 니느웨가 수도인 앗수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유대 왕국을 침략하며 온갖 잔악한 짓을 저지르곤 했던 적국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에게는 그런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물론,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인다는 것 자체가 심히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의 적국인 앗수르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우상들을 타파하고,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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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 죄악을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신상에 관한 것입니다. 적국에 들어가서 칭찬하거나 번영할 것이라고 외쳐도 간첩으로 몰려 잡혀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악독을 지적하면서 그것 때문에 곧 하나님께서 멸망시킬 것이라고 외치는 것이니 목숨이 열 개인들 남아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서 외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숨까지라도 걸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복종하는 것이 나와 모두가 복 받는 길이요 영생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역하고 도망치는 요나가 탄 배가 가는 바다에 폭풍을 대작케 하셨습니다.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풍파가 얼마나 극심했던지, 사공들이 다 두려워하며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에 실은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믿고 섬기던 온갖 신들은 구원자가 아닌 것이 드러났고, 재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선장은 배 밑층에서 깊이 잠든 요나를 깨우고는, 그에게도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위급하니까 내 신, 네 신 할 것 없이 아무 신이나 찾는 겁니다.
속수무책인 그들은 재앙의 원인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고, 뽑힌 요나가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요나의 설명에, 온갖 신들을 믿던 각종 종교인들도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요나의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심히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라도 당신을 알려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코자 하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하자 무리가 요나에게,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고 물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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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자 요나는 “내가 재앙의 원인이니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양심적이며 감동적인 대답입니다. 말해 놓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은밀히 일을 벌이고는 여론이 나쁘면 그런 게 아니었다고 하거나,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하거나, 이적 행위를 하고는 시치미 떼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 목숨을 걸고 책임지는 요나는 정말 본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복종해야 하는데, 자기 양심을 따르는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명분으로 목숨을 버릴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각종 신들을 믿는 무리는 요나를 바다에 안 던지고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하므로, 믿던 신들이 아닌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고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곧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이를 본 무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여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의 결실입니다.
한편, 요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밤낮을 있게 되었습니다.
3. 맺음말
어떤 교리나,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신학 같은 사상이, 인류 구원을 위해 사람이나 역사나 자연 등을 통해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어 재앙을 초래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55:6 이하를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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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성령을 좇아 복음 선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TEL. 02-426-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