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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변안렬
도현종
- 1636
- 2018-06-12 02:25:29
그가 간신열전에 수록된 것은 오로지 조선의 건국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또한 변안렬은 1351년에 진사시에 장원 급제했던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용(武勇)과 함께 문재(文才)도 갖췄던 문무겸전(文武兼全)의 고려 충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변안렬은 안우(安祐)와 함께 1359년에 침략한 홍건적을 패주시킨 공으로 2등공신으로 판소부감사(判小府監事)에 올랐고
우왕(禑王) 때는 추충양절선위익찬공신(推忠亮節宣威翊贊功臣)의 호를 받은 뒤 양광전라도 도지휘사 겸 조전원수(楊廣全羅道都指揮使兼助戰元帥)로서 나세(羅世)·조사민(趙思敏) 등과 함께 왜구를 크게 물리치고 돌아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승진했다.
변안렬과 관련한 업적에서 재검토해야 할 전투가 있다. 바로 1380년의 황산대첩(荒山大捷)이다. 이 전투는 고려가 왜구를 격퇴한 큰 전투인데 일반적으로는 이성계의 전공이 크게 부각된 승리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황산전투에서는 변안렬이 도순찰사인 이성계보다 더 책임이 무거운 도체찰사로 참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전투 후에 나라로부터 받은 포상이 변안렬과 이성계가 동등한 금 50량을 받고 있는데, 변안렬의 전공이나 전투의 양상은 전혀 기록돼 있지 않다. 더구나 황산대첩은 ‘고려사’간신열전인 변안렬전에 이성계의 전공만이 아주 크게 부각돼 서술돼 있는 것이 역사서술에서의 편파성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가진자에 의하여 평가되기때문이다.
그 이유는 변안렬이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부정하고 자기의 죽음과 교환한 충절으로 고려에 충신으로 남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위화도 회군(1388)은 변안렬 뿐만이 아니라 이 시기에 생존했던 인물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김저(金佇)가 우왕을 여주에서 만나자 우왕이 울면서 말하기를 사이가 좋은 곽충보(郭忠輔)에게 이성계를 제거할 계획을 말하라고 했는데 곽충보는 이 사실을 이성계에게 직접 알렸다. 그리고 김저는 변안렬·우현보(禹玄寶)·이색(李穡) 등과 연루됐다고 한 뒤 옥에서 사망해 그 진실을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그러나 이성계는 이 사건을 반대파를 제거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삼게 되었고 고려사’간신열전에 변안렬을 수록해 조선 건국을 반대했던 것에 대한 역사적 응징을 하기도 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건국세력에 동조하지 않고 고려에 충성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후대에 왜곡돼 군공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현실과 역사의 양면에서 불운하게 됐다.
1389년(공양왕 1) 10월11일은 이성계의 생일이었는데 이날 변안렬과 정몽주를 제거하려고 한다. 변안렬은 조선개국에 아주 걸리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성계는 자신의 생일을 핑계로 정몽주와 함께 변안렬을 초대했다. 이때 역성혁명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던 이방원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런들 어떠하며 전런들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하여가(何如歌)’를 부르자,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화답했고 변안렬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불굴가(不屈歌)’를 불렀다.
내 가슴 콩(斗)처럼 구멍 뚫어 穴吾之胸洞如斗
새끼줄로 꿰어 늘리고 또 늘려 貫以藁索長又長
앞 뒤에서 끌고 당겨서 갈리고 또 찢겨져도 前牽後引磨且
너희들 마음대로 하게 하지는 못하겠다 任汝之爲吾不辭
내 임금 빼앗는 일에 나는 따를 수 없다 有慾奪吾主此事吾不從
변안렬은 국제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무장이었으며 제주의 민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다. 그리고 마침내 변안렬은 고려의 충신을 선택한 인물이었다. 당시에도 변안렬의 충절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몽주는 변안렬의 제문을 다음과 같이 작성해 그의 우국충성심과 죽음을 애도했다.
진실한 벗이며 시중 직책을 맡고 있는 영일인 정몽주는 술잔을 부어 공의 묘에서 아륍니다. 늠름한 것은 추상과 같은 공의 충열이요, 열렬함은 한낮의 해와(白日) 같은 공의 의절이었습니다. 이 밤에 큰소리로 우오니 어느 날이든 감히 잊겠습니까? 올리는 제수는 비록 많지 않으나, 마음으로 통하는 우정은 두터우니 바라건대 혼령께서는 오셔서 드시옵소서. 아! 원통하구나.
정몽주는 기억하지만 변안렬은 거의 모른다.
정말 충신의 길을 간 인물이다.
결국 정몽주와 변안렬은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되고 간신이란 오명을 쓰게된다.
누구의 줄을 잡을것인가?
주님의 줄이다. 이학교 저학교 회장의 줄이 살길이 아니다. 새물결 헌물결 흔들어봐야 진흙탕만 더해진다.
사울은 하나님 잊어버리고 무당찿고 그렇게 전쟁에서 죽었고 다윗도 하나님 잊어버리고 간음하고 두아들 죽게된다.
감리교회 성령의줄 붙잡아야산다. 회장줄은 망함이다.
변안렬 보고싶다.
성령의 사람들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