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칠한 무덤과 같은 외식쟁이 목사들

관리자
  • 2120
  • 2018-08-14 20:39:25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으니 더 이상 시비걸지 마시고 말싸움 하지 마시죠..."

짜증을 내는 아내의 모습을 과장되게 흉내 내 보이며 히히덕거리던 여선생이 내게 한 말이다.

입장차이....
물론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민페를 가한이가 있으며 민폐로 피해를 본 이가 있다. 그런데도 입장차이라 한다.
언제나 갈등과 다툼과 싸움엔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입장차이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하나라 할순 없는 것이다. 가해자는 잘못한 사람이며 때에 따라선 범죄자이다. 피해자는 말 그대로 억울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러한 억울한 일이 발생될 경우 잘잘못을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잘잘못 가운데 잘못한 이가 사과하면 그 문제는 그렇게 해결이 될 것이다.

거짓말로 자신들의 잘못을 가리고 분명 피해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장차이라 말하며 자신의 아이들만 중요한 것처럼 말하였던 그 여선생의 모습이 내 눈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날 감리교회 목사들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원형수 전관리자는 내게 물었다? "너 대체 왜 그러냐? 내가 네게 피해를 준것이라도 있었더냐?"
나는 말했다. "네, 이 모든 것이 관리자님을 통해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뭐라고? 너 더 혼 좀 나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그래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죠 뭐...."
나는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 와야만 했었다.

입장차이....
어쩌면 원형수 전관리자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그 말 일지도 모르겠다.
박성배 관리자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일 지도 모르겠다.
서희선 전감리사도 그러하고 현재 김성용 감리사도 그런 말을 하고 싶을 지도 모르며 예배에 참석한 내 가족들을 향하여 예배를 방해한다고 경찰서에 신고한 임광재 목사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입장차이라 말하고 픈 그 관계 속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옳고 그름의 시비도 분명 있음이다.
그런데 입장차이가 있으니 더 이상 다투지 말잖다.
그리곤 나를 무시하며 자기들이 하고픈 것만을 계속해서 해가려 한다.
나와 내 가족이 받게 된 그 피해가 너무도 크고 무거운 데도 말이다.

나는 그 여선생이라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어찌 선생이란 사람이 거짓말로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려 하고 피해를 받았음에도 입장차이가 있으니 말다툼 하지 말자고 하느냐? 아이들에게 그렇게 거짓으로 가르치는 것이냐?"

입장차이라 하였지만 이젠 자격의 문제이다.
선생의 자격, 목사의 자격, 감리사의 자격, 감독과 감독회장의 자격 말이다.

입장의 차이가 이 자격의 문제를 덮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격이 있다면 그 자격에 걸맞은 언행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교육자이다.
단순한 인솔자 혹은 담당자가 아니라 세상의 교육을 가르치는 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것이 거짓은 아니다. 타인을 무시하고 비웃는 것이 선생의 자격은 아닌 것이다. 내 아이가 중하다면 남의 아이도 중한 것이다. 남의 아이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에게 함부로 대할리 만무이다. 그래서 배려심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며 자신의 자녀들과 가족들을 위한 마음인 것이다. 배려심이 없는 자는 선생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목사는 설교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인 것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다. 세상의 헛된 지식이 아니며 헛된 욕망도 아니며 헛된 꿈은 더더욱 아니다. 목사는 지식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지식은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하늘의 지식이어야 한다. 이 하늘의 지식은 땅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땅의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 하늘의 지식을 천국의 지식이라고도 한다.

천국의 지식을 전하는 이가 바로 목사인 것이다.
만약 천국의 지식을 전하지 못한다면 그는 목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천국의 지식은 진리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이 된다. 그러니 목사는 진실해야 한다. 진실하지 못하다면 목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참 된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는 진실한 예배가 되어야 하며 천국의 지식을 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이 고상한 지식을 공유하며 공명이 일어나야 한다. 이 공명은 성령의 감동이 된다. 성령의 감동만이 진리의 말씀에 대한 공명을 형성하는 것이다기 때문이다.

