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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위한 대승적인 결단이라 함은 비겁한 변명일 뿐 입니다.
관리자
- 1607
- 2018-06-28 20:26:43
운명,
이것이 성경적인 표현이며 목사다움의 표현일까?
나는 이 운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늘 바꿔 말하려 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라고 말이다.
그래 성모 목사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 고소의 길을 가야만 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금권선거의 문제가 비단 전명구 목사 한 개인의 문제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모 목사는 이렇게 말을 했었다.
"전명구 목사를 끌어내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조경열이 되었어도, 이철이 되었어도 선거무효를 주장했을 것입니다. 전명구가 당선되었을 뿐입니다."라고 말이다.
성모 목사에겐 운명과도 같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속에 고소장이 든 가방이 있었던 것이다. 이 고소장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소송은 제가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바른감독선거협의회에서 한 것입니다. 본래 신기식과 제가 둘이서 하려고 했던 것인데 신기식이 정직 중이라 빠진 것입니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제가 혼자 남아 있었고, 시작한 것이라 끝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래는 바감혐의 신기식 목사와 함께 하려던 것이지만 신기식 목사가 정직 중에 있었음으로 혼자 시작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바감협, 풀어쓰면 '바른감독선거협의회'란다.
이 단체는 대체 어떤 단체인가? 감리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단체인가? 감리회 선관위을 통해 인정을 받은 단체인가 말이다. 내가 알기론 그렇지 않다. 그냥 사조직이다. 그러니 사조직이 공적인 선거에 개입하려 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불법이 아닐까?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불법 사조직인 '바감협'에서 앞으로 있을 선거를 위하여 '암행 감시단'을 띄운단다. 허허허허허허허 이거 참 웃긴 일이다. '암행 감시단'을 만들어 운행하기 전에 먼저 법을 지키시라. 먼저 바감협이란 불법단체에 대한 적법한 과정과 절차에 의한 선관위의 인증을 받으시라.
선관위의 인증을 받을수 없다면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하여도 참으시라. 내려 놓으시라.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선관위에 요청만 하시라. 엄한 불법적인 '암행감시단'을 운행하며 또 다른 분란의 씨앗을 틔우려 하지 말고 말이다.
이것이 감리교회의 현실이다.
불법을 바로 잡겠다며 불법적인 행위를 정당화 하려 한다.
성모 목사 또한 바감협 소속인듯 싶다. 그러니 감리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정직된 신기식 목사와 함께 고소장을 준비하였지 않겠는가? 정직이면 사적이던 공적이던 어떠한 교단정치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진정 감리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라 할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감리교회가 염려 되거든 차라리 예전처럼 글이나 쓰시라.
성모 목사는 사적인 여러 단체에 가입을 하고 있는 듯 싶다. 김교석 목사와 더불어 장정을 바로 잡는다고 하는 것 같던데... 어쨌든 스스로 여기저기 문어발처럼 사적인 단체에 가입을 하고 있으며 그 단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려 하고 있었으면서 운명처럼 이끌렸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운명을 잘 모르겠다. 성모 목사가 말하는 그 운명에 대해서 말이다.
스스로 선택을 하고선 운명이라? 뭐 운명중에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운명은 운명일테니..... 그냥 그러라 해야겠다. 본인이 고소한 사건을 운명이라 하는 데 누가 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운명이란 단어를 빌어 사명감이라고는 솔직히 하지 말자. 스스로 택하여 간길이라고만 하자.
성모 목사의 말에 의하면 누가 되었건 감독회장으로 당선 된 사람은 끌어 내리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었다고 하였다. 그래, 가룟인 유다도 운명처럼 그리 할 수 밖에 없었겠지..... 베드로도 운명처럼 예수님을 부인했어야 했겠지.... 그렇다고 그 죄값이 가벼워 지는 것일까?
아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향하여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함이 좋았을 것이라 하셨다. 차라리 바감협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차리리 감리교회의 목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 감리교회 안에 이런 목사들이 너무도 많아졌다.
원형수 전관리자, 전용재 전감독회장, 전명구 목사, 박생배 관리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나에게도 그리 생각을 하고 있을 듯 싶다. 그래 나도 입장의 차이에 따라 판단을 한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니 입장 차이로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말자....
운명처럼 끌려간 소송에서 운명처럼 성모 목사가 이겼다. 그래서 감독회장 선거무효가 떨어졌다. 이것에 대하여 성모 목사는 스스로 이리 자단을 하였다.
"이 소송은 취미로 탁구를 치는 일반인이 국가대표급의 탁구선수와 시합을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심으로 이겼습니다.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겼다는 것이다. 글쎄 보기에 따라선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소송은 계속 유지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과 같이 이겼다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선 감독회장선거무효 소송을 취하하겠다 선언을 하였다. 그렇게 취하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7가지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1. 항소심 판결의 확정은 7월 말이 된다. 그러나 보조참가자가 상고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판결이 언제 확정될 지는 모르고 연말까지 갈 수 있다.
2. 재선거는 시기적으로 감독선거와 함께 시행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3. 직무대행의 행보를 보면 속히 재선거를 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4. 감독회장 평신도 선거권자 확정을 위해 임시연회를 열어야 한다.
5. 내년에 실시한다 해도 잔여임기가 아니라 4년제 감독회장 선거라고 주장한다.
6. 4년제라고 하면 유력 주자들이 다 탈락하고 직무대행이 쉽게 당선될 수 있다.
