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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을 진멸하라
도현종
- 1598
- 2018-08-08 18:16:02
맑은 가락이 올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플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찬송가 412장 가사이다. 하늘 곡조가 흘러나와 부귀와 영화 향락의 가나안을 주신다 하였는가? 대답은 절대 아니다.
1.가나안을 진멸하라
하나님은 결코 적극적을 악을 형성 조장하지 않습니다. 악인은 스스로의 죄악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遺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롬1:24)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을 그 강퍅한 마음 그대로 가만 두었고 그들이 스스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러 왔다가 진멸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획하시며 직접 섭리하신 부분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차례로 가나안 족속들을 무찔러 나갈 때(수10:1-11:15)에 그 중에는 기브온처럼 화친하려 드는 종족이 왜 하나도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이스라엘은 여자나 아이마저 포로로 잡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 진멸하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강퍅했기 때문입니다. 극도의 성적 쾌락과 증오심으로 눈에 핏발이 설대로 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간 것입니다. "온 땅을 차지하되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진멸해 치운다더라." 말하자면 "절대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더라"는 소문이 돌아서 그들 또한 시쳇말로 완전히 머리가 돈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더러 왜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는지 의아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오직 당신만이 왕이 되고 그 거룩한 자녀들이 당신의 백성이 되는 온전한 신정국가를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거룩은 죄악과는 결코 공존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악으로 가득찬 가나안을 완전히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자나 아이들마저 진멸하라는 명령에 이스라엘이나 오늘날의 우리나 주저함 내지 거부감을 언제든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한 부족이라도 완전히 진멸하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나안으로선 필연적으로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이 민족의 신 여호와야말로 유일한 하나님으로 도저히 대적할 수 없으므로 그 신 앞에 완전히 항복을 하자, 아니면 그럴수록 눈에 핏발을 더 세우고 누가 세나 한 번 붙어보자 입니다. 그런데 모든 가나안 족속들이 택한 것은 후자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브온의 실패를 다른 모든 종족의 진멸과 대비시키고 있으며 또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이 강퍅하다고 표현합니다.
아브라함도 창세기 24:3절에 가나안 족속의 딸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얻지마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의 의식중 한 가지는 희생제물로 드리는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인데 이 까닭으로 이 의식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금지된 것입니다. (출 23:19)
점토판의 글을 보면 가나안 족속들의 도덕성을 똑똑히 그려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꾸만 반복하여 자기들의 신 바알Baal이 그의 누이 아나트Anath를 어떻게 겁탈하였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도덕의식으로 인하여 아나트를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의 눈에는 비록 그가 처녀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여신 아나트가 유혈과 말로 할 수 없는 포학무도에서 기뻐 날뛴다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뱀 숭배와 인간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일이 무르익었으며 남녀간 성의 예식적 매음행위가 신전에서 만연되었다고 하는 사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상의 몇가지만 들어 보아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적들을 모조리 진멸하여 버리고 그들과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상종하지 말라고 명하던 당시의 가나안 족속들의 종교적 사고와 의식이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가나안 서기들이 쓴 수백개의 기존 신화적 점토판들이, 1929년 W.F.올브라이트 고고학자에 의한 고대 우가리트, 라스 샴라의 발굴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일에 판독된 내용 입니다.
진멸하게 되거나 아니면 그 중에도 당신 앞에 진실로 회개하며 항복하고 나오는 종족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를 기대하고 그 잔인해 보이는 진멸의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은 완전한 거룩 하나 뿐이라는 뜻입니다.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수10:40)당하거나,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시150:6)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주님 편에 끝까지 남아 있으면 거룩한 백성이 되며 그렇지 못하면 저주 받는 백성이 됩니다. 가나안 백성이 그렇게까지 강퍅해진 것은 사실 스스로 먹은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수많은 이적을 듣고 보아서 가나안 족속들도 이스라엘의 신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고 싸우기 전부터 간담이 녹아있었습니다. 사단이 시켜서 먹은 마음이 아니고는 스스로 불 속에 죽으려고 뛰어드는 어리석은 인간은 없는 법입니다.
세상의 죄악과 타협, 조종, 방임, 외면, 부인, 포기하라고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결코 조화될 수 없습니다. 흑암의 세력을 거룩의 영역에 있어서 만은 죄를 진멸하는 것 외의 어떤 중간적인 방법도 절대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2.오늘의 감리교회
아직도 대부분의 목회자와 교회는 오직 초대형 교회로의 격상(格上)을 꿈꾸며 최선을 다한 헌신(?)을 합니다. "진정한 거룩은 예배, 그리스도의 말씀의 받아드림, 그분의 뒤를 따름, 그로 인한 사도적 고난과 가난의 감수, 끝없는 회개와 순종에로의 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선사하심" 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스타일을 고집합니다. 가나안 땅에 오래 머무름입니다. 교회 성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룩한 삶을 호소하기보다는 가급적 평안한 삶을 호소합니다. 역설적 표현으로 세상이 주지 못하는 위로만을 구합니다.
안락과 평안, 개운함은 이 시대 교회의 모토이자 예배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의 진정한 성장과 성숙은 오직 성령님의 사역에만 의존하는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최선을 원하시나 아울러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원하십니다. 가나안 땅에서 혼인 조차도 금하십니다. 교회 공동체는 성령 안에 있어야 하며, 성도는 성령의 코이노니아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감리교회 회장 선거에 가나안의 쾌락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과 딸이 너무 오래 머물러 수치스러운 성 폭행을 당하고 아들들의 집단 살륙과 감리교회는 전혀 다르지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