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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명의 황제
도현종
- 1285
- 2018-09-05 20:00:23
명왕조때, 조정에 두 명의 합법적인 황제가 존재한 적이 있다.
혼군 박근혜와 간신 최순실의 역사와 너무도 비슷하다.
몽골(瓦剌)인들이 진공을 하러 왔다. 몽골인들은 사신단으로 너무 많이 데리고 왔다. 수천명이 따라온 것이다! 그러자 명나라황제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은 짜증이 났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사금을 내리는데, 이렇게 사람을 많이 데리고 오면 도대체 어떻게 다 준단 말인가. 그러나 일단 왔으니 관례에 따라 하사금을 내리긴 해야 했다.
간신 왕진(王振)은 황제의 생각을 읽었다. 몽골 사신단의 매 1명에게 하사금을 조금만 넣어서 나눠준다.
화가난 몽골인들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화모삼장(火冒三丈)했다. 그래서 명나라를 공격하기로 결정내리고, 출병한다.
영종 주기진이 몽골인들의 침범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이미 장가구(張家口)까지 와 있었다.
간신 태감 왕진이 다시 아이디어를 낸다. 그는 황제가 친히 어가를 이끌고 친정할 것을 극력 주장한다. 최대한 화려하게 전쟁에 나가야 이긴다고 부추켜서 전쟁에 나간다. 간신 태감 왕진의 말을 듣고, 갑옷을 입고 출전하기로 결정내린다. 황제의 친정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황제는 군사와함께 팔대대교(八擡大轎)를 타고, 여러 조정 신하들을 데려갔다. 요리는 어떻게 할 것이며, 이발은 어떻게 할 것이며, 접시를 들고 따라오는 자, 항아리를 들고 따라오는자, 세숫대야를 들고 따라오는 자....시종인원만 해도 엄청난 인원이었다. 결국 명군은 대패한다. 명영종 주기진은 포로가 된다.
조정 신하들은 주기진의 동생인 주기옥(朱祁鈺)을 황제에 옹립한다. 몽골인들은 주기진을 구금시키고, 주기진은 23살때 태상황이 된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뒤, 몽골인들은 주기진을 풀어준다. 주기옥은 황제에 올라 있었으므로 황위를 양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간단한 의식을 거행하여 주기진을 태상황으로 올리고, 감옥 남궁(南宮)으로 보낸다.
주기옥은 사람을 보내어 남궁의 대문을 폐쇄시키고, 작은 창문 하나만을 남겨두고, 안으로 먹고 마실 것을 들여보냈다. 그리고 이 음식을 어떤 때는 줄여버리기도 했다.
영종의 본부인인 전황후(錢皇后)는 부득이 자신이 바느질도 하고, 사람을 시켜 자신의 금은악세사리를 팔게 해서 그 돈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주기옥은 누군가 영종과 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남궁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명영종 주기진은 공포와 기아 속에서 7년의 연금생활을 보낸다.
주기옥도 수명이 좋지는 못했다. 7년간 황제로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린다.
서유정(徐有貞)과 석형(石亨)등은 영종 주기진의 복위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보내어 남궁의 대문을 열고, 주기진을 불러온다. 석형은 조정대신을 이끌고 주기진을 황제의 보좌에 앉힌다.
주기진은 이렇게 하여 다시 황제에 오른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잊고 있었다. 병이든 동생 주기옥은 아직도 명목상으로는 황제였다. 이렇게 하여, 명나라에는 동시에 두 황제가 존재하게 되었다. 주기진은 이 일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 즉시 조서를 만들어 주기옥을 황제에서 폐출시킨다.
폐출된 주기옥은 서원(西苑)에 연금되고, 1개월여후에 사망하니, 향년 30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