이 공명이 산제사, 살아 있는 예배의 척도가 된다.
목사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산제사, 살아 있는 에배를 인도해야하는 직분을 얻는 자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그 목사는 자격이 없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들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하여 이단이라 예배에 방해되니 교회에 출입하지 말란다. 목사 자신의 주장에 함께 하지 않으니 또한 교회에 나오지 말란다. 내게 백해무익이니 예배에 참여하려는 것은 오히려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라 한다. 이 말이 진리의 말씀인가? 이 주장이 하나님의 뜻이며 천국의 지식인가? 아니라. 그것은 세상의 지식도 되지 못하는 못된 행동이다.

하물며 목사의 생각과 다르다 하여 목사의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여 접근 금지 가처분을 내거나 출입 금지를 청하거나 예배 참석하려 했다고 예배 방해죄로 결찰서에 고소를 한다면 그는 목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답지도 못한 존재가 된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그리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들이 목사의 직위를 이용해 잘도 그러한 일들을 자행한다. 회칠한 무덤인 것이다.

회칠한 무덤,
속에선 죽은 시체의 냄새가 진동하나 겉으론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하는 종교인들이다. 그 대표적인 자들이 목사인 것이다.

목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목사는 거짓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목사는 거짓으로 자신의 치부를 가르려 하지 않는다.
목사는 거짓으로 해하려 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그런데 목사가 참으로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말을 한다.
남의 설교를 자신의 설교처럼 행하고 남의 논문을 자신의 논문처럼 카피하고 도용한다.
그러고도 석사이고 박사이며 실력이 있는 목사라 한다.

제 아무리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목사라도 거짓을 가까이 한다면 목사다움은 아니다. 목사의 자격은 없는 것이다. 과장하거나 포장하는 것은 세상의 것이다. 하늘의 것을 발가벗겨진 것과 같이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이다. 그래서 순결한 것이다. 그래서 청결하다 하는 것이며 가난한 심령이라 하는 것이다.

외식하는 자들이다.
회칠한 무덤은 곧 외식하는 목사들을 지칭함이다.
자신이 한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버리는 목사,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을 억울하게 만드는 목사,
자신의 것을 잃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직무와 책임을 스스로 내버리는 목사,
이들이 회칠한 무덤이며 외식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 목사들이 교권의 중심에서 세상의 음란한 춤사위를 추고 있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그래서 늘 쌍 싸움이며 다툼이며 갈등 투성이다.
그러니 법적인 시비가 연일 이어진다.

외식을 하며 회칠한 무덤과 같은 이들에 의해 자격없음이 자격있음으로 둔갑하여 활개를 치고 있으니 법적인 시비가 멈춰지지 않는 것이다. 서로 간의 입장 차이라고만 주장을 하고 있으니 그 입장차이가 오히려 억울한 자를 만들어내고 있음이며 불의한 자들이 활개하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있으며 목에 깊스를 차고 있는 것이다.

회칠한 무덤이 누군가를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 말을 한다.
그 말은 그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에게 누워 침뱉는 격이다.
그래서 스스로 더렵혀져가고 있지만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자격이 없는 자들에 의해 감리사, 관리자, (관리)감독이 되어 교권이 침탈을 당했으며 회칠한 무덤과 같은 외식쟁이들이 목사라 행세하고 있음이며 인간답지 않은 행위를 통해 기득권을 챙기려 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누워 얼굴에 침을 밷고 있음이 아님을 회칠한 무덤과 같은 외식쟁이 목사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오늘날 한국교회에 이러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외식쟁이 위선자의 왕관을 만들어 쓴 목사들이 너무도 많음이다.

이전 도현종 2018-08-14 감리교회
다음 박삼열 2018-08-14 한 판 붙어 볼래?(주문진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