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다 !

이경남
  • 1079
  • 2018-07-29 07:57:34
아빠다!
-이경남

당인리 화력 발전소 인근의
한강 하구에서 공수 3주차 교육을 받았다
늪지에 빠져 새앙쥐처럼 홀딱 젖은 우리에게
주임 상사가 무용담을 늘어 놓는다
공수 하사관 훈련 중
발전소 옆 호수 도강 명령을 내렸는데
수영을 할줄 모르는 세 명의 병사가 익사 했단다
그러나 이 명백한 살인 행위는
사고사로 위장되고 그래
아무 일 없이 넘어 갔단다
그게 대한민국 군대라고 니들도 살고 싶으면
알아서 기라고
그 주임 상사는 일말의 가책도 없이
되려 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벌써 4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군대는 한결 신사적이다
마린온 헬기 추락으로 숨진 다섯 장병들의 영결식은
이제 의장대의 도열과
군악대의 은은한 조가 속에
장엄히 치루어진다
영결식장은 대통령이 보낸 조화로 장식되고
장관도 고개 숙여 조문을 한다
훈장으로 번득이는 정장의 해병대 사령관은
당신들은 우리의 진정한 아들이자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노라고
조국은 당신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노라고
화려한 말 잔치를 펼쳐 놓는다
그러나 헬기 날개 몸통이 분리되며 추락하고
장병들이 몰사한
이 말도 안되는 사고의 영결식에서
정작 우리를 울리고
우리의 마음을 깨우는 것은
이런 입에 발린 조사나 의전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고인들의 영정이 화면으로 띄워질 때
아직 철 모르는 너댓살의 아이들이
아빠를 부르며 환호한다
오른편의 아이는
아빠다!
소리치며 좋아하고
왼편의 아이는
손가락을 내밀며 옹알이듯 아빠를 찾는다
지금 자기 아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지금 자기 가정에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지금 자기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채 아빠를 찾는
이 아이들이
비통스런 영결식장에서 보인 이 모습이
그 무엇보다도
의장대의 엄숙한 도열보다도
군악대의 슬픈 연주보다도
의례적인 대통령의 조화나
장관의 위로보다도
그 진실을 알수 없는 지휘관과 동료들의 조사 보다도
더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통곡하는 엄마의 품 속에서
손가락을 내밀며 아빠를 찾던 두 아가야
정말 미안하구나
정말 잘못했구나
평생 아빠를 찾을 너희들을 생각하니 내 마음도 미어지는구나
그러나 그렇게 구김살없이 소리칠수 있던 그 맑은 모습으로
부디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다오
우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두 아가야!

2018.7.23. 마린온 해병 영결식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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