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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은? 참 목자와 거짓 목자
최세창
- 1611
- 2018-10-29 21:20:26
사도 요한은 참 목자와 거짓 목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서 진술함에 있어서, 먼저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로 시작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는 1:51의 주석을 보라.
여기에 묘사된 것은 동서양의 목양에 대해서 알려진 것과 잘 어울린다.
반즈(A. Barnes)는 “여기에서 우리는 종종 양의 무리에 비유된 하나님의 교회나 유대인들에 대하여 이해해야 한다(겔 34:1-19, 렘 23:1-4, 슥 13장).”라고 하나, 모든 인간을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우리”(아위렌, αὐλὴν)에 대해 바레트(C. K. Barrett)는 “호머에게서 가축 농장으로 사용된 말인데 나중에 그것은 ‘뜰’, 혹은 ‘홀’을 가리키게 되었다(L.S.에도 이렇게 되어 있음). 추측컨대 여기서 그 말은 양의 우리(우리, 마구간 등을 뜻함)로 사용된 것으로서 집의 울타리[울짱] 친 작은 마당을 의미한다.”라고 하였고; 반즈(A. Barnes)는 “이리와 강도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양들을 밤에 모아 두는 뜰에 설치된 구역을 말한다. 유대의 기후는 온화하였으므로 양의 우리는 보통 지붕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문”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한 것이다(7, 9절).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는, 양 우리의 문이 아닌 울짱을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라는 뜻이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아닌 다른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이교의 구원자들은 인생의 모든 것은 물론, 영원한 생명을 훔치는 도둑이며 강도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멸망케 하는 자들이다.
“절도”(크레프테스, κλέπτης)는 ‘남의 소유를 몰래 훔쳐 가는 자’를 뜻하고, 강도(레스테스, λῃστής)는 ‘폭행‧협박 등 강제 수단으로 남의 소유를 빼앗는 자’를 뜻한다.
예수님은 앞과 대조적으로 【2】“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라고 말씀하신다.
양 우리의 울짱이 아닌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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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즉, 예수님을 통해서 일하는 복음 사역자들이 사람들, 특히 교인들의 참 목자라는 것이다(참조: 벧전 5:2-3).①
이어서 예수님은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비유를 풍유(allegory)로 보아 우리는 교회, 문은 그리스도, 양은 교인, 목자는 목사로 해석하는 설과 우리는 교회, 문은 하나님, 양은 교인, 목자는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설이 있으나, 실은 풍유가 아니라 목자와 양의 비유(parable)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삼아야 하는 것은 목자와 양의 관계요 그 의미이다.
양을 지키는 양 우리의 문지기는 양의 목자를 위하여 문을 열어 주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양은 지켜 보호해 주고 양육해 주는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분별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운 지도자들의 복음의 교훈을 ‘듣고 따른다’(아쿠에이, ἀκούει)는 것이다.
목자는 각각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 쉴 만한 물가와 초장으로 인도한다. 예수님이 세운 지도자는 맡겨진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알고 그에 적절한 생수와 만나로 양육하며 천국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참조: 민 27:17, 시 23편).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4】“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라고 하신 것이다(참조: 3:21).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 예수님은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짓 종교 지도자의 교훈은 알지 못하므로 그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도망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목자와 양의 비유를 들은 유대인들의 영적 몰이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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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의 베드로전서 5:2-3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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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사도 요한은 【6】“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라고 하였다.
바리새인들이 비유의 의미를 알지 못한 것을 아신 예수님의 반응에 대해, 사도 요한은【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라고 하였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는 1:51의 주석을 보라.
나는 양의 문이라는 예수님이 양 우리 곧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문이시라는 뜻이다(참조: 9절).
이어서 예수님은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는 예수님보다 먼저 세상에 온 하나님의 종들이나 예언자들이나 의인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이나 거짓 구원자들”(C. K. Barrett)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이외의 구원의 길을 가르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반즈(A. Barnes)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메시아의 탈을 쓰고 나타났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유대 나라 안팎에 자칭 구원자들을 추종하는 종교들도 있었고, 구원자들을 내세우는 종교들도 있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또, 애굽의 바로들과 고대 로마의 가이사들은 ‘주’로 숭배되었다. 또한, 속죄 제사나 성막 등을 포함한 율법 행위에 의한 구원이나, 양심 행위에 의한 구원이나, 신비 의식에 의한 구원 등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이외의 구원의 길을 가르치는 자들도 있었다.②
“절도”(크레프타이, κλέπται)와 강도(레스타이, λῃσταί)는 1절의 주석을 보라.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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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 오시기 전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의 갈라디아서 3:6-9의 주석을 보라. 참조: 저자의 히브리서 8-10장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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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문이니”는 7절의 주석을 보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는, 누구나 하나님의 집(교회)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구원을 얻고(소테세타이, σωθήσεται)는 3:17의 주석을 보라.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집(교회)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드나들면서 꼴 곧 영생의 말씀(6:68)을 얻을 수 있다.
끝으로, 예수님은 【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는 1절의 주석을 보라.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교인들로 하여금 현세와 내세에 누릴 “생명을 얻게 하고(1:4, 5:24의 주석을 보라.) 더 풍성히 얻게 하”시는 것이다. 겨우 생존하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토록 풍요로운 삶을 누릴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이 주님이 오신 목적이다.
출처: 최세창, 요한복음(서울: 글벗사, 2006, 1판 2쇄), pp. 35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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