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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회개(회심)한 이들의 모습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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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5 07:44:12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성령을 믿는 것이 참 성도다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참 기독교인 즉 참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은 기독교인만이 아니다. 유대교인도 하나님을 믿는다. 이슬람인도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 조상들도 하나(늘)님을 믿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되 자신들의 방법과 자신들의 언어로 하나님을 제 각각이 부르기도 하고 믿기도 하며 자신들의 하나님을 진짜 하나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선 이단도 사이비도 그리고 미신조차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신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알지 못하는 신이라 할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이 알지 못하는 신(미신)이라는 표현을 통하여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한다. 그러니 미신이라 적대시 하거나 미신이라 하여 그들을 미개한 사람이라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교인들의 수는 줄지만 미신이나 점집을 찾는 이들은 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과학이 발전하면 미신이나 점집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점집과 미신을 찾는 이들은 사라질 생각이 없이 이러저러한 모습을 바꿔가며 대승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찌 교회가 점집보다 못해 졌는가?
어찌 목사가 무당들보다 못해졌는가?
이러저러한 이유를 찾아 볼수 있겠지만 한 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교회가 변질되고 목사들이 타락을 해서 그런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독교(감리교)인들은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독교(감리교)인들은 우리들이 고백하는 예수가 참 그리스도심을 증거해야 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전해야 한다.
무엇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성령의 역사하심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
무조건 외치면 될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것이며 성령의 역사를 전하는 것일까?
외치더라도 알고 외쳐야 한다.
외치더라도 변화된 이들이 외쳐야 한다.
외치더라도 회심한 이들이 전해야 하며 최소한 회개하는 이들이 전해야 한다.
성경을 보라.
어찌 초대교회의 부흥이 시작이 되었으며 초대교회가 어떻게 핍박과 환란을 이겨냈는가 말이다.
신학적인 지식으로? 신학교의 교수들은 그리 생각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난 아니라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신학생들조차도 환란과 핍박을 좋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겨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지식으로? 좀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난 이것도 아니라 생각을 한다.
성경 100독하고 1000독을 하면 환란과 핍박을 이겨낼수 있으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수 있다 생각을 하는가? 어떤 무식한 성경중독자는 그리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아니라 말하고 싶다.
사울이 성경을 몰라 예수 믿는 이들을 박해하였던가?
제사장과 장로들과 바리세인 사두개인들이 성경을 몰라 예수님을 배척했고 강도 바라바를 원했다 생각을 하는가?
헤롯왕이 성경을 몰라 예수님의 탄생을 믿지 않고 2세 이하의 아이들을 죽였다 생각을 하는가?
어쩌면 오히려 성경을 너무 잘 알아서 그리한 것은 아닐까?
오히려 성경을 너무 잘 알다 보니 교만해져서 그런 것은 아닌가 말이다.
성경 100독을 하고 1000독을 한 이들을 만나보라 그들이 겸손한가 말이다.
40일 금식을 자주하며 철야와 소위 말하는 부흥집회에 자주 참여하는 이들이 참으로 겸손하던가 말이다.
부흥사들을 보라 그들이 참으로 겸손한가 말이다.
성막을 만들고 수도원을 만들고 기도원을 지은 이들이 참으로 겸손하던가 말이다.
교회가 맛을 잃고 빛을 잃은 것은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말이다.
성도들이 참된 헌신이 없으며 핍박과 환란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 또한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며 회심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말이다.
차라리 이단을 가보라. 얼마나 열심인 이들이 많은지 말이다.
이단에 속한 교인들의 열심을 보라. 그들은 이단이란 소리를 즐거워 하고 오히려 핍박과 환란을 즐기지 않던가?
그렇다고 그들에게 참 성령이 임하고 있다 생각을 하는가? 진정 그렇다면 이단으로 개종하라.
그러나 난 아니라 확신한다. 이단은 이단일뿐이다.
거짓 교사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이 어떤 모습에선 예수님보다 더 나은 모습이 있을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기독교(감리교)안에서도 보라. 누가 더 열심인가 말이다.
정치적으로 엄청 열심히 활동하는 정치 목사들과 장로들을 보라. 그들의 열심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 열심은 감리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기독교(감리교)안을 둘러 보라. 누가 더 열심으로 불의에 무관심하고 불법에 무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말이다.
무반응을 보이고 무관심을 보이니 열심이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을 둘러보라 얼마나 열심으로 자신의 이기심과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는지 말이다. 이 열심이 감리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쯤에서 이노래를 들으며 글을 써야겠다. 돈먼의 "God Will Make a Way"이다.
기독교가 타락하고 교회가 맛을 잃고 빛을 잃었다 하여도 하나님은 주님의 길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이며 이것이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의 회심이다.
성령을 믿사오며.....
우리는 성령을 믿어야 한다. 성령이 뭔지도 잘 몰라도 어찌 됐던 성령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 더디온다 하여도 기다려야 한다. 언제 성령이 임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다리고 기대해야 한다. 성령을 우리들에게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성령집회? 조심해야 한다.
부흥집회? 조심해야 한다.
은사집회? 이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간구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우리의 오감을 다 열고서 주님이 허락하실 성령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주시리라. 그러면 반드시 성령이 임하리라.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약속은 신실하기 때문이다.
거룩한 공회와.....
우리는 거룩한 공회를 갖아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공회를 사모해야 한다. 우리가 거룩한 공회가 되려 해야 한다. 거룩한 공회는 케톨릭 춰치가 아니다. 거룩한 공회는 성공회도 아니다. 거룩한 공회는 진실로 성령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이들의 모임이다. 거룩한 공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이들의 모임이다. 거룩한 공회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이들의 모임이며 최소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이어야 한다.
