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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목사에게 공개 권고함(3)
장병선
- 2259
- 2018-09-18 03:45:31
먼저 부친상에 대하여 애도를 표하네.
캄보디아 외유중에 소천하시므로 임종조차 보지 못하고 보내 드렸으니 얼마나 황망했는가,
아쉬운 마음이야 한이 없겠지만 누구나 한 번은 가야할 길이고, 장수하고 가셨으니 너무 슬퍼하지는 말게나.
나는 오래전에 양친 부모, 장인 장모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네.
어영부영 남들 뒤 따라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앞에 아무도 없고, 내가 맨 앞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깜작 놀랐던 적이 있네. 마음은 아직도 십팔세인데, 어느덧 백발이 되었고, 은퇴를 몇년 앞두고, 내가 나서지 않으면
공교회를 위해 나설 이들이 없다는 인식에서 오는 거룩한 부담때문에 이런 글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네.
신학교 시절이 생각나는군. 1970년대 초반, 모두가, 모든 게, 힘겹고 어려웠던 시절이었지.
박정희의 군부독재는 더욱 강화 되어 1972년도에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학원에는 무장군인들이 진주하여 살벌했지.
그 당시에 수출 1억불 달성했다고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한 것을 보면 우리의 경제가 얼마나 피페했었는지 가늠할 수가 있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겨운 날들이었네.
그런 와중에도 기숙사 생활을 하던 동기 친구들은 저녁이면 신학관 앞 금잔디 위에 누워,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고 이호운 학장님이 지으신 찬송가를 목 메어 부르며 소명의식으로 가슴이 뜨거웠었지.
이 목사와는 이목사가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런 추억이 없네.
3학년 때인가, 어느 날 저녁에 이목사가 기숙사로 찾아왔네. 그리고는 '중요한 데이트가 있으니 돈을 좀 꾸어 달라'고 간청했었지. 모두가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아는지라 돈을 꾸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을거야.
아마도 다른 친구들을 거쳐 내게 까지 왔을 듯 하네. 남에게 돈을 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얼마나 어려우면 사정할까
하는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비상금을 몽땅 털어 주었네. 액수는 기억할 수 없지만 당시에 내가 가진 전부였다네.
그후, 숫기가 없었던 나는 꾸어간 돈 갚으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지만 이목사는 꾸어간 사실
조차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꾸어갈 때부터 갚을 마음이 없었는지 지금까지도 갚지를 않았네. 그때는 내 가진 것
전부를 꾸어줌으로 겪은 어려움이 컸기 때문에 기억회로에 각인이 된 모양이네.
꾸어준 사람은 잊고, 꾸어간 사람이 기억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 반대가 되는 바람에, 평생에 서너번이나 될까 말까이지만, 이목사를 보면 그 때 그 일이 생각이 나곤 했었고, 그로 인하여 이목사에 대하여는
마음을 열 수가 없었네.
어쩌면 이것은 꺼내지 않는게 좋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일 수 있겠다만, 근래에 이 목사가 공인으로서 보이는 여러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면서, 옛적 일이 자꾸만 오버랩되는 것을 어쩔 수 없네.
첫 번 째 권고문을 올린 후에, 두 후배 목사가 날 찾아왔네. 한 분은 목원 후배였지. 내 글을 모두 읽었다며, 내용이
너무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라고, 이철목사님은 존경할만한 선배목사님이 없는 세상에서 드물게 보는 존경스러운
선배 목사님이라 하더군. 그럴 수 있겠지. 신학생 시절의, 내 가슴에 새겨진 그 이철이 아닐 수도 있을 걸세.
사람은 평생에 세번 정도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네. 그런데 말이야, 변화된 증거는 그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나? 이목사는 그동안 공교회, 만인 앞에서 석연치않은 태도를 여러번 보였고, 식언을 많이 했네.
그러므로 난 믿어지지 않아, 아래 기사는 당당뉴스 기사의 일부일세.
'한 감독은 가처분 결정이 나기 며칠 전에 이철 목사가 전화로 “9월 6일 총실위개최금지가처분이 기각되면 돌아가고
직대 뽑으면 된다”고 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 됐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오늘(9.17일)이목사가 본부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세번째 권고문을 쓰기로 작정했네.
이 목사는 자신이 사회법에 신청한 '총실위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므로, 패소한 것이나 다름 없는데도,
본안소송 운운 하며 직무대행 행세를 하고 있네. 그런 염치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한 때 공교회의 최고 수장이었던 어떤 인사는 '왜 교회일을 사회법으로 끌고가서 혼란을 가중시키냐!'고 게 거품을
물면서 성토하더군. 총특재 판결에 불복하고, 사회법으로 나간 자가 누구인가, 세상을 판단해야할 교회가 어찌 부끄런운 줄 모르고 세상법에 호소하는가, 나는 숱하게 고소를 당하고 사회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한 번도 누구를 사회법에 고소한 적이 없네(근래에 그것을 깨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하는 인사가 한 사람 있기는 하네)
난 용납할 수 없네. 뿐만 아니라 공교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일세. 고집을 부리면 부릴수록, 가면 갈수록 스텝은 더욱 꼬여갈 것이네. 지금 돌아선다 해도 그동안의 과오에 대한 댓가가 만만치 않을 걸세.
나는 목원도, 동기도, 이미 다 버렸네.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바요, 이호운, 남기철, 챨스 스톡스 등, 우리의 스승들이 가르쳐 준 목원정신으로 사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네. 어쩌면 권고문이 몇 번 더 계속될 것 같네.
반대하는 이들과 싸워 이기려 말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게나. 사회법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우리가 정한 교회법, 진리의 법, 성령의 법, 양심의 법에 굴복하시게나.
승리를 비네.
2018.9.17일 오후 가평에서 장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