7. 여러 가지 소송과 다툼으로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7가지 이유를 읽어 보니 그나름 이유가 있어 보인다. 정말 감리교회를 위한 용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난 여기서 성모 목사가 내게 말하였던 것들이 보이지 않음이 의아할 따름이다.
그것은 바로 '운명' 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도우심(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7가지의 고소취하에 대한 정치적 정당한 이유는 있지만 그 7가지의 이유는 운명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우심)도 아니란 것이다.
성모 목사는 스스로 자신이 가야할 운명적인 길을 포기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감독회장 선거무효에 대한 소송은 승리하였지만 이젠 하나님의 도우심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젠 내가 알어서 할테니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는 것일 지도 모른다.
감리교회의 개혁을 말하고 대승적인 차원에서의 항소 취하의 이유도 7가지나 있지만 목사로써의 정당성은 사라졌다.
목사로써의 정당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소송을 시작했을 땐 분명했던 목사로서의 정당성은 이제 어디에도 찾아 볼수가 없다. 다만 이것이 감리교회의 개혁을 위한 대승적인 차원에서의 결심이라 하였다.
진정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성모 목사는 이젠 목사의 길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진정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성모 목사는 목사의 사명보단 정치인의 활동이 더 좋다는 표현인 것이다.
진정 그렇다면 더 이상 성모 목사라 부를 이유가 없다. 그냥 성모씨 혹은 성모님인 것이다.
이번 전명구 목사와의 야합, 아니 감리교회 개혁을 위한 대승적인 차원의 결정은 목사로써의 자신의 정체성 및 존재감을 스스로 지운 것이다. 왜 성모님은 스스로 목사의 길을 버리고 정치인의 길을 가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감리회 목사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픈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공명심요? 제가 공명심 때문에 그런다고 보세요? 이름 석자도 아니고 두자에다가 제 이름은 늘 익명이죠. "
'성모'라는 이름이 늘 익명처럼 여겨졌는가 보다. 나는 거룩한 어머니라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거룩한 어머니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버린 감리교회를 감싸주고 안아주고 젖도 물려 주었으면 했었는데 말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철학의 시발점이며 모든 인문학의 기초가 된다.
신학도 거기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철학은 인간으로부터 그 질문이 시작이 된다면 신학은 신(하나님)으로부터 그 질문이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 종점에 다다르면 철학이나 신학이나 비슷한 답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 자신의 존재에 대한 답이니 말이다.
그러한 존재감의 실현을 위하여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목사가 되었으며 감리교회의 목사가 되어 이러저러한 단체에 가입을 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을 나는 '공명심'이라 하고 싶다. 그러나 성모님은 '공명심'이란 단어를 혐오적으로 싫어 했다. 오재영 목사님도 성모님에게 그런 얘기를 했었든가 보다.
"주님은 교회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버리셨는데... 그갓 공명심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공명심으로 천국에 가는가요?"
" 목사님. 죄송한데 그만 합시다. 너무 여기 저기 논리적 비약이 심하네요. 그리고 공명심요? 제가 공명심 때문에 그런다고 보세요? 지금 저에게 훈계하시는군요. 제가 공명심으로 한다구요? 오재영 목사가 그런 얘기를 늘 하더니"
'공명심',
공적으로 이름을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도 같은 마음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공명심'을 왜 혐오적으로 싫어 하였을까? 그것은 분명 오해이고 그것은 분명 자기 미화(의인화)에서 비롯된 왜곡인 것이다.
여기 감게의 목사 중에 그리고 감리교회 목사 중에 '공명심'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공명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 '공명심'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목사이며 또는 성도인 것이다.
우리는 '공명심'을 어떠한 경우에 내려 놓아야 할까?
그것은 주님의 뜻이 내 '공명심'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느끼게 되는 때인 것이다.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자신의 '공명심'을 내려 놓아야 할 때임을 깨닫게 되는 때인 것이다.
주님의 섭리와 경륜 가운데 내 '공명심'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음을 보았을 때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공명심'을 내려 놓고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주님의 섭리와 경륜 가운데 저 좋은 일들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길 바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유익이며 이것이 바로 믿음 있는 자의 빛과 소금 됨이다.
그렇다고 주님은 우리의 '공명심'을 깨트리려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공명심'을 더욱 높여 주려 하심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가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존재이며 거룩한 주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이 찬송을 들어보시라.
성모님은 목사의 길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버리고 교회 정치인(개혁을 위한 야합)이 되었다.
그래서 감리교회를 위한 개혁이라 명분을 내세웠지만 항소취하는 야합이라고 사람들이 생각을 한다.
성모님,
감리교회의 개혁을 위한 대승적인 결단이라 함은 비겁한 변명일 뿐 입니다.
"다 이겨놓은 소송을 취하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이기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소를 취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더 극심한 혼란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고육지책을 따르지 마시고 바라기는 다시 목사의 길로 돌아 오십시요.
극심한 혼란을 염려하지 마시고 바라기는 주님의 섬리와 경륜 속에 이뤄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대하십시요.
그러면 익명의 성모가 아니라 누군가에겐 거룩한 어머니와 같은 목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 식으로 감리교회를 사랑하고 지키세요. 그렇게라도 하는 분들이 있어야죠. 구경꾼보다야 훨 낫죠."
저는 감리교회를 내 식으로 지킬 것입니다.
내 식이라 함은 우선 교리와 장정이며 최우선은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주님의 뜻을 구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교리와 장정을 따르지 않은 감리사의 불법적인 행정치리에 의해 미파가 되어 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