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 불지마라 선비 박세당

도현종
  • 1328
  • 2018-06-29 17:40:31
감독회장해서 뭐하려고 나팔 불지마라

생애 및 활동사항

4살 때 아버지가 죽고 편모 밑에서 어렵게 원주·안동·청주·천안 등지를 전전하다가 13세에 비로소 고모부인 정사무(鄭思武)에게 수학하였다. 1660년(현종 1)에 증광 문과에 장원해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고, 그 뒤 예조좌랑·병조좌랑·정언·병조정랑·지평·홍문관교리 겸 경연시독관·함경북도 병마평사(兵馬評事) 등 내외직을 역임하였다.

집의·사간·홍문관부제학·이조참의·호조참판·공조판서·우참찬·대사헌·한성부판윤·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의 관직이 주어졌지만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702년(숙종 28)에는 이경석(李景奭)의 신도비명(神道碑銘)에서 송시열(宋時烈)을 낮게 평가했다 해서 노론(老論)에 의해 사문난적에 지탄되기도 하였다.

학문과 사상은 성장기의 청·장년기의 관리 생활을 통한 개혁 의식, 그리고 당쟁의 와중에서 겪은 가족의 수난과 어려운 농촌에서 지낸 경험 등을 통해서 형성된 사회 현실관의 반영이라 하겠다.

박세당이 살았던 시기는 보기 드문 민족적 시련과 정치적 불안정 및 민생의 곤궁이 매우 심하였다. 즉 병자호란의 국치와 당쟁의 격화로 말미암아 국력은 약화되고 민생이 도탄에 허덕이던 시기인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외의 현실을 직시하며 국가를 보위하고 사회 개혁을 통한 민생의 구제를 목표로 하는 자주 의식을 토대로 해서 학문과 경륜을 펼쳤던 것이다.

학문의 근본 입장은 당시 통치 이념인 주자학을 비판하고 중국 중심적 학문 태도에 회의적으로 보았다.

주자학에 대한 정면 도전이 표면화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 때문에 주자학의 열렬한 신봉자들인 송시열 등은 주자학 비판자들을 사문난적이라 하며 이단으로 배척하였다.

이런 학문 경향을 지니게 된 배경에는 젊었을 때 지녔던 정치와 사회에 대한 개혁적 사고 때문이었고, 또 백성의 생활 국가 보위에 있어서 차별을 본질로 유가 사상(儒家思想)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지방(海西地方)의 암행어사와 함경북도병마평사를 역임한 뒤, 홍문관수찬으로 있으면서 응구언소(應求言疏)를 올린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양반 지배 세력의 당쟁과 착취로 비참한 경지에 이른 백성들의 생활 안정책과 무위도식하고 있는 사대부(士大夫)에 대한 고발이었다.

병역의 균등화를 주장했고, 모든 정치·사회 제도가 문란하므로 개혁하지 않을 수 없고 모든 법률이 쇠퇴했으므로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국민 가운데 공사천민(公私賤民)이 6할, 사대부 양반이 2할, 평민이 2할인데, 사대부 양반은 8∼9할이 놀고 먹으니 이는 봉록(俸錄)만 받아먹는 나라의 커다란 좀[蠹]이라고 하였다.

이는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명분론보다도 의식주와 직결되는 실질적인 학문이 필요하다는 실학 사상을 나타낸 것이라 보겠다.

백성을 밝힘이란 지식과 언어에 있지 않고 실천에 있으며, 백성들이 실질을 떠나서 허위의 비현실적인 가치관만을 배우게 되면 이는 다스리려 해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현종의 잦은 온천여행으로 온행(溫行)을 자제할 것과 이에 따른 폐단을 직언하고 나아가 국왕과 대신의 직무 태만, 왕실의 재물낭 비 등을 거리낌없이 거론하고 국정의 쇄신을 요구하였다 .

그리고 물러나 수락산에서 은거의 고된 노력을한다. 그곳에서 매월당을 기리는 추모사업과 더불어 수락산 곳곳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는 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고 그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사변록(思辨錄)』을 저술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의 조선의 성리학자와 성균관 유생들은 서계의 견해에 대해 지탄하는 상소를 올려 말년에 유배를 가는 원인이된다.

큰 아들 박태유는 효자로써 필명을 날렸으며, 둘째아들 박태보는 장원급제로 조정에 나아가 충신으로서 명성을 올렸다. 셋째 아들 역시 한성부판관의 관직에 이르렀다.

이들 형제 이후에도 무려 2,500여 책(400여종)의 전적을 보유한 선비집안이자 학자 집안의 노래를 지켜왔다.

감독회장 감리회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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