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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석수(石手)
함창석
- 1225
- 2018-09-15 04:22:09
산돌 함창석 장로
석수는 돌을 다루어 어떤 형상을 빚거나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질 좋은 돌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성곽은 물론 궁궐 축조에도 돌을 많이 썼으며, 고대사회에서부터 석축이나 석탑·석상이 발달하였고 돌로 만든 생활용품도 발달한 것으로 보아 일반 살림살이에도 돌로 만든 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석수의 기술이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그리고 그 뛰어난 기술은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610년(영양왕 21)에 일본에 건너간 고구려 승려 담징(曇徵)이 맷돌을 만들어주었다는 ≪일본서기 日本書紀≫의 기록(推古 18년 3월조)은 이와 같은 사정을 잘 전하는 내용이다. 신라 조정에서는 석수들을 직제화하지 않고 성곽이나 궁궐 축조 또는 석제무기 제조 등 필요할 때마다 민간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사≫ 식화지 봉록조의 공장별사에 따르면 맷돌을 만드는 마장(磨匠)은 중상서(中尙署)에, 돌을 다루는 석장(石匠)은 도교서(都校署)에 속해 있었으며 인원은 각 1명이었다. 마장의 경우 그 직위는 행수교위(行首敎尉)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크게 늘어나서 중앙 관청에 딸린 석수의 정원은 40명, 마조장은 8명이 되었으며, 각 군현에 배속된 석수는 2명, 마조장은 24명이었다.
산에서 돌을 깰 때에는 산주(山主)가 산신제를 지낸다. 돌산의 거죽은 빛이 누럴 뿐 아니라 매우 물러서 석수들은 ‘썩돌(썩은 돌)’이라고 부른다. 이는 ‘흙과 같아서’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부스러진다. 썩돌의 두께는 일정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10여m에 이르기도 한다. 또 돌에는 켜가 있으며 켜와 켜 사이로 물이 흐른다. 따라서 새로운 켜가 시작되는 부분에 썩돌이 깔리기 마련이다.
예전의 석수들은 연장망태를 짊어지고 전국의 마을로 돌아다니며 근처의 산이나 냇가의 돌로 맷돌·절구·연자매 따위를 쪼아주었다. 돌에도 결이 있어서 맷돌·연자매처럼 가로로 퍼진 것을 마를 때에는 가로결대로, 절구처럼 길이가 긴 것은 세로결에 따라 마른다. 석수의 임금은 매우 높아서 예전에는 보통 날일꾼의 열배였으며, 오늘날에도 다른 일꾼들보다 더 받지만 그만큼 일도 고되다.
맷돌이나 연자매 따위는 2, 3년이 지나면 이가 닳아서 그 기능이 떨어지므로 다시 쪼아서 이를 내어주는데 이 일도 석수들이 맡았으며, 맷돌 쪼는 이를 ‘매죄료장수’라고 따로 불렀다. 석수가 사용하는 연장은 정(20여 개)·장·망치·곰보망치·찍자귀 등으로, 이들 무게만도 60여㎏에 이른다. 현재 한국에서 석수라고 할 수 있는 직업인의 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윗 궁과 솔로몬 성전, 솔로몬 왕궁, 오므리와 아합의 궁전, 그리고 요아스 시대에 성전 보수 작업 등에 석수들이 동원되었다. 이외에도 석수는 암반에서 포도주 틀(술틀)을 만들거나 암반으로 된 묘실을 파는 등의 일을 하였다. 하지만 타락한 시대에는 우상 제작에도 동원되었다. 팔레스타인은 석회암층이 발달하여 석재들이 풍부하였으며 석수들은 대개 ‘돌을 뜨는 곳’에서 작업하였다.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 같이 세게 던지되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성전 파손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성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