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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관한 예수와 바리새인들의 논쟁(마 12:1-8)
최세창
- 3097
- 2018-10-15 23:58:45
(마태복음 12:1-8)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에 관한 논쟁은 마가복음 2:23-28과 누가복음 6:1-5에도 기록되어 있으나,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마태는 이 부분을 【1】“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 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로 시작한다.
“안식일”(사바신, σάββασιν)은 일하다가 쉰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에 쉬신 것을 기억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한 것이다(출 20:11).
현재의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인 안식일은 반드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가 있었다. 즉, 안식일은 거룩한 날일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거룩한 날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안식일을 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날이며, 신자의 정신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예배일로 만들었다. 따라서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였다(민 15:32-36, 출 31:14, 15).
{안식일 제도는 포로 후에 생긴 것이라는 학자(마인홀드)가 있으나, 출애굽 시대에도 안식일을 지킨 것 같으며(출 16:23), 문헌에도 주전 제 9세기(왕하 4:23) 포로 이전 새달 잔치(사 1:13, 호 2:11, 암 8:5)와 관련된 것 같다. 그러나 안식일이 시편(92편 제목 제외)이나 욥기나 잠언에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포로 후에 국민 생활을 강화하면서부터 느헤미야가 안식일법을 강행하였다(느 10:31, 13:15). 마카비 시대에는 안식일이 유대인의 표가 되었다. 극단론자들은 안식일에는 원수가 쳐들어와도 방어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맏다디아는 안식일에도 정당방위는 물론, 필요하면 무기를 잡아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안식일을 복수로 쓰기 시작한 것은 매주 제 7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외에 다른 날들도 안식일로 지킨 때부터였다.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새달 첫날을 안식일로 지켰다. 그 다음은 초막절과 속죄일과 유월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들을 안식일로 지켰다. 제 7년 곧 안식년(레 25:1-7)과 희년(해방의 해, 49<7×7>년 다음 해)은 그 전부를 안식일로 생각하였다.
안식일에 대한 구약의 간단한 법은 랍비들 손에서 복잡한 규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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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변했다(탈무드의 사받편). 그런데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대한 규칙뿐 아니라, 안식일 자체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므로(막 2:27) 사람들을 속박하는 랍비들의 안식일 법규는 안식일의 근본정신에 어그러지는 일이라고 하셨다.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율법과 예언서를 읽는 것과 강의를 듣던 관습(막 1:21, 눅 4:16, 13:10)이 기독교의 주일 예배로 변하게 되었다(행 13:14, 15:21, 17:2).①}(요 5:9의 주석).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으니”는 예수님과 동행하던 제자들이 굶주림을 면키 위해 한 행위임을 나타내고 있다. 남의 포도원에서 포도를 그릇에 담는 것은 안 되지만, 배불리 먹는 것은 허용되었고, 남의 곡식밭에서 낫을 대는 것은 안 되지만, 손으로 이삭을 따는 것은 허용되었다(신 23:24-25). 그러므로 제자들의 행위는 합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한 일이라는 점을 들어 비난하였다. 이 사실에 대해, 마태는 【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바리새인들”(Φαρισαίοι)은 3:7의 주석을 보라.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율법(출 20:8-11, 34:21, 신 5:12-15)을 어기고 마당질을 했다는 것이다. {이 일은 미쉬나(5:17의 주석을 보라.) 샤바트 7장 2절에 있는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 39항목 중 세 번째에 해당되었다(in 山口 昇).}(막 2:24의 주석).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위를 추수 또는 마당질로 간주한 것은 터무니없는 확대 해석이다. 또한, {그란트(F. C. Grant)에 의하면, 미쉬나와 탈무드에는 안식일의 금지 조항에 자비와 필요한 경우와 같은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닐카(J. Gnilka, p. 153)는 “미쉬나(mischna: 라삐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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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참조: 유형기, op. cit., pp. 562,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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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적용한 구전법의 조항 또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막 2:24의 주석)
율법주의를 대표하는 바리새인들처럼, 고정 관념이나 선입관을 척도 삼아 남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은 편협하여 사리를 올바로 분별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병적인 ‘자기 의’의 의식에 젖어 있다.
