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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보배로 아는 제사장 같은 삶(만인제사장설의 문제)
최세창
- 1211
- 2018-07-24 20:33:53
여러분의 보배가 뭡니까? 보배로 아는 것에 의해서 사람의 됨됨이가 형성되고, 삶이 만들어지고, 영생의 구원과 영원한 지옥의 멸망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보배를 보배로 알고 추구하는 것은 정말 중대한 일입니다.
보물이나 돈을 보배로 아는 사람도 있고, 지혜나 지식이나 정보를 보배로 아는 사람도 있고, 재주나 기술을 보배로 아는 사람도 있고, 부모나 자녀, 스승이나 제자,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을 보배로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 본문은, 세상의 모든 보배를 다 합친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보배인 영생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2.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와 안 믿는 자
영생의 주이신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습니다. 어떤 버림받은 아픔도,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가 버림받아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 예수님의 아픔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또, 가치를 모르고 보배를 버린 어떤 어리석음도, 영생의 주 예수님을 버린 어리석음에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무지하거나 어리석은 사람들만 영생의 주님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이나 현자나 부자나 통치자나 고관대작도 영생의 주님을 버립니다. 지성적인 무신론자들 중에는 책까지 써서, 그들의 박학다식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주님을 버리게 하는 심각한 죄를 죄인 줄도 모르고 자랑스럽게 저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국교가 정해진 국가들 못지않게 영생의 주 예수님을 버리게 하는 거대한 공동체가 바로 공산국가입니다. 이 사상 곧 자본가 계급의 착취로 가난해진 노동자 계급이 잘사는 새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정작 보배로 아는 것은, 노동자와 농민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닌 권력욕과 물욕과 명예욕과 음욕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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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사실은, 공산국가의 독재자들과 측근의 부정 축재와 방탕, 그리고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은 물론 동지와 친족과 가족을 가리지 않는 대량 살상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성육이신 영생의 주 예수님을 보배로 알고 믿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어느 궁궐 같은 집 앞에서 짐을 잔뜩 실은 예닐곱 대쯤 되는 트럭이 줄지어 출발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쳤습니다. 중국의 어느 고위층 인사가, 죄악의 수단과 방법으로 취득하여 진열하거나, 쌓아 놓은 값비싼 보물 곧 보화를 압수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공산주의자는 자기 인격이나 노동자와 농민이나 유능한 인물이 아닌, 보물을 보배로 알고 온갖 죄악의 수단과 방법으로 엄청나게 많이 소유했지만, 그 모든 보물은 그와 그의 삶은 물론, 그의 집안까지 파멸로 끝장냈습니다.
이 실화는, 영생의 주 예수님을 보배로 여기지 않는 교인들을 비롯한 인류의 안타까운 진면목이고, 마지막 모습입니다. 훨씬 더 안타까운 것은 지옥의 멸망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생의 주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에도 사람에게 버린 바 되셨지만, 하나님께 선택된 보배로운 산 돌이십니다. 베드로는 그 근거로 이사야 28:16을 인용했습니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나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위협을 받았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인 자기의 조언을 마다하고, 애굽과 동맹했던 위정자들에게 성전에서 이끌어 낸 비유로 외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급절하지 않으려면 애굽이 아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시온인 예루살렘에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잇돌을 두신다는 것은, 위대한 영웅이자 가공할 왕인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역사적 사건이나 하나님의 예언에 담긴 영원한 구원의 진리를 아는 영적 지각이 있었습니다. 역사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구원 행위들을 통해 예시되는, 영원한 구원 약속인 주 예수님으로 인한 영생 구원을 아는 영적 지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배롭고 요긴한 주 예수님을 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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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서 신령한 예루살렘에 신령한 성전의 모퉁잇돌로 삼으셨으므로, 그를 믿는 사람은 현재와 미래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퉁잇돌은 기초를 이루며 벽을 쌓는 경계가 되는 머릿돌을 의미하는 것으로, 벽과 벽을 결합하며, 건물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신 주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보배가 되십니다. 산 돌이신 주 예수님은 신령한 성소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고, 믿는 사람들을 결합하여 교회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산 돌이신 예수님이 보배이기는커녕, 부딪히는 돌이요 거치는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므로, 불순종의 결과인 멸망을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산 돌 곧 영생이시며 영생을 주시는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멸망의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주 예수님을 보배로 여기지 않고, 깨지거나 변하기 쉬운 자기의 이성이나 지성, 의지나 감정, 재물이나 권력 등을 보배로 알고 따르는 신학자와 교수와 목사와 교인들은 충격적인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갈라져 나온 교인들이 개척한 교회에서 목회할 때입니다. 교회가 급속히 부흥하자 일부 개척 멤버들의 모함으로 저에 대한 나쁜 감정이 확산되면서 배척이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심해지는 그들의 모함과 배척 때문에 몹시 괴로웠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일들이 먼저 저나 아내의 꿈에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어떻게 할 것까지 미리 아시고, 종 내외에게 대비케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한번은, 아내가 개척 멤버이자 경찰인 교인이 죽었다고 하는 꿈을 꿨다고 했습니다. 그 주간 주일 예배가 끝난 후, 임원회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그 경찰 교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난, 이제부터 예수 안 믿어요,” 하고는 나가 버렸습니다. 영적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을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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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주님으로 아는 것으로 됐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정말 주 예수님을 보배로 안다면, 당연히 주 예수님께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일한 영생의 주 예수님이시고, 유일한 삶의 주관자이신 주 예수님을 절대적인 보배로 알고 따라야 합니다. 히브리서 11:26을 보면, 장성한 모세에 대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받는 능욕과 고난을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겨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영생의 면류관을 얻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 따르는 삶을 통해 계속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노인과 아이, 주부와 직장 여성, 어부와 농부, 상인과 직장인, 기술자와 운동선수, 통치자와 관원, 판검사와 변호사, 교사와 제자, 거지와 전과자가 다 제사장 신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루터(M. Luther)의 만인제사장설은 많은 문제가 있는 주장입니다.
이 말씀을 할 때에도, 베드로전서 2:9의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할 때에도 신분상의 제사장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9:5 이하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키면 제사장 나라가 된다고 한 것은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신분상의 제사장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열국에 대해 제사장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시대에도 신분상의 제사장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는,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도 직접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고, 그 예배가 생활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배와 삶을 통해 안 믿는 사람들에게 제사장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신령한 제물이 되는 것은, 성령을 좇아 말씀을 순종하여 받은 은혜와 복으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교인은 불신자들에게 거룩한 제사장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사람은 보배로 아는 것에 의해서 인격이 형성되고, 인생행로가 정해지고, 삶이 형성되고, 구원과 멸망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배로 아는 어떤 것도, 죄와 죽음과 영원한 멸망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 보배들 자체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2:3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다고 했습니다. 영생은 물론, 양손에 장수와 부귀가 있는 지혜의 보고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주시는, 보배로운 산 돌이심을 믿고 따름으로써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고,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 같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베드로전서 2:4-8, 이사야 28:16)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16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 6889-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