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회고 하면서

김정효
  • 1517
  • 2018-06-19 10:44:35
이 글은 동갑내기 내 친구가 미국에서 자기모교에 보내온 글이다 6.25를 어찌잊으랴...!

나와 6.25(동란,사변)

9.28 수복
9월 28일은 중앙청에 태극기 올라간 날이고 그 이전 며칠간 우리 동네는 전장 한복판에서 시달렸다. 와우산과 노고산 사이에 있는 우리 동네는 두 전투 내내 노출 되어 있어서 마을은 초토화되고 주민들 희생이 많았다. 우리 식구(부모님 누님 나 동생)는 몇몇 주민과 함께 철도 보선 창고에 기대 있었는데 바로 앞에서 포탄이 터졌다. 아찔한 순간 지나고 눈을 떠 보니 몇 명은 죽어 있고 몇 명은 비명 지르고 있다. 누님이 못 일어나서 보니 복부에 파편 맞으셨다(과다 출혈로 그 날 밤 내 주여 뜻대로 찬송 부르시다가 하늘나라 가심) 내 무릎에는 누군가의 골이 떨어져 있고 흰 옷은 붉은 옷 되어 있고 남의 살점이 많이 붙어 있다. 피 비린내 때문에 여러 날 구역질 했다. 전투가 훑고 간 뒤 흙만 살짝 덮인 주검 많이 봤다.

1.4 후퇴
철 수
1951년 1월 3일 해질 무렵부터 시내 곳곳에서 불이 나더니 밤 10시 쯤에는 충무로가 불바다 됐다. 퇴계로 건너편 우리집에도 불이 옮겨 붙을까봐 집을 나와 남산 입구 로타리에 가서 보니 10여명 주민이 몰려 있어 합류했다. 그 사이 군인 차들이 한강 쪽으로 가더니 다음 날 새벽 3시쯤에 미군 Jeep차 한대 지나가고 조용해 졌다. 그 때쯤 불도 잦아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피 폭
그 날(1월 4일)밤 주변 폭격이 심하다가 11시쯤 그친 듯해서 자리에 누웠는데 눈이 뜨여 보니 조명탄이 대낮처럼 밝다. 새우젓독(폭탄 별명)맞은 것이다. 다행히 식구들은 무사했다. 밖으로 나와 전 날 불났던 자리에 가니 아직도 따뜻해서 추위는 면했으나 한참 동안 기총 소사에 살이 쪽쪽 내렸다 밝아서 보니 바로 옆 도로가 벌집이 되어 있었다. 집에 가보니 기적 아니고는 설명 할 수 없는 장면이다, 앞 집 3층 빌딩은 조금만 남아 있고 우리집은 벽 만 나갔다. 좁은 방 한 가운데에 사람 머리만 한 쑥 돌 하나가 앉아 있고 2층 다다미 밑에 있던 무거운 물건들이 반쯤 쓰러진 장롱 뒤로 쏟아져 있다. 등화 관제로 창문 덮었던 두꺼운 일본군 담요는 갈기갈기 찢어져 건너방 끝에 널부러져 있고 바닥에 떨어진 괘종 시계를 보니 12시 정각이었다.
함포 사격
피폭 후 한 은인 덕으로 필동에서 수복 될 때까지 살았다. 3개월 사는 동안 다른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루도 빠짐없는 함포 사격에 시달렸다. 매일 밤 포탄이 드문드문 무시로 아무데나 떨어진다. 요란 사격이다(요란 사격:적을 잠 못자게 하는 포병 전술) 서쪽하늘에 번쩍 섬광이 일고 나면 한참 있다가 쉭쉭 포탄이 날아가고 조금 있다가 둥둥 북소리가 난다. 동네에 한 발 떨어져서 가보니 가공할 위력이다(나는 육군 포병이어서 위력 가늠할 수 있음)

피난길
수복된 지 한 달쯤 지나 피난 갔다 돌아온 시민들이 다시 빠져 나간다(중공군 춘계 공세로 구파발까지 밀렸음) 또 함락되면 다른 것은 고사하고 굶어 죽을 판이다. 앉아서 죽느니 가다가 죽자 하고 피난길에 나섰다. 새벽에 집 나서서 마포 나루- 여의도- 영등포- 시흥- 안양- 군포- 반월- 야목- 남양- 매탄- 어촌- 샘내- 오목이- 고새기 큰 마을. 더 가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장정 하루길을 열흘 넘게 왔으니 그 고생 오죽 했으랴 !

