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많다고

도현종
  • 1249
  • 2018-08-19 01:20:15
숫자가 많다고 이기는건 아니다. 삼손 하나면 족하다. 사도 바울 하나면 족하다. 감리교회 회복 주님 한분이면 족하다.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가지고도 통솔 미스와 작전 설명 누락이 부른 참담한 패배, 통일을 눈앞에 두고 이 싸움 한번에 말아먹고 무너진 전진, 기적 승리를 얻어내고도 더욱 철저하게 개망나니 짓을 해서 망해버린 동진 등. 생각보다 많은 교훈을 주는 우리에게는 생각하게하는 유익한 전쟁이다. 

전진의 황제였던 부견(337~385)은 당시 천하통일에 가장 근접했던 사람으로, 자신은 저족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차별을 두지 않았음은 물론 명재상 왕맹을 기용해 성공적으로 부국강병을 이룩, 화북과 서역을 모조리 평정하여 실질적으로 북조를 정리했다. 게다가 동진이 점령했던 회수, 양자강 일대, 사천 지방도 이미 점령한 상황이어서 이제 남아있는 거라곤 강남의 동진 하나뿐이었다.

왕맹도 죽으면서 "우리 나라에 있는 한족은 아직 동진을 그리워하고 있고 그 동진은 현재 위아래가 일치단결 되어있으니 괜히 집적대지 말고 선비족 출신으로 계속 폐하께 살랑대는 모용수랑 요장부터 신경 쓰시고 기회 되면 제거해버리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황제가 귀족들 눈치나 보며 한 순간도 막장이 아니었던 동진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상하기는 하지만, 일단 전진에 남아있는 한족들이 오랑캐의 지배를 받는 걸 더 싫어했다는 의미로 생각하자. 그리고 급격한 통일 작업 덕분에 전진 내부에 있는 이민족들이 완전히 동화된 상태도 아니어서 언제든 다시 분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부견은 왕맹이 세상을 떠난 뒤 한동안은 왕맹의 유언을 잘 지켰다.

부견이 왕맹 사후 7년 갑자기 전쟁을 하려 들자 비서감 주융이 찬성했다. 이 친구가 뭐에 씌였는지 상서좌복야 권익,태자좌위솔 석월, 양평공 부융, 태자 부굉, 승려 도안, 장부인, 중산공 부선 등 주위에서 죄다 들고 일어나 반대했는데도 "할래할래~ 전쟁할래애~!!" 하면서 주변에 떼를 쓰더니 위에 언급한 관군장군 겸 하남윤 모용수가 "그럼 하죠."라고 맞장구 좀 쳐주자마자 선봉만 25만에 자신이 이끄는 군대까지 모두 87만, 여기에 기타 병력까지 합쳐 100만이 넘는 대군을 구성해 동진에 대거 침략을 감행했다. 물론 그 이전과 이후에도 백만 대군이라는 묘사 자체는 많이 등장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과장이 많이 섞여 들어갔거나 단순히 많은 수의 군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백만 대군이라는 용어가 쓰였다고 보는 편이다. 그러나 비수대전에 동원된 전진의 군사는 과장이 아닌 병력 편제 자체가 100만이라는 숫자를 찍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류사에서 부견과 수양제를 제외하면 그로부터 천년이 넘어 제1차 세계 대전때가 되어서야 백만대군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

의외로 통일 작업은 순탄하게 이루어졌고, 남은 국가는 동진뿐인지라 조금만 더 하면 목표 달성이기는 했다. 물론 자기 발 밑이 아직 불안정하다는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는 무시되기 일쑤. 아마 자기가 덕을 베풀어서 사람들이 감복했으므로 끝이라 보고, 난세에는 조금만 틈을 보이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무시한 모양. 실제로 부견이 전사한 후에도 일족이 계속 부견의 의지를 받들어 저항했으며, 나중에 배반하는 모용수나 요장 같은 이들도 양심에 찔렸는지 패전 후에도 즉시 부견의 뒤통수를 치지는 않았다.

