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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사를 내려 놓고 관리자(총무)를 내려 놓고 (관리)감독의 자리도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관리자
- 1630
- 2018-08-14 00:19:14
무더위 속에서 여름이 가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자연은 이미 이 무더위 속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감리교회가 이 무더위 만큼 뜨겁고 지친다. 너나 할 것 없이 지쳐 쓰러지기 직전인 것처럼 무기력하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음과 같이 감리교회도 서서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돌아갈 원래의 자리가 진정 있기는 한가라는 회의감을 갖게 되지만 그 원해의 모습은 성경에 있으며 교리와 장정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장정대로 치리되어지기 위하여 긴 진통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산고가 길면 산모가 위험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길고 긴 진통을 통해 태어난 생명의 신비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하리라.
나는 곧 아이들과 물속에 몸을 담그며 물장난을 쳤다. 2주전엔 아이들이 차갑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도 계곡 물이 차갑다고 하며 금방 춥다고까지 말을 하였다.
한 참을 아이들과 재미 있게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학생 10여 명이 우르르 계곡에 찾아 왔다. 계곡은 갑자기 여학생들의 왁작거림으로 시끌어워졌다. 곧 이어 인솔자로 보이는 어른도 도착하였고 급기야 서로 물을 튕기며 물싸움을 하였다. 그 학생들의 물싸움은 주변의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 물싸움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곧 기가 죽었고 우리 아이들의 물놀이는 위축이 될 수 밖에 없었으며 난동을 부리듯 물싸움을 펼치는 그 여학생들의 모습에 어린 아이들이 피해를 봐야만 했다.
그런 행동들이 멈춰지지 않았고 계속 이어지자 아이들 엄마가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인솔자로 보이는 어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 아이들의 물싸움을 저지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인솔자처럼 보이는 이들은 아이 엄마의 짜증엔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여학생들을 부축이며 서로 서로 물싸움을 하며 즐겁게 놀라고만 독려하는 것이었다.
우리 어린 아이들은 그 곳에서 더 이상 물놀이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조금 지나자 이젠 남학생 10여명이 더 추가되어 들어 왔다. 오자마자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곳에 있었던 우리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아니 이게 뭐하는 겁니까? 우리 아이들이 물에 맞고 있지 않습니까?" 버럭 짜증을 부리며 아내가 인솔자로 보이는 여자분에게 큰소리로 항의를 하였다. 그러자 인솔자로 보이는 여자분은 왜 짜증이 났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아이들이 놀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저 옆으로 자리를 옮기시면 좋을 듯한데요."
인솔자로 보이는 그 여자분은 자신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을 저지하거나 주의를 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오히려 그런 피해를 보지 않으려거든 자리를 옮기라는 것이었다.
이런 몰지각한 사람이 있을까? 자신들이 데리고 온 학생들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을....
먼저 와 자리 잡고 있었던 한 참이나 더 어린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잘 못이니 오히려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고 저지했어야 할 일이었다. 처음부터 주변인들에게 돌아갈 피해를 염두했다면 학생들을 다른 곳으로 인솔하여 그 곳에서 몰놀이를 하게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배려나 주의심은 그들에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어른들조차도 애초부터 그런 마음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질렀으니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아이들이 피해를 보았으니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여학생들의 행동들이 부주의했으며 인솔자로 보이는 그 어른의 언행이 옳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도 처음부터 학생들이 여럿이고 더워서 그런 것이니 좀 이해를 해 달라 했었으면 그렇게 까지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내지 않았을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 더운 곳에 있다가 시원한 계곡물에 들어 왔으니 얼마나 시원하고 좋았겠는가? 그러니 중학생들은 너무 신이난 나머지 주변을 돌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 그런 배려심이 뭔지 배우지 못해서 일지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 학생들을 인솔한 이들은 어른이다. 그리고 선생들이었다.
자신들이 인솔하는 학생들이 진정 중요하다면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인솔자이자 선생인 것이다. 계곡이 자신들의 사유지이거나 자신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인솔해 온 학생들이 재미있게 놀기 위해 먼저 와 있던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거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라 말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과 의무라 할 것이다. 그리고 더더욱 나를 화나게 만든 것은 인솔자로 보이는 서너명의 어른에게 다가가더니 아이들 엄마가 짜증내며 항의했던 모습을 흉내를 내며 자기들끼리 낄낄대고 웃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그러한 어른들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화가 났다.