슬픈 기억
(야전 병원)
삼거리 양조장에 야전 병원이 설치되어 부상 병들이 속속 들어 왔다. 환자들이 넘쳐 길에도 눕혀 놓았고 비명 소리가 처절 했다. 양조장 뒤 언덕에서는 시체 태우는 연기가 하늘 덮었다.
(못자리)
연백에서 농사 짓다 온 피난밀들이 수복되면 모 심겠다며 못자리를 크게 만들었다. 첫 번 못자리 웃자라 뒤엎고 두번째도 웃자라 포기 했다.
(전투기)
출격하다가 마을 건너 논 바닥에 추락 한 적 있다. 파편이 아주 멀리 흩어져 있고 조종사 시체 찾다가 겨우 두피 한 조각 건졌다고 한다. 전투기가 출격 할 때는 두 대씩 뜨고 돌아 올 때는 네 대 편대 지어 온다. 가끔 편대가 비어 오는데 빈 것은 떨어져서다. 귀국 마지막 출격에서 떨어지는 경우 종종 있다고 한다.
( 외할머니)
할머님은 왼쪽을 전혀 쓰지 못하셔서 줄잡고 앉았다 누웠다만 할 수 있으셨다. 말씀 하시는 것이나 식사 하시는 것은 아주 정상 이셨다.
할머님은 우리 집안 믿음의 조상이시다
위로 두 자녀 똑 같은 마귀꿈 꾸시고 실패 보신 후 교회 나가셔서 두 자녀(내 어머님과 큰 외삼촌) 건지셨다. 자손들 신앙 교육 잘 시키셔서 지금 5대째 신앙 가정 이어오고 있고 그 사이 많은 일꾼 나왔다.
할머님은 개척자셨다
할아버님이 동학군에 가담 하셨다가 돌아 가시자 어린 자녀 데리고 시골(강경)에서 대처(군산)로 나오셨고 평양 할아버님과 재혼 하셨다. 또 네 자녀 모두 신 교육 시키셨다.이 모든 것이 당시 통념으로는 파격적 행보셨다.
성품
한마디로 여장부셨다. 절망적인 상황이신데도 화통하셔서 잘 웃으시고 우스개도 하시고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셨다. 과격하셔서 딸 사위(내 부모님)한테 모진 말 하셔서 나는 할머님 싫어했고 때때로 대들었다.
사건
파출 소장도 오지 않던 마을에 경기도 경찰 국장이 와서 할머님한테 세배 드렸다(당시 외삼존은 치안국 부국장)
일화
할머님은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아서 말 동무 아쉬워 하셨다. 장 날 집 앞 큰 길 오가는 사람들 중 그럴듯한 사람(중년 부인) 골라 쉬어 가라며 부르신다.’죽을 고비 세 번 넘기셨군요’ 첫 번 미끼 던지신다. 거의 다 그렇다고 하는데 간혹 없다고 버티면 ‘앞으로 조심 하슈’로 슬쩍 넘기신다. 두번 째 미끼 던지신다.’ 군에 간 아들 있으슈?’ 있으면 영 한 점쟁이로 알고 바짝 다가 앉는다. 그 아들 위해서 기도 해 주고 환상 받아 소식 알려 줄 테니 사진 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이렇게 말 벗 낚으셨다. 이런 말동무 몇 사람 있어서 수원 장날에는 바쁘셨다. 그 사람들에게 전도 잊지 않으셨다.
할머님은 고새기에서 1년여 사시다가 부산 외삼촌 집으로 가셨는데 가신지 오래지 않아 하늘나라 가셨다.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파란 만장한 한 평생 사신 할머님 지금도 생각하면 죄송하고 마음 짠하다.
(종합 학교)
하우스 보이 같이 일하던 형(경기공 4년)이 피난 학교 생겼는데 같이 다니자고 해서 함께 가 등록했다. 학교는 ‘서울 피난 수원 종합 학교’(수원 종합)로 서울 농대 옆 잠업 시험장 2개 잠사에서 잠정 개교한 공립 학교다(1951. 가을 개교) 거기서 형은 다음 해에 간부 후보생 갔고 나는 3년 중학 과정 마쳤다. 고새기에서 학교까지는 5리쯤이어서 다닐 만 했고 길 가에 잔솔밭이 있어서 솔잎 많이 따 먹었다. 건강에 도움 되었을 것 같다. 하교길에 조선 일보 지국(지국장 김현철 삼거리 정미소 사장님)에 가서 신문 받아 배달했다.
교육 환경은 불문 가지다.
전투기 소음- 출격 전투기가 교실 바로 위로 간다. 옆 사람과도 대화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서 매일 한 두 시간, 때로는 4시간 수업하지 못한다.
콩나물 시루- 한 교실에 6,70명 모여 공부 한다.
칸막이- 잠실이어서 벽이 없고 판자로 얼기설기 칸막이가 되어 있어 옆 방 공부 다 들린다
교육 자료- 의자도 교육 보조 자료도 거의 없어 실험은 꿈도 꾸지 못하고 교과서에만 의존했다.
유대감- 애교심, 친밀감, 격려…거의 없었다.
서울 중학교 동창이 가장 많았을 것 같고(14명) 강신철, 김석환이 반장 했다.
그 때 만났던 분들이다.
이흥렬 음악 선생님- 자칭 음악 대통령이라시며 가곡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다.
정유세 체육 선생님- 모교 선생님이시다. 훈육 담당 하셔서 무서웠다.
도상오, 신인범, 이범호- 평생 친구다.
휴전 되자 학교는 폐교되고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각자 도생, 나는 서울고 1학년으로 편입 #8회 졸업)

맺는말
60여년 전 이야기 하면서도 지금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김일성은 한반도를 쑥밭 만들고 내 가족들을 포함하여 400여만 무고한 생명 죽이고 그동안 수많은 도발에 사과 한마디 없었다. 김정일 김정은은 같은 도발 계속 하였다 이런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같은 민족이니 평화를 위해 북한과 손잡고 통일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무감각한가? 남북정상회담 북미회담을 하며 김정은은 "발목잡는 과거 이겨내고 왔다" 하는 의미는 ? 젊은 북의지도자 진정성을 기대한다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은 풍비박산 되어있고 나라 경제가 어렵다하니(하나님 ! 도와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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