한편 북쪽에서 부견이 질량낙하급 인해전술을 시전하니 동진에서도 막긴 해야겠는데, 동진은 이미 문벌귀족의 띵가띵가로 말미암아 국력이 막장으로 치달아있었고, 그나마 동원 가능한 병력을 닥닥 긁어모아보니 8만 명 가량뿐이었다.

전진은 대국의 아량을 보인답시고 한족 출신에 양양 태수였던 주서를 보내 항복을 권고했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엑스맨. 항복은 했을지언정 마음은 동진에 가있었던 그는 바로 전략을 몽땅 누설해버렸고, 동진군은 그걸 기반으로 필승의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실로 왕맹이 우려한 그대로였다. 사실 주서의 배신이 매우 위험하긴 했어도 그것을 부견이 눈치채지 못 한다는 보장도 없고, 달랑 전략 누설 좀 했다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부견이 끌고 온 그 거대한 규모의 군대가 허무하게 무너지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수를 사이에 두고 양군이 최종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동진은 군대를 조오~금 뒤로 물려주면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부견은 믿지는 않았지만 살짝 후퇴했다가 등짝을 보러 쫓아올 때 뒤돌아서 비수 한가운데 수장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 인간이 미쳤는지 후속부대에게 작전 설명을 안 했다.

머릿수만으로도 압도적으로 유리한 100만 대군인데 다짜고짜 후퇴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술렁대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 여기에 전진의 엑스맨 주서가 "진나라 군대에게 패했다!"는 말을 부하들에게 외치고 다니게 하면서 본격적으로 마가 끼었다. 전진의 백만대군은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우왕좌왕하면서 자체붕괴하고 말았다. 여기에 수는 적었지만 기동성과 공격력이 뛰어난 기마대로 군대를 편성한 동진군이 비수를 건너 찔러들어오면서 완전히 관광당했다.

대규모의 병력을 통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통신 체계가 잘 잡힌 현대에서도 급박한 전투 중에 명령 하달이 누락되거나 사령관의 판단 미스로 지휘 체계가 무너져 부대 통솔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이 당시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동진의 8만 군사가 전진의 100만 군사를 일일히 패퇴시킨 것이 아니고 선봉 기마 돌격으로 동진의 진형이 붕괴되고 패배라는 말에 온 군대의 사기가 무너져 자기들끼리 밟아죽인 것이 더 많았다. 결론은 오히려 너무 많은 군대를 동원했다가 독이 된 케이스.

십팔사략이 주는 교훈이다. 뱀이 갑자기 발악하는 개구리에 깜짝 놀라 머리를 튼 꼴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몹시 절묘한 비유. 여기에 비수대전에서의 패배 하나로 나라 자체가 막장 테크를 탄 걸 감안하면 이건 머리를 틀었다가 너무 심하게 틀어서 즉사한 꼴이다.

전쟁하자고 홀로 부추겼던 모용수는 집에 가서 자기 고향이였던 전연위에 후연(後燕)을 건국했다.
신하 요장은 독립해서 후진(後秦)을 세웠고, 역시 신하이던 모용홍도 덩달아 독립하여 서연을 세우고 힘빠진 전진을 틈만 나면 쳐들어왔다.
걸복부에서는 전진의 패배 소식을 듣고 여러 부족을 협박해서 병합해 10여 만 명에 이르는 무리를 이루어 농서 일대를 장악하고 서진을 건국했다.

서자인 부비가 뒤를 이어 전진은 겨우 버텼다. 그러나 그도 1년만에 후진에게 패배하고 죽었으며 일족인 부등, 부등의 아들 부숭이 뒤를 이어 즉위했지만 394년 부숭이 서진에게 잡혀 죽으면서 전진은 아예 망했다.

그러나 비수대전에서 멋지게 승리한 동진은 더욱 마음 놓고 나라를 말아먹기 시작했다. 효무제가 후궁한테 '넌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내일부턴 탱탱한 애들 끼고 잘란다'라고 농담했다가 열받은 그 후궁이 자던 황제를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켰을 정도였다.

당나라가 들어서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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