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과 감리교회 회복

도현종
  • 1161
  • 2018-08-18 00:27:19
삼손의 그가 머리털을 밀리우고 그대로 비참하게 죽었다는 비복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 말은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16:22)"라는 것이다. 삼손의 이야기가 두 눈이 뽑히고 맷돌을 갈고 있었다고 끝났다면 복음이 아니다. 그런데 사사기 저자는 삼손의 비참함을 묘사한뒤에 영적으로 눈이 뜨여진 사람만 알 수 있게 그의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다는 말을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이고 소망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시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시작한다는 단어를 이미 앞에서 사용했다. 하나님의 사자가 삼손 부모에게 나타나 이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예언하면서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13:5)"라고 말한다. 삼손이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고, 그가 해야 할 사명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한다는 위함이라는 그 '시작한다'이라는 단어가 삼손에 인생의 밑바닥, 다른 사람이 삼손이 끝났다고 이야기 하는 순간에 삼손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주신 '시작한다'는 단어가 다시 쓰인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사기의 비밀이다.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13:25)"에도 나온다. 인생의 밑바닥에 아무것도 없는 삼손에게 그 옛날 하나님이 삼손을 시작하게 하실때 삼손을 붙잡고 움직임이 시작했던 그 은혜로운 역사가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진 삼손에게 하나님이 그냥 두시지 아니하시고 다시 찾아오셔서 눈이 뽑힌 삼손에게 하나님의 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밑바닥에 떨어지고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고 다시 붙잡아 주신다는 복음의 메세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것이 놀라운 사건이다. 

여기서 우리는 삼손이 가장 비참한 순간에 저자가 어린시절에 붙잡아 주었던 '시작'이라는 단어를 다시 사용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준 메세지 '머리가 다시 자란다'는 말은 단순히 신체적인 현상이 아니라 영적인 메세지이다. 삼손이 다시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했다는 말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하나님이 다시 새롭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삼손이 다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없이 다시 시작할수 없다. 회복은 언제 시작되는가. 회복은 내가 내 잘못을 뉘우치고 나를 채찍질하는데서 일어나지 않고,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을 생각할때 일어난다. 그 분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영적으로 회복된다. 두 눈이 뽑힌 자기를 보고 내가 왜 옛날에 그랬을까 하며 가슴을 치는 것이 회복이 아니다.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다시 회복된 것은 언제인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했을때 회복이 시작됐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에서 온다. 그 분을 다시 바라보고 그 분에게 돌아가는 것이 회개이고, 그 분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회복이다. 하나님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고, 그 하나님을 찾는 것이 영적인 회복이다. 

그래서 한 주석가는 삼손이 가장 비참한 시기에 한 기도에 주목한다. 삼손이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면서 삼손의 회복이 시작된다. 한 주석가는 원래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는데, 두 눈이 없는 삼손의 기도를 하나님이 받아주셨다는 것이다. 삼손은 여기서 비로서 나실인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전부 드렸다. 진정한 나실인의 역사가 이루어 진것이다. 원래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때는 흠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삼손은 두 눈이 뽑이고, 묶이고, 머리가 깍히고 흠이 많았지만, 삼손이 나실인으로서 역사를 제대로 할때는 가장 흠이 많을때 였다. 하나님은 흠많은 삼손을 받아주셨다. 결과는 삼손이 죽을때 죽인자가 살았을때 죽인자보다 더 많다고 했다. 

모태 신앙인들,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난 장점은 끝까지 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모태신앙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사사기 저자는 삼손이 살아서 두 눈이 있고 힘이 있었을때 보다 가장 밑바닥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을때 더 역사가 많았다고 했다. 그것이 하나님이 삼손을 나실인으로 받으신 순간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나실인으로 부르셨다면 하나님은 나실인으로 사용하실것이다. 비록 밑바닥에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사용하실 것이다. 

중요한 마지막 질문을 해야 한다. 삼손의 이야기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복음과 연결되는 것인가. 구약의 모든 이야기는 스토리 라인이 있는데 그 지향점은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삼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의문은 삼손은 왜 혼자인가 하는 것이다. 기드온도 3백명이 있었다. 사사 시대에 삼손외에 혼자 역사한 사람은 없었다. 삼손은 단독으로 유다를 구원한다. 핵심은 삼손의 단독 사역속에는 앞으로 홀로 구원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담겨있다. 예수님이 십자가가 혼자 죽으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이야기가 삼손의 이야기속에 담겨있다. 삼손의 단독 사역의 이야기가 앞으로 예수님이 홀로 이루실 그 구원의 역사를 그림자 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삼손이 신전에서 죽을때 더 많은 적을 죽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단번에 온 인류를 구원할수 있는 위대한 죽음으로 묘사하고 있다. 

삼손은 흠이 많은 나실인으로 살았지만, 예수님은 나실인으로 오셔서 흠이 없으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모든 매인것을 풀어주셨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영적 나실인이다.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삼손의 이야기속에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신 구속의 하나님을 우리는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영원한 복음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다시 자라나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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