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 사역 위기를 만난 목사들.....

오재영
  • 1503
  • 2018-05-05 21:20:41
꽤 여러해 전, 괄목할만한 교회성장이 계속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미국의 중견목회자가 안식년을 맞이하여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50여 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렸다. 계획된 일정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면서 그가 남긴 말이 한동안 교계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제가 50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강단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교회는 단 두 교회뿐이었습니다. 나는 나머지 교회의 성장의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속한 기독교대한 감리회의 성직자 신분인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교회가 지나온 역사에 기록된 내용들 중에는 우리와 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동일한 성경을 사용하면서도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내용들이 많다. 황제의 폭압적인 핍박 속에서 신앙을 이어가든 초대교회에, 로마에 함께 살던 불신자들은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그리 말했다. “그들은 지상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천국의 시민이다. 그들은 규정된 법률을 준수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삶은 그 법률을 능가한다.”

역사상 스스로 남의 윗자리를 차지하려했던 이들 중에 후세사람들로부터 진정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는 아무도 없다. 후세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의 대상은 모두가 이타적 삶을 위해 자리나 직책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았던 이들이다. 그것이 우리의 경전인 성경이경고하는 주님의 말씀이며 우리는 그 말씀대로 믿고 따라야 할 주님의 제자들이다....

18세기 대 각성 운동으로 미국교회를 구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시대를 가리켜 “이시대의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했다. 죄를 알고 두려워하는 자 그는 자신은 물론 그 시대의 교회와 조국을 구하는 이들이다.

교회역사에 위대한 영적각성으로 부흥을 일으킨 이들은 모두가 탁월한 경건 속에서 살았던 이들이다. 동일한 시대의, 대다수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을 거절하고, 힘에 넘치는 수고와 자기의 목숨까지 돌아보지 않는 헌신의 삶을 살았던 원동력은 그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그들만의 “신전의식”의 삶 을 살아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길지 않은 세상, 소명에 따라 살아가야할 구도자들은 지혜(智慧)를 구해야한다. 지혜란 “최선이며 최고인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들을 보는 능력과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는 성향이기에...” 각자 세우신 위치에서 겸손히 섭리와 경륜을 헤아려 그 방향과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다. 반대로 어리석음이란, 오만과 방자함으로“고집스럽게 우주의 조류를 거슬러 헤엄쳐가는 것이며 불어오는 바람에 침을 뱉는 것이고, 정해진 선(線)밖에다 색을 칠하는 것이다.

최근, 교단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들의 모습들은 직분의 경중을 떠나 교단에 속한 모두를 당혹스럽게 한다. 어쭙잖은 법률지식과 부실한 장정을 근거로 목사로서 당연히 할 일들은 소홀히 한 채, 자신들의 수치는 눈감고 의를 빈자한 선동과 거짓으로 포장하여 교단을 흔드는 모습들이 정상적인가? 법정의 초급판사가 이교도인지, 불교도인지 상관도 없이, 이제는 거금을 드려 법원에 공탁까지 하고...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자기의 의(義)에 빠져 있을 때보다 더 위험한 때는 없다.” 우리는 너나없이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자기 의를 내세우며 허세로 객기부리고 있을 한가한때가 아니다.

지난해 정회원 연수교육시간에 김남준 목사의 강의안 교안에 분쟁중인 교회의 평신도 대표가 자기교회 목회자를 세상 법정에 고소한 후에 했다는 말 “내가 우리교회 목사를 감옥에 보낼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비루(鄙陋)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 하는 도다.)라는 말씀처럼, 영성이 바닥을 치니 장로 목사 상관없이 한마디로 가엾고 불쌍한 그 목사에 그 장로 아닌가?...

지금 교단에 속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1년 경상비가 3천을 넘지 못하는 교회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목사가 소유한 금전이라면 성도들의 헌금일터인즉, 그 돈은 어데서 들어온 돈 인가, 그리하고도 그 길이 순탄하리라 기대하는가? 지금도 사역의 현장에는 여러 가지 표현하기 힘든 문제 속에서 수많은 동역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의 염려와 함께 눈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는 내용 중에, “크랜머(Cranmer)의 기도 집은 해마다 성도들에게 구약은 한번, 신약은 두 번 통독하도록 되어있다. 청교도인 윌리엄고지(WilliamGouge)는 날마다 규칙적으로 성경을 열다섯 장씩 읽었다. 부감독이었던 고(故) 헤몬드(T.C.Hammond)는 3개월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했다.” 고 소개되어 있다. 오늘 영혼을 교도 할 우리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그러므로 진리를 따라 부름 받은 목회자에게는 아무리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복음대로 살고 그것을 전하려면 고난은 당연하고 불가피한 것이다. 그것은 목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서 목회자자신이 먼저 온전한 신자가되어 일평생동안 잊지 않을 하나님의 엄위를 아는 지식을 전수받음은 말이 아닌 주를 대면하기까지 이어지는 고난(苦難)의 과정을 통과케 하심으로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가 정상적인 목회자로서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에게 있어서 고난은 당연하고, 숙명적인 것이며 이 숙명적인 고난(苦難)을 대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그의 초인적인 인내와 억지가 아닌, 함께하는 가족과 공동체모두가 참고 견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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