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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국번에게서 배워라
도현종
- 1642
- 2018-06-09 22:02:09
‘증국번曾國藩’ 후회 없이 용서하고, 원망없이 살아라'
청나라는 종이호랑이였다.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민란이 끊이지 않았고 외세의 침략으로 국가의 재산은 하나둘씩 유출되었다. 이런 존망의 위기에 ‘증국번’의 존재는 청나라를, 아니 중국의 백성을 지키는 외로운 등불이었다. 그는 청렴, 성실, 인내, 관용의 처세학으로 청왕조가 아닌 백성을 섬긴 시대의 마지막 재상이며, 유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천재적인 기질보다는 노력과 관용으로 일구어낸 충신의 대표적 인물이다. 벼슬이 되기위한 시험도 10년만에 합격을 한다.
돈과 명예와 술수 큰교회 교인많으면 회장되는 우리 공동체의 회장님들이 배워야할 인물이다.
중국의 전통 공연 ‘변검’이 있다. 서천성에서 유래한 변검은 순식간에 얼굴에 쓴 가면을 바꾸는 것으로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중국의 대표적인 기예이다. 흔히 처세술에 능한 자들을 ‘변검에 능한 자’라고 평가한다. 역사가들은 중국 역사상 위대한 ‘처세학의 달인’으로 정직함의 대명사인 증국번을 꼽는다.
태평천국의 난, 염군의 난을 진압한 군사 전략가였다. 시문과 경전에도 능한 유학자이며 무너져가는 청나라를 마지막까지 붙잡은 시대의 충신이기도 했다.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과시한 인물이다. 공산당의 모택동이 “근대 중국의 인물 중에서 나는 오로지 증국번에게만 탄복할 뿐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모택동과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한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조차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 증국번은 가히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고 존경을 표했다.
유연하고 현실적인 정책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적재적소의 인재 등용과 후계 양성, 실용적인 제도개혁 등은 물론이고 강인하면서도 관용을 베푼 재상으로서의 완벽성이 현재의 중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증국번은 어려서부터 매일 공부만 하고, 끝없이 도전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근면과 끈기의 자세를 배웠다. 공부만 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살림을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역시 강인한 여자였다.
증국번은 특별할 것이 없는 관리였다. 하지만 그는 과거를 통과하면 공부를 중단하는 보통의 관리들과는 달랐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간언을 했던 충신, 열사들의 전기를 공부하며 자신도 그들의 행동을 본받기로 한다. 1850년부터 약 2년 동안 증국번은 황실과 조정에 대해 직설적이고 대담한 간언을 수시로 황제에게 올렸다.
1842년 증국번은 상소에서 이 같은 실정을 낱낱이 황제에게 고했다. 한족으로 이루어진 녹영군, 만주족으로 이루어진 팔기군은 무기, 월급, 사기를 상실한 군대가 되었으며 고리대금과 관리들의 부정으로 농민들은 유민이 되어 곧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증국번은 이때 교훈을 얻었다고 훗날 술회했다. ‘정치란 현실적 정무감각과 백성을 세심하게 살피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단지 도덕적 기준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851년 청나라군이 기독교계 신흥종교를 공격한 것이다. 교주 홍수전은 자신을 예수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며 태평천국을 개국하고 난을 일으켰다. 태평천국의 리더 이수성은 치밀한 전략으로 남경을 점령하고 남경을 태평천국의 수도 천경이라 바꿨다.
태평천국군은 ‘청나라, 를 몰아내고 모든 백성이 함께 땅을 일구고, 같이 음식을 나눠먹고 더구나 남자와 여자가 모두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라는 구호로 양쯔강 유역을 점령하고 북경까지 그 세를 확장했다.
중국번이 나서게된다.. 위기도 있었다. 해전에서도 패하고 특히 항저우 연안 도시 치먼에서 증국번과 상군은 태평천국군에게 포위되자 위기에 처한 증국번은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증국번은 강한 인내심과 적절한 인재 등용, 유연한 전술, 소통의 지휘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증국번은 노련한 지휘관은 아니었다. 상군을 조직하고 양성하는 과정에서 너무 강한 훈련으로 부하들이 반발해 한때 반란이 일어날 뻔도 했다. 또한 수군을 양성하는 기간에는 황제가 빠른 출진을 명했지만 증국번은 듣지 않았다. 그에게는 황제의 조급한 명령보다 훈련 받은 병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옆에는 여우 같은 간신들이 들끓었다. 그들은 황제에게 “증국번이 강남을 지배하는 권력 놀음에 빠진 것 같습니다”라는 모략을 일삼았다. 하지만 증국번은 황제의 명령을 무려 3번이나 거절한 끝에 준비된 상군으로 전쟁에 나가 승리했다.
태평천국군의 명장 석달개가 상군에 체포됐다. 그는 증국번에 대해 “처음에 증국번을 능력 없는 장수로 알았다. 하지만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치밀한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비록 적장이지만 탁월한 지휘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리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지고가야한다. 감리회 주님으로 가득한 사람이 메고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