바리새인들의 도전적인 비난을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에 대해, 마태는 【3】“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위가 율법 위반인가 아닌가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하는 대신에, 다윗의 경우(삼상 21:1-6)를 들어 답변하셨다. 즉, 율법(구약성경)의 권위로, 그것도 유대인들은 물론, 바리새인들조차 반대할 수 없는 다윗의 예를 들어 반격하신 것이다. 이 사실은 예수님의 탁월한 지혜와 뛰어난 성경 지식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경우에 대해 【4】“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셨다.
이 구절은 사무엘상 21:1-6의 기사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놉으로 도망하여 그 곳 제사장에게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얻어 먹고, 또 자기를 따르면서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않은 소년들에게도 먹게 한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성막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다.
“진설병”은 성소 안의 정금으로 싼 상 위에 이스라엘 12지파를 따라 한 줄에 여섯 덩이씩 두 줄로 진설해 놓은 빵을 가리킨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며, 영원한 언약이었다(출 25:23-30, 레 24:5-9). 매 안식일마다 새 빵으로 바꿔야 했으며(레 24:8, 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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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물려 낸 빵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었다(레 24:9).
이 진설병을 제사장이 아닌 다윗 일행이 먹은 사건을 인용하신 예수님의 취지는, 굶주림과 같은 인간의 필요는 율법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는 율법의 경시가 아니라, 중대한 때에는 율법의 문자에 반하여 그 정신을 실행해도 된다는 뜻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이 율법과 관련하여 그런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의 자유로운 행동을 할 권위가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율법은 율법의 완성인 사랑(롬 13:10)②과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그리스도(롬 10:4)③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경우에 대해, 【5】“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하셨다.
불을 피우거나(출 35:3) 일하면 안 되는 안식일에도 제사장들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제사를 위해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잡았고, 그 제물을 불에 태우는 번제와 상번제(화제)를 드렸다(민 28:9-10). 이와 같이 안식일을 범해도 제사장의 경우에는 죄가 없었다.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는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그러한 기사를 율법 곧 구약성경에서 읽지 못했느냐고 힐문하신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남성(“더 큰 이”, μείζων: L, Δ, Vulgate, Bruce)과 중성(더 큰 것, μείζόν: א, B, D, Tischerdorf, Bengel)의 두 가지 읽기가 있다④. 사본의 가치로 보아 많은 학자들의 견해인 후자를 취해야 할 것이다.
전자를 취하는 학자들은 주님 예수로 이해하고,⑤ 후자를 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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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자의 로마서 13:10의 주석을 보라.
3) 저자의 로마서 10:4의 주석을 보라.
4) in 이상근.
5) A. Barnes, C. R. Erdman, J. Wesley, P. S. Ruckman, 黑崎幸吉, R. Earle, 마태복음(비콘 성경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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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 중에는 메시아에 의해 시작된 천국으로 이해하는 이들⑥과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2:19)로 이해하는 이들⑦이 있다 전후 문맥상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성전보다 더 큰” 존재가 여기 있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 외에는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취지는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성전에서의 제사장의 일이 위법이 아니라고 하면, 성전보다 더 큰 존재인 자신이 허용하는 제자들의 일이 위법이 아닌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율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제자들의 행동을 비난한 것은, 율법의 본질적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셨다. 【7】“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이 구절은 9:13의 주석을 보라.
결론적인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태는 【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라고 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므로(막 2:27), 모든 인류의 구주이신 인자(8:20의 주석을 보라.) 예수님은 당연히 안식일에도 주인이실 수밖에 없다. 안식일과 인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인간의 참 유익을 위해 안식일법을 가장 잘 운용하실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안식일법을 폐지할 권리가 있다”(J. Wesley, R. A. Cole)고 하신 것이 아니라, 입법자로서 “법의 사용을 결정할 권위가 있다”(W. W. Wessel)고 주장하신 것이다.}(막 2:28의 주석). 예수님은 법 운용의 마지막 결정권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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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 Schweizer, “Lohmeyer”(in D. Hill), D. Hill, R. V. G. Tasker(p. 125).
7) J. A. Bengel, H. Alford, E. H. Plumptre, W. C. Allen, R. C. H. Lenski, D. Hill,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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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 1판 1쇄), pp. 368-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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