거룩한 공회는 교회가 아닐 수도 있다. 거룩한 공회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의 모임으로써 서로 흩어져 있지만 영으로 서로 공유하고 서로 교통하는 이들일 수도 있다. 비록 그들의 얼굴을 만날 수는 없을 지 모르지만 비록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진실한 믿으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며 성령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영적인 모임이 있을 것이다. 영은 서로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하나로 통한다.
그것이 바로 성령안에서 일어나는 신비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 된 지체이자 참된 몸이자 참된 교회(공회)이다.
지금 당장은 나 혼자인것 같아 보이지만 아니다. 나와 같은 진실한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이들이 어딘가에 분명 존재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서로 서로 떨어져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되진 않으며 그들의 모습이 확인이 되진 않을 진 모르지만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있음을 분명 믿는다면 나와 같은 이들이 어딘가에 있음을 의심하지 말라.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어딘가엔 분명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있는 것과 같이 누군가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들과 영적인 교통이 있을 것이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웨슬리에겐 모라비안 교도들이 있었다.
물론 모라비안 교도들과 웨슬리는 끝까지 함께 하진 못했다. 그러나 모라비안 교도들과 웨슬리는 서로 교통을 하였다. 그러니 영적인 교통이 감리교회 안에서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장로교도 가운데도 침례교도 중이나 순복음이나 심지어 이단과 타 종교 안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쫓아 진실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편견과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성도는 그 진실함으로 서로 교통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식적인 성도들은 거룩한 공회에 들어올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성도라 불려지지만 실상은 거짓의 자녀이며 외식하는 독사의 자식들이다.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외식하는 감독이 보이는 가? 그렇다면 그 감독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한다.
외식하는 목사가 보이는 가? 그렇다면 그 목사와도 함께 하지 말아야 한다.
외식하는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가 보이는가? 그렇다면 그들과도 함께 하지 말아야 한다.
후에 회심을 하게 된다면 외식하는 이들은 모두 회개케 하고 돌이키게 해야 할 전도의 대상들이다. 전도는 세상 사람들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받게 된다면 외식하는 이들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따라 진실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 진실은 이것이니 "회개하라! 천국이 가가이 왔느니라."이다.
참다운 회개 즉 회심을 하게 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전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웨슬리는 외식하는 이들을 향하여 외쳤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말이다.
평신도에게 전도 받는 감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집사와 권사에게 전도 받는 장로와 목사가 아니되길 바란다.
그러나 분명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다.
"처음 된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감독이라고 성도들과 교통할 것이라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목사와 장로라도 성도들과 교통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가 되고 성령이 머무는 거룩한 공회에 속한 성도들이 교통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회심은 이러한 교통을 하게 할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참된 성도들과 교통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살았다고 생각되는 이들과도 교통하게 될 것이다.
참된 성도는 죽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이들과 교통하지 않고 참된 성도들과만 교통을 하는 것 뿐이다.
이러한 교통이 없는 이들은 아벨이 죽었다 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롯한 많은 믿음의 선조라 불리는 이들이 다 죽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들의 몸은 흙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영은 살아서 지금도 말하며 가르치며 성도들과 교통을 하고 있다.
이일이 어찌 가능할 수 있는 일이냐고도 묻지 말아라.
성경을 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11:4b)
사람으론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시며 성령이 이모든 것을 가능케 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성령을 받기 전 즉 회심하기 이전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하려는 하나님의 일은 진짜 하나님의 일이 아닌 인간의 욕심에서 나온 열심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러니 성령 받기 전에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진실하게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라.
그러면 언젠가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고 회심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농사꾼은 농사의 일로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이며 어부와 광부는 어부의 일로 광부의 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며 사무를 보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거나 공적인 업무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일만이 하나님의 일이라 가르치는 외식쟁이 목사들의 가르침을 조심해야 한다.
(교인의 숫자를 늘리려는) 전도는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이라 세뇌시키려는 목사들의 가르침을 조심해야 한다.
진실한 참 믿음을 갖은 목사는 절대로 교회의 일과 숫자를 늘리려는 전도만이 하나님의 일이라 가르치질 않을 것이니 말이다.
성령을 받고 회심을 하게 된다면 목사는 참 목사다움을 회복할 것이다.
장로는 참 장로다움을 회복할 것이며 권사와 집사 및 평신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령을 받고 회심한 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듣게 될 것이다.
"혹 목사나 장로가 아니냐"고 말이다.
만약 아니라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을 보니 왠지 목사같아 보여서요. 고맙습니다."
"당신을 보니 왠지 장로같아 보여서요. 고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도 타락한 목사와 장로들이 많다보니 이런 말을 세상 사람들로 부터 듣게 될지도 모른다.
"혹 목사와 장로는 아니시죠?"
만약 그렇다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목사님을 보니 왠지 내가 아는 목사같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장로님을 보니 왠지 내가 알고 있는 장로같지 않아 보이네요. 죄송합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것이 참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니다.
이것이 진실로 회개(회심)한 이들의 모습인 것이다.
교리와 장정 제2장 교리
제1절 신앙과 교리의 유산
[14] "기독교 대한 감리회는 모든 개신교인들의 전통적 기독교 신앙을 함께 고백한다. 이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를 두었으며, 기독교 역사와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고대교회는 성경을 거룩한 정경으로 확정하고, 니케아(325년), 콘스탄티노플(381년), 켈케톤(451년) 신조들과 사도신경을 기독교 신앙의 표준으로 확립했다. 이는 복음의 존질을 선포하고 기독교 교리의 정통성을 보존하려는 교회의 노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