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에 어두운 선생과 경우에 어두운 목사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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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6 04:17:23
계곡에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은 우리 가족이었다.
그리고 한 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학생들이 계곡을 찾았던 것이다. 계곡엔 주인이 없으니 누가 우선일까? 이러한 문제에 대한 법적인 규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그렇게 관례상 그리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선 먼저 온 사람을 배려하여 우선권을 주는 것이 상식이다. 왜 그런지는 따질 필요가 없다. 이것이 관례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후에 온 사람들에 의해 먼저 온 사람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상식이며 이것이 관행적인 불문률인 관례법이다. 비록 규칙으로서 규정된 것은 없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우선 순위와 경계가 결정이 되는 것이 불문률이며 경우에 합당한 것이다.

경우에 합당한 사람,
일상적인 삶에서 다른 이들과의 다툼이나 갈등을 줄 일 수 있는 사람이다. 성경엔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였다. 누가 화평케 하는 자일까? 그것은 경우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경우는 형편이나 사정을 지칭하기도 하고 사리나 도리를 뜻하기도 한다.(위키백과 참조)
서로 쓰임새는 다르지만 그 의미가 서로 통한다. 즉 어떠한 사정과 형편에서 지켜야 할 사리나 도리를 따르는 사람을 말할 때 경우가 밝은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경우에 밝은 사람,
그는 어떠한 형편이나 사정에서 지켜야 할 도리와 사리를 지킴으로써 갈등을 유발하지 않으며 다툼을 방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화평케 하는 사람은 진실한 믿음의 사람, 즉 참 그리스도인을 지칭한다 할 수 있다. 참 그리스도인은 경우에 밝아야 한다. 경우에 어둡다면 제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하여도 사람간의 갈등과 다툼을 발생케 하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우에 밝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거짓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이러한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세상은 개독교인라 부르기도 한다.

참 그리스도인은 경우에 밝아야 한다.
믿음이 깊어 진다는 것은 경우에 밝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이 든든해 진다는 것 또한 경우에 합당하게 행동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믿음이 크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경우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감리교인들은 진정 경우에 밝은 사람들인가?

선생이라 함은 일반적인 보통의 사람들 보다 밝은 사람이어야 한다.
목사라 함은 일반적인 성도들보다 더 경우에 합당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 합당한 사람 가운데 지방을 위해 감리사가 세워져야 하고 이러한 경우에 합당한 목사 가운데 감독이 세워져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가운 것은 경우헤 합당하거나 경우에 밝은 사람이 감리사가 되고 감독으로 세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큰 교회를 담임하고 돈이 많은 사람이 감리사가 되고 감독이 된다. 그래서 감리교회 안에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목사, 감리사, 총무(관리자), 감독(회장)이 참으로 많다.

오늘날 감리교회가 갈등과 다툼이 잦은 것은 경우에 합당하게 사는 목사가 적기 때문이며 경우에 어두운 이들이 돈의 힘을 얻어 감리사, 총무(관리자), 감독(회장)이 되기 때문이다.

경우에 어두운 사람들은 패를 이룬다.
그래야 자신들의 주장이 강해지고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어두운 사람들이 서로 서로 뭉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록은 동색이라 했고 가제는 게편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경우에 어두운 사람들이 경우에 밝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이겨내려면 집단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사람들은 패를 이루고 당을 만든다. 그러나 경우에 밝은 사람은 패를 이루거나 당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져 경우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 여기기 때문이다. 물과 같이 그져 그렇게 흐르는 것이다.

경우(境遇), 경계를 만난다는 뜻이다.
서로 서로간에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고 지킨 다는 것이다. 경우가 밝은 사람은 절대로 남의 것을 탐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우에 합당한 사람은 절대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로 그 선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 것이 경우에 밝은 것이고 경우에 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경우를 지켜야 한다.

경우(선)를 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자꾸 선을 넘으려 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의 선생들이 그러하며 그리스도인들고 드러하며 목사와 감리사 그리고 총무(관리자)와 감독(회장)이 그러하다. 그래서 교계의 지도자란 이들이 개독교인들처럼 행동을 한다.

