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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감독회장 직무대행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오재영
- 2012
- 2018-06-27 21:28:59
그가 고려대학을 다니다가 군 입대로 근무할 때에, 자기 부대에서 만난, 그들의 표현으로는 악독스럽고, 잔인하고, 그저 사람 패는 것을 즐기는 것 같은 한 상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직업군인 하사관 이었는데, 그가 너무나 사병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그들이 그에게 붙여준 여러 가지 별명들이, 악귀, 거머리, 등등... 근데 한번은 그 집이 이사를 간다고 몇 명을 차출해서 그의 이삿짐 옮기는 이들을 뽑았는데, 하필 그중에 자기도 포함되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일이기에 볼이 부었지만 할 수 없이 트럭을 타고 그 집을 찾아 올라갔는데 가서보니까, 전혀 얘기가 달랐다고 했습니다.
허름한 러닝셔츠를 입고, 문밖에 앉아있는데, 벌써 그 모습자체가 부대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자기가 보니까 그분의 부친은 술 중독으로 벌써 폐인이 되어있는 분이었고, 그분의 어머니는 십 수년째 중풍으로, 여러 가지 병으로 안방에 그냥 시체처럼 누워있는 분이셨고, 그의 부인은 그런 삶을 견디지 못해서 벌써 여러해 전 도망갔다고 했고, 그 집에 아이들 서넛은 완전히 제대로 씻겨 지지 않은 참혹한 모습들이었다고... 그때 그의 마음속에 한 순간에 들어온 게 있었는데, 아~이래서 그랬구나... 바로 이래서 그랬구나... 지금 이제껏 군복을 입고 주먹을 휘두르던 그의 모습이 아니라 고뇌와 삶의 무거운 짐에 찌들린 한 중년 남자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고...
그래서 그 몇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때부터 바빠지기 시작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할머니 목욕을 다 해드리고, 머리를 빗겨드리고, 그 바닥 다 닦아드리고, 그 아이들 이발소에 가서 머리깎아주고, 그리고 이삿짐 다 나르고, 해가지고 늦은 밤까지 일하고, 같이 밥을 해먹고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그날로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그 다음 날 부터는 그가 부대에 와서 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날 그가 깨달은 것은 만일, 자기가 그분이라면 아마 그보다 더 할 수 가있겠구나 하는 그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의 가슴속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은 겉모양만 가지고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인생의 모습이라고, 그 속에 어떤 슬픔이 담겨있는지, 그가 남에겐 보이고 싶진 않지만, 그의 가슴 깊은 곳에 그 어떤 통곡의 눈물이 지금도 흐르고 있는지는 우리가보는 겉모습만으로는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고, 그것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앞문은 명함을 잘 붙이고 페인트칠을 하여 평탄케 보이려고 좋게 보이려고 하지만, 그의 삶을 옆문이나 뒷문으로 들어가 보면 어느 누구하나 상처와 한과 눈물과 슬픔과 고독과 삶의 짐을 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감독님!
어제는 꽤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두 살 아래의 고종사촌 동생의 간암 3기라는 생의 위기의 소식을 듣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40이 넘은 직장생활하는 아들이 자기의 간으로 이식 하겠다는 내용과 이제 70이 가까운 무신론자인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를 생각하며, 얼마 전 생명의 삶 Q.T지에 소개된 에세이 난에 사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인 다그 함마르셀드(Dag Hammarskjold)에 관한 내용을 묵상했습니다.
그는 콩고내전을 중재하기위하여 가던 중 그가 탄 비행기가 추락하여 불길과 함께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 후 며칠 뒤 그의 아파트에서 일기장이 발견되었는데, 그곳에는 자신이 이룬 업적, 그가 만난 대통령, 국왕, 수상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다만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겸허한 내적 성찰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 이었습니다. 그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선된 후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네’라고 대답한다. 운명에 ‘네’ 라고 대답한다. 자신에게 ‘네’라고 대답한다.”
그가 죽음을 몇 주 앞두고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썼습니다. “끝날 까지 계속 갈 용기가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대답은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네’이다. 그가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유엔사무총장으로 재임할 당시엔 까다롭고 혼란스러운 국제 문제가 산재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신생 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많은 정치적 혼란과 전쟁을 야기했고, 미.소 냉전체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마르셀드는 절대 뒤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일평생 인류의 평화를 위해 ”네“하고 달려가 자신을 헌신한 사람, 그는 죽음이 기다린다고 해도 ”아니다“라고 발뺌하지 않았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며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가는 동안 그는 아침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의 성경책 앞 여백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 혼자는 울어도 모든 사람들은 웃고, 네가 죽을 때 너 혼자는 웃지만 모든 사람이 우는 그런 사람이 되어라.” 염원대로 그의 죽음 앞에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가져온 그의 업적을 기려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 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그 함마르셀드는 사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최초의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감독님!
교단본부의 일들이 기도 중에 생각하신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나요?
깊은 내용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다른 이들도 필요하지만, 먼저 전명구 감독님과 두 분이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시지요, 두 분 모두 남은 세월 그리 여유 있는 것 아님을 아신다면 복잡한 문제 해결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끝으로 저나 감독님, 세대에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로마의 휴일」의 주연 배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스타와 함께 만인의 연인이었든 ‘오드리 헵번’, 그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기아에 허덕이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봉사 하고 세상을 떠나기 전, 아들에게 남겼다는 시를 보내드립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P.S. 언젠가 머지않은 날 우리 모두 이 땅을 떠난 후, 흔적을 정리하는 이들이 우리를 기억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드리며 주님 은혜 안에 행복하십시오.
주님사랑으로 축복합니다.
2018년 6월 27일 오재영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