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내려오면서

유삼봉
  • 1888
  • 2018-07-15 16:28:27
그들에게 주의를 주십니다. 내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기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명령하십니다. 산 아래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 있도록 높은 산을 뒤로하고 내려가는 일행에게 채비를 단단히 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남을 아느냐 이를 보았느냐 말로 설명이 가능하겠느냐. 황홀경에 들어 엘리야 모세 예수를 위한 집을 짓겠다니 헛된 말이라 일축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죽지 않고 다시 산다는 것을 말하지는 못한다고 하십니다. 인자가 죽고 사람들 가운데 살아날 때까지 제자들은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가 구세주이심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죽음에서 살아나온 경험을 공유함이 믿음입니다. 황홀경을 경험한 것은 타인을 위한 것. 기이한 경험 거기에 머물지 말고 삶의 현장으로 내려가서 사람들을 위해야 합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나는 예수는 하늘 뜻과 연결되었고 죽는다는 것은 살아나는 과정입니다. 그들이 죽어 살아보지 못했으니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합니다.

예수께 묻습니다. 왜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요. 하늘이 일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여기는데 하늘 정의가 아루어지지 못한 책임이 하늘에 있다고 여깁니다. 엘리야가 돌아오더라도 사람이 죽고 살아나지 않고서는 엘리야가 수백 번 다시 오더라도 소용없습니다. 가라사대 과연 엘리야 세례 요한이 먼저 와서 목숨으로 죄의 뿌리를 뽑고자 하였다.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하늘 정의가 펼쳐지면 억울한 일이 없으리라 여겼겠으나 아닙니다. 고난 받고 멸시를 당하면서 사랑으로 행하는 인자의 일이 사랑으로 꽃 필줄 여긴다면 산 아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실망 하릴없습니다. 인자에 대한 기록처럼 하나님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교류함에 무엇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일에 고난을 동반하지 않는 법은 없습니다. 하늘 정의를 땅에서는 함부로 대합니다. 죽기까지 사랑으로 행하여도 산 아래 사람들은 임의로 대우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랑으로 대하시는 방법밖에 무슨 수가 있을까요. (마가복음 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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