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회장이 뭐냐?

도현종
  • 1820
  • 2018-06-30 21:52:12
일반 사회인들에게 감독회장하면 정신나간 사람 취급받는다. 감독은 무엇이고 그위에 회장은 뭐란 말이냐고 물을것이다. 감독회장 사건이 감리회를 공교회적 개념에서 철저한 개인주의로 몰아간다. 묻자? 감독회장이 무엇인가? 감독이 뭐란말인가? 행정적인 편의를위해서 세운... 감독 감독회장 지나가던 소가 웃을일이다. 그런 이유로 감리회 얼마나 성장했는가 퇴보도 그런 퇴보가없다.

함께 한다는 대동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조선 때 대동사상을 주창했던 정여립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조선 시대에 평등한 세상을 꿈꾼 혁명가 정여립(1546~1589)은
전주시 남문 밖(지금의 전북 완주군 상관면 월암리)에서 태어났다. 불합리한 시대 상황에 환멸을 느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그는 제비산(전북 김제시 금평저수지 근처)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조직했다. 그러나 정철 등 서인 쪽은 정여립이 황해도·전라도 지역의 민중들을 모아 모반을 꾀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결국 그가 의문사하면서 ‘정여립 모반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기축옥사’는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 이 사건으로 당대의 지식인 1천여명이 희생됐다.

기축옥사 3년 뒤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는데, 만약 조선의 지식인이 대량 희생된 이 사건이 없었더라면 임진왜란을 막을수도 있었다. 못난왕 선조의 큰 착오이다.

임란 때 승병을 조직해 싸운 서산대사·사명당도 이 사건에 연루됐다가 고문을 받고 풀려났다. 사명당 등이 그때 죽었더라면 임란 때 제 역할을 하지못하게 될수밖에없다.

“정여립은 ‘천하가 공공의 물건인데, 어디 일정한 주인이 있는가’라는 말을 남겨 나라의 주인이 군주가 아니고 민중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측면에서 정여립은 영국의 공화주의 혁명가 올리버 크롬웰(1599~1658)보다 60년 앞선 한국 최초의 공화주의자로, 엄혹한 왕조 시절에 시대를 앞선 사상을 주창한 혁명가”이다.

“정여립 대동사상은 허균의 ‘호민론’(천하에 두려할 만한 자는 오직 백성 뿐이라는 사상)과 정약용의 ‘탕무혁명론’(중국 탕왕과 무왕이 왕조를 교체한 것)으로 이어졌고, 근대의 출발점인 동학농민혁명으로 분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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