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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 1:4)
최세창
- 1989
- 2018-09-18 00:12:38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는 말씀(로고스) 곧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생명”은 조에(ζωὴ)로서 ‘생애’를 뜻하는 비오스(βίος)와 다르고, 죽음(롬 6:22)과 멸망(갈 6:8)의 반대인 신적 생명 곧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다(5:26, 11:25, 14:6, 요일 1:1, 2, 5:11, 행 3:15, 골 3:4). 물론, 이 생명은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덕으로부터 비롯되는 생명’(βίος κατ’ ἀρετήν)이나,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신비적 실체로서의 불멸은 결코 아니다.①
반즈(A. Barnes)는 “그분이 생명이시라는 표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새 창조 또는 인간을 새롭게 하는 일과 죄의 상태로부터의 회복 등은 종종 첫 창조에 비교된다. 로고스는 생명의 원천이므로 유사하나 보다 고귀한 의미에 있어서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에게 생명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엡 2:1).”라고 하였다.
바울 역시 사도 요한과 같은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생명의 존재 근거요 의의요 목적이시다(빌 1:20, 갈 2:20).②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여받은 인간이란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된 인간을 지시하는 것이다(롬 5:17, 딤후 1:1). 즉,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새사람의 “참 생명”(T. K. Abott)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구원받은 자의 생명은 과거와는 달리,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다(골 3:3. 참조: 요일 5:11-13). 다시 말하면, “그 생명은 실제적이고도 심오한 의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C. Vaughan, p. 172, A. Clarke)}(골 3:3의 주석).
스트와트(J. S. Stewart)는 “바울의 구원과 관련되는 모든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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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G. Kittel, ed., op. cit., Vol. I, p. 867.
2) 저자의 빌립보서 1:20의 주석과 갈라디아서 2:20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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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평화, 능력, 성장, 도덕적 승리 등은 생명이란 말에 포함된다.”③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 이후의 영역에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가 지금 누리는 생명은 영원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④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이란 이 생명으로 사는바(롬 6:4) 영적 지각과 영적 지식, 영적 판단과 영적 갈망, 영적 기쁨과 영적 능력 등을 소유한 자로서 성령을 좇아 영적 삶을 살아가는 자이다(갈 5:16-17). 그는 여기서 천국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빌 3:20). 시간 안에서 영원을 사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초월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다. 그는 아직 육신을 입고 있으나 신령한 삶을 살며,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위하여 자유롭게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 생명이 하나님 안에 보존되어 있는 참 그리스도인을 알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생명은 장차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 누릴 영원한 생명이므로(딤전 6:19), 세상에서 이 생명의 은혜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은혜는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이 생명을 부여하고(6:33-, 8:12, 20:31), 또 누리게 하시는 이는 절대적인 생명이신 그리스도이시다(요 1:4, 14:6, 행 3:15). 바울은 이 생명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빌 3:20)로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롬 6:4) 새로운 피조물이며(고후 5:17),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는 자(갈 2:20)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말씀(로고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가리켜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하였다.
“생명”(ζωὴ)이나 “빛”(φώς)은 복음서에서 매우 특징적인 말들 중 하나인데, 이 복음서에는 ‘생명’이란 낱말이 54회, ‘빛’이란 낱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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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J. S. Stewart, op. cit., p. 192.
4) Ibid., p.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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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사용되었다. 이 두 낱말과 60회 사용된 ‘사랑’이란 낱말은 이 복음서의 그리스도론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태초에 신의 말씀의 첫 행동은 빛의 창조이었다(창 1:3). 이것은 우주에서의 생명의 첫 표명이었으며, 따라서 시편 기자는 동시에 신의 생명과 신의 빛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 36:9).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우주의 빛으로서의 말씀의 생명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영적 창조로 넘어가는 것이다. 즉, 태초에 말씀의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셨다는 것이다(참조: 8:12, 9:5, 12:46).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여기서 그리스도를 빛으로 표현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5에서는 하나님을 빛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ὁ θεὸς φώς ἐστιν)에 대해서 불트만(R. Bultmann)은 “…그 문장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구약성서와 유다교, 그리고 또한 희랍 사상과 영지주의에 있어서도 하느님, 하느님의 본질, 신적인 것의 영역 등을 빛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형태는 모두 다르더라도 그 기본적인 이해는 빛의 본질적 의미가 인간이 자신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그리고 또한 자신의 영적인 생활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필요로 하는 성결이란 점이다.…빛은 일반적으로 구원, 특히 종말론적 구원을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요일 2:8).”라고 하였다}(요일 1:5의 주석).
그와 비슷하게 {켈리(J. N. D. Kelly)도 “빛은 유대교에서 메시아 및 메시아 시대와 관련되어 있었다(SB Ⅰ, 161f.: 곧 시 36:9의 ‘주님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나이다.’에 관한 랍비들의 주석). 그리고 그와 같이 원시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빛이셨으며(요 1:4, 8, 8:12 등),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들은 종말론적인 빛에 들어가 그분 안에서 거하는 자들로 간주되었다(요 12:35, 행 26:18, 엡 5:8, 골 1:12, 살전 5:5, 요일 1:5-2:11).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그들의 과거는 ‘어둠’으로, 그들의 세례는 ‘빛을 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롬 13:12, 엡 5 :14, 히 6:4, 10, 32. Justin,ⅠApol. lxi. 12f.; lxv.Ⅰ; Dial cxxii.Ⅰ).”}(벧전 2:9의 주석)라고 설명하고 있다.
{“빛”(포스, φώς)은 “하나님[그리스도]의 본질을 가장 잘 묘사한 것”(A. E. Brooke)으로 ‘존엄성과 영광’(딤전 6:16, 요일 1:5), ‘불변성’(벧전 1:17), ‘완전한 의와 진리’(시 43:3, 94:1, 요 3:20, 요일 1:5), “순수성”(A. E. Brooke, W. Barclay), “탁월한 거룩성”(M. Henry, W. Barclay)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 빛은 하나님(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를 잘 묘사한 것이다(시 27:1, 80:3, 7, 19, 요 12:36). 하나님은 죄의 종으로 어둠에 속한 인간에게 그의 점과 흠을 드러내 주시고, 구원자로서의 자신을 계시하신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에게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비춰 주신다.⑥ 빛만이 어둠을 물리치는 것처럼, 어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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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조: J. H. Bernard.
6) 참조: W. Bar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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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자인 사단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빛이 그대로 심판이 되는 것이다(요 3:19)}(요일 1:5의 주석).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빛과 성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특수한 계시인 그리스도를 빛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빛이시자(1:4) 세상의 빛이신(8:12) 참 빛이시다(1:9).
{알란(J. A. Allan)에 의하면, “이 빛은 충분히 그리고 명백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비치므로 무지와 죄와 죽음이 극복된다(눅 1:78, 마 4:16, 요 1:1-18, 8:12, 9:1-41, 고후 4:4-6).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은 빛의 본질을 나누어 갖는다(요 12:35-).”라고 한다}(엡 5:6의 주석). 그러므로 빛이란 성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마 5:14, 요 3: 20).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미 어둠의 영역에서 빛의 영역으로 옮겨진 사람들이다(고후 4:6, 행 26:18, 골 1:13, 벧전 2:9). 달리 말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요(롬 13:14, 갈 3:27), 빛의 갑옷을 입은 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참 빛이신 성자와 그 빛의 본질을 나누어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빛의 아버지(약 1:17) 곧 근원적 빛이시다.
※ 출처: 최세창, 요한복음(서울: 글벗사, 2006, 1판 2쇄), pp. 6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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