나는 화를 죽이며 인솔자로 보이는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아~ 네, 서울요."
왜 그건 왜 묻느냐는 듯 건성건성하고 퉁명한 대답이었다.
"그래요? 그런데 어린 학생들이 물놀이를 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애들 엄마가 짜증을 부리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서로들 웃으시는 것은 뭔가요?"
"아니 우리가 언제요?"
"아니 좀 전에 저 여자분이 여러분들 앞에서 애들 엄마 흉내를 내면서 뭐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분명 그 모습을 보고 서로 웃는 것을 제가 저 위에서 다 보았는데요?"
"아녜요. 전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 웃엇다고 그러며 언제 흉내를 냈다고 그러시나요?"
"아니 제가 분명 저 위에서 다 보았다니깐요?"
"아니 글쎄 그런 적이 없다니깐요. 저는 우리 아이들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자리를 저리 옮기시면 좋겠다고 오히려 양해를 구했을 뿐입니다."
분명 자신들끼리 수군거리며 아내의 짜증내는 모습을 흉내를 내면서 비웃는 것을 옆에서 다 보았지만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었다 딱 잡아 떼었다.
화가 치밀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서울 4개 중학교 양궁 선수들을 인솔하는 선생들이었다. 내가 언성을 높이자 이젠 선생들끼리 나를 몰아 세운다. 학생들 앞에서 인솔자들을 창피 주려는 것처럼 괜한 트집을 잡아 화를 내고 있다는 식으로 나를 몰아 세우며 학생들이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고 있지 않는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난 하도 어의가 없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다른 여선생을 향해 물었다.
"분명 좀 전에 저 여자분이 짜증내는 아이들 엄마 흉내를 내자 당신들은 그 모습으로 보고 웃지 않았습니까?"라고 되묻자 "아니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십니까?"하고 도리어 내게 짜증을 부리며 억지부리지 말라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태도를 보였다.
화가 났지만 더 이상 그들과 얘기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곳이 내 땅이 아니니 그들을 나가라고도 할 수 없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들의 태도에 나는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오늘 똥 밟았네.'라고 체념하고 더 이상 말섞지 말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선생이란 작자들이 금방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고 시치미는 뚝떼며 담합을 하여 바보로 만들려 한다. 이것이 세상이다. 이것이 세상 선생된 자들의 모습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선생들이 더 많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목사들은 어떠한가? 목사들은 그들을 향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2013년 나는 호선연의 원하나님이라 불려질만한 분을 통해 명예훼손과 모욕의 죄로 고소를 당해 연회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아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을 비롯한 불법적인 행정치리를 통해 미파라는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제 이 문제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아내와 내 가족 그리고 남원교회와 호선연을 비롯한 감리교회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교권을 휘두르던 이에 의해 불법으로 조직된 심사위원들의 기소와 불법으로 조직된 재판위원회를 통해 형사법에 해당하는 명예훼손과 모욕죄가 교회재판을 통해 단죄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교권을 이용하여 권징재판을 빙자하여 위법적인 행위를 통해 연회원들에게 본보기를 삼으려 했던 것이다.
이것은 누가 봐도 괘씸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의 교권욕을 채우기 위해 빽없고 힘없고 돈없는 나를 향해 교권을 휘두른 막가파식의 폭력행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미 그들은 불법단체화가 되었다.
강도의 소굴이 되었으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흉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내게 말을 한다.
"야, 노목사! 너 때문에 아주 힘들어.... 너랑은 말하기도 싫고 대면하는 것 조차 거북해... 그러니 전화하지도 말고 찾아 오지도 말고, 말을 걸려고도 하지말아....난 네 일에 관여하고 싶지가 않아....무엇보다 나는 그 일에 관심이 없으며 알고 싶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모르니 더 이상 나를 괴롭히려 하지마...... 넌 어찌 목사가 되어 그렇게 사람을 괴럽힌다니.... 너 때문에 매우 매우 힘들거든??? 그러니 제발 나좀 가만 내버려 둬라. 네가 진정 그러고도 목사야?"
진정 이 말이 사실이며 진심이라면 감리사를 내려 놓고 관리자를 내려 놓고 관리감독의 자리도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좀 전에 행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시치미를 뚝 떼는 세상의 선생이나 목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러고도 목사고 감리사고 관리자이며 관리감독이라 잘도 목에 힘을 준다. 회칠한 무덤인 주제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