개독교화된 교계의 지도자들의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들 때문에 많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사람들에 의해 놀림거리가 되고 비웃음 거리가 된다. 그래도 개독교화된 교권주의자는 자신의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우에 어둡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이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교권을 갖은 이들의 면면을 살펴 보라. 비록 큰 교회를 이룬 이도 있고 목회적으로 성공했다 인정을 받는 이들도 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가 누가 있는가 말이다.

경우에 어두운 교인들이 아니라면 교인들 가운데도 존경하는 이들이 없다.
경우에 어두운 목사가 경우에 어두운 교인들을 양성한다. 이러한 경우에 어두운 이들이 하도 많아 교회법을 만드는 것이다. 교회법은 성문법이다. 불문률인 관례가 지켜지지 않고 경우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이들이 있음으로 세상의 법도 성문화 되어진 것이다. 교회법도 예외는 아니다. 경우에 합당하게 행동하지 않는 목사, 장로, 그리고 감리사, 총무(관리자), 감독(회장)들이 있기 때문에 성문법인 교회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교권을 갖는 다는 것은 교회법은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경우에 어두운 이들이 교권을 갖게 되니 어찌 교회법을 존중하려 할까? 경우에 어두우지 교회법은 자신들의 교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긴다. 참으로 경우에 어두운 자인 것이다.

감독회장이라고 무조건 자신의 뜻과 생각으로 본부와 감리교회를 좌지우지 하려 한다.
교리와 장정? 그것은 자신이 행하는 경우에 맞지 않은 행동을 지켜 나가기 위한 도구(규칙)이다. 과거 감독회장이었든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라 어디 경우에 합당한 모습을 보였으며 교리와 장정을 존중했는가 말이다.

불법으로 자신의 업적을 쌓고 자랑하려 한다.
결국 그 뒤엔 음흉한 탐욕이 있으니 반드시 뒷거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경우를 모르는 행동들이다.

돈으로 표를 사고 돈으로 사람들을 모으려 하며 돈으로 권력의 자리를 얻어내려 한다.
패를 이루고 패들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 한다. 정말로 경우에 어두운 이들이다. 그런데 이 어두움이 합당하다 말을 한다. 경우에 어두운 이들이 돈잔치를 하고 돈지랄을 한다.

경우에 밝고 경우에 합당한 이들은 경우에 어두운 이들 때문에 피해를 본다. 그래도 목 소리가 더 큰 것은 경우에 어두운 이들이다. 왜냐하면 경우에 어두운 이들이 패를 짓고 당을 이루어 경우에 밝은 이들을 비웃고 왕따시키기 때문이다.

경우에 어두운 선생이 내게 말을 했다.

"선생님이 자꾸 큰소리로 우리에게 시비를 거니 보십시요. 우리 애들이 주눅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이 계곡은 주인이 없는 곳인데 서로 재미있게 놀다 가야지 별것 아닌 것을 갖고 이렇게 큰소릴 쳐 우리 애들이 재미 있게 놀지 못하도록 해야 하겠습니까? 계곡에서 놀다보면 물이 튀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애들이 보고 있으니 그만 하시고 가족들과 돌아 가시지요."

경우에 어두운 목사들이 내게 말을 한다.
"그만 좀 해라. 니가 그렇게 한다고 남들이 알아줄 줄 아냐? 네 스스로 네 자신의 이미지만 추하게 만드는 것이야! 그러니 제발 남을 괴롭게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목회나 할 생각을 해라. 니가 조용히 목회를 하려 한다면 내가라도 널 도와줄께.... 제발 그만하자... 너 때문에 내 생활이 너무 힘들고 지친다 지쳐... 제발 그만 네 자리로 돌아가라.... 애들도 많다며... 애들 금방 자란다... 이럴 시간이 있으면 애들이나 돌봐라.....그러다 진짜 너 크게 다치는 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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