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배반에 대한 예고(마 26:31-35)

최세창
  • 1412
  • 2018-06-13 16:27:38
제자들의 배반에 대한 예고는 마가복음 14:27-31과 누가복음 22:31- 34과 요한복음 13:36-38에도 기록되어 있다.
마태는 이 부분을 【31】“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로 시작한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나와 감람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하신 말씀일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동기는 베드로가 목숨을 버릴 각오로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요 13 :36-37)과 배반할 제자들을 경고하실 필요성을 느끼신 것이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의 “버리리라”(스칸달리스테세스테, σκανδαλισθήσεσθε)는 5:29의 주석을 보라.
여기서는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에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는 배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예언은 제자들이 도망함으로써 성취되었다(26:56).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는 스가랴 13:7을 자유롭게 인용하여 예고하신 것이다. 그 곳에서는 목자는 왕을 의미하는 것이고, 양은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구절은 마지막 날의 심판과 구속에 관한 내용의 일부이었다.
{헨리(M. Henry)는 예수님의 예고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것을 미리 아셨으나 제자들과 식탁을 같이하는 것을 환영하셨다. 그들의 죄와 실패를 미리 보셨으나 그들을 거부하시지 않았다. 우리는 뒤에 죄의 길에 떨어지는 두려움 때문에 주께 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위험이 크면 클수록 거룩한 법령을 양심적으로 부지런히 지킴으로써 자신을 더욱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막 14:27의 주석).
자신에게 일어날 사건의 과정을 철저하게 인식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 후에 다시 제자들과 만나게 될 것을 지시하신다.【32】“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이 약속은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장소를 암시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난 후에”는 시간 규정이나,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수립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제 “갈릴리”(2:22의 주석을 보라.)는 “예수께 대한 회복과 갱신의 장소로 지정된다. 거기에 흩어졌던 양들이 다시 모이게 될 것이고, 그들의 목자와 다시 결합될 것이다. 이 선언의 중요성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 천사들을 통해 반복하여 강조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W. L. Lane).}(막 14:28의 주석). 그때 거기서 제자들은 참 제자로서 다시 모이게 될 것이며, 비로소 참된 연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28:16, 막 16:7).
예수님에게서 대단히 섭섭한 예언을 들은 제자들 중 베드로의 반응에 대해, 마태는 【33】“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한 점을 미루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한 그의 호언장담이 진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이 내일도 변함없을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의 사랑과 진실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의 강력한 항의는 31절의 예수님의 예고에 모욕을 느꼈고, 32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자신만은 예외라고 큰소리치는 베드로의 태도는 “제자들이 이미 해체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그는 은혜에 의지하는 대신에 자신의 힘만을 의지한다”(J. Gnilka, 하권, p. 335).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가 예수님의 말씀, 즉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를 그대로 믿는 대신에 자기의 뜻을 더 신뢰하여 “말씀을 논하는 죄를 범했고”(W. Hendriksen), 그런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는 대신에 자신의 힘을 더 의지했다는 것이다.}(막 14:29의 주석).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 자신조차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우쭐했으며, 자신만만했으며, 자기기만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는 주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의 나약함과 변덕스러움을 잊고 있었다.
베드로의 큰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에 대해, 마태는 【34】“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하였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는 5:18의 주석을 보라.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가 마가복음에는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14:30)로 되어 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가 마가복음에만 있으므로 마가가 베드로에게서 직접 들은 것임이 분명하다(W. W. Wessel).}(막 14:30의 주석).
“오늘 밤 닭 울기 전에”는 오늘 새벽이 오기 전, 즉 아주 가까운 때를 지시하신 것이다.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아주 철저한 부인이요 배신을 뜻하는 것이다. {헨리(M. Henry)는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그가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 더 나쁘게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버릴 것이지만, 베드로만은 그리스도를 부인할 것이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라고 하였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큰소리를 친 베드로가 결국 주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지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예언자로서의 예수님을 본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앞으로 있을 베드로의 마음의 움직임까지 알고 계셨다. 예수님의 예언은 그 죄에 대한 예방의 의미와 죄를 저지른 후에 회개를 위한 의미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경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는 더욱 큰소리를 쳤고, 이에 질세라 다른 제자들도 그와 같이 말하였다. 【35】“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한 베드로의 큰소리는, 적어도 그때의 베드로의 진실한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실, 그 확신, 그 각오는 단 몇 시간도 지속되지 못하였다. 그와 같이 말한 “모든 제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의 참 모습이다. 다른 제자들을 비롯하여 {“베드로는 마음속에 성령의 힘이 없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알지 못했다”(R. Earle). 그러므로 슈바이처(E. Schweizer)는 “절대적 희생을 할 준비는 충분하지 않다. 진지하게 순교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라 할지라도,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상황에 처해 보기 전에 자신과 자신의 믿음의 힘을 판단할 때,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기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를 구원할 유일한 것은 예수님의 약속뿐이다(막 14:28).”라고 설명하고 있다.
헨리(M. Henry)도 “만일 그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사 당신을 부인하지 말게 하시고, 나를 이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시고, 이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말했더라면, 막아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스스로를 신뢰하였다.”라고 비슷한 설명을 하고 있다.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고 하였다.}(막 14:31의 주석).

※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 1판 1쇄), pp. 670-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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