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신대 대자보에 대한 반박문(임상국 교수)

임상국
  • 2583
  • 2018-11-07 01:13:40
교수연합회 입장에 대한 반박문( 임상국 교수, 감신대 구약학)

1. 'L교수'가 공동으로 번역한 『성서의 처음 역사』에 대해 교수연합회(회장: 이성민 교수)가 문제 삼았다.
이는 악의적인 문제제기이다. 첫째, 저자(로버트 쿠트: 주저자)가 인용한 글을 저자의 글로 변조시켰다.
저자가 인용한 가나안 풍요의 신인 엘신을 '야훼는 정욕이 강한 늙은 신이다'라는 소제목으로 변조했다.

둘째, 저자는 비판하기 위해 소위 '하나님의 간음'을 이야기한 것인데 교연은 마치 하나님이 간음의 신인
것처럼 바꿔서 공격했다. 이 점은 전체 문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우매함의 소치이다.

2. 공청회를 여는 것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때와 장소, 방식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무례한 짓이다. 저자, 또다른 번역자, 구약학자들을 초청하여 공청회 열기를 제안한다.

3. 이 기회를 통해 본인인 임상국 이외에 감신대 교수들의 신학사상에 대해 검토해보자. 감신 교수 중에

1) 타종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교수들,
2) 여신강림을 주장하는 교수,
3) 사후천국을 부인하는 교수,
4)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교수,
5) 예수를 구세주가 아닌 도덕적 스승으로만 고백하는 교수,
6) 순교자의 죽음을 의미 없는 것이라고 학생들 앞에서
단정적으로 말하는 교수들이 있다고 한다.

이들 모두도 참여하여 이사회, 교단, 교수, 동문, 학생들 앞에서 토론하여 검증받자.
이와 더불어 감신에서 전통적으로 소중하게 여겨온 학문의 자유에 대해서도 함께 논쟁해보자.
마지막으로 저자의 입장을 영어원문으로 첨부한다.

2018. 10.30. 임상국 교수

저자 Dr. Prof. Robert B.Coote 교수의 답변서를 번역문과 함께 게시한다.

These critics—whose criticism in Korean I do not have direct access to—might be right, in their way. My task is not to confine my understanding of scripture to a Christian orthodoxy, but to understand scripture, both OT and NT, on its own terms. Like that of any scholar, my scholarship, including The Bible’s First History, is of course open to judgment; but scholarship, the fruit of the spirit of inquiry, is not the same as orthodoxy.

What does one make of the story of Abraham, for example, and why? There are many scholarly answers to that question, and in assessing them I do not ask whether they are orthodox. It is not surprising that as scholarship biblical criticism, which has been pursued in both university and church for two centuries or more, can clash with orthodoxies as well as agree with them. Most churches today nevertheless affirm the critical endeavor and such scholarship, and struggle with the dilemmas they raise.

If my MTU critics have not yet discovered such dilemmas for themselves, my reply to them—in lieu of the letter you suggest—is the same as what I said to a broad intellectual and religious audience about reading the Bible in my essay for the AAR ten years ago. You can find it here: http://rsnonline.org/images/pdfs/2008MarchSpotlightonTheologicalEducation.pdf.

In light of this reply, I would advise my critics to be less inquisitive about whether I meet their standard of orthodoxy—not my aim—and more inquisitive about what the Bible, the word of God, means and why. That is no easy task and benefits more from the spirit of inquiry than the constraint of orthodoxy.

If they take the Bible seriously, they might, as I suggest in the article, find themselves a little less certain of themselves, and recognize why I do not claim certainty, and realize why people who study the Bible critically and in good faith disagree with one another so much. As every conscientious reader of the Bible knows, it is both easy to understand (Westminster Confession chap. 1) and hard to understand.

If my critics were to delve more into the hard part and uncover more about Genesis and its uncertainties, they would probably discover why trying to understand Genesis, or any part of the Bible, can lead to upset and does lead inevitably and properly to a debate—about Genesis, not orthodoxy.

Robert B. Coote.

이 비평가들은 (한국어로 된 비평에 직접 접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옳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작업은 기독교 정통교리에 따라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원문의 어휘 그 자체로 구약과 신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느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성서의 처음 역사』를 포함한 내 연구는 물론 다양한 비판에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학자의 탐구정신의 결실인 학문성은 정통 교리와 꼭 같은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대한 견해가 무엇인가요? 왜 그런가요? 이 질문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하게 대답했고, 이 대답을 평가하는데 있어 나는 그것들이 정통교리적인지 아닌지 묻지 않습니다. 2세기 이상 대학과 교회에서 추구되어진 학문적 성서 비평은 정통 교리와 일치하기도 하고 때론 상충되기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학자들의 비평적 노력과 이런 학문을 인정하고 이들이 제기하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신대의 비평가들이 이런 딜레마를 자신들의 힘으로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들에 대한 나의 답변은 폭넓은 지성적이고 종교적인 청중들을 염두에 둔 10년 전에 AAR에 발표한 내 에세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http://rsnonline.org/images/pdfs/2008MarchSpotlighton Theological Education,pdf.

이 글에 쓴 답을 근거로 할 때, 내 글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나의 연구가 정통교리의 기준에 맞는지 여부에 대해 덜 캐묻고 (나의 연구 목적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그런지에 대해 더욱 탐구하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통교리의 속박보다는 탐구의 정신에서 보다 많은 이익을 얻습니다.

내 글을 비평하는 이들이 성경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내가 위의 글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들은 그들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갖지 못할 것이며, 내가 왜 확실함을 주장하지 않음에 대해서도 알 것 입니다. 비판적이면서도 훌륭한 신앙을 갖고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주 일치된 의견을 내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 입니다.

성경을 읽는 모든 양심적인 독자가 아는 것처럼, 성경은 이해하기가 쉬울 뿐 아니라(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또한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나를 비평하는 사람들이 난해한 부분으로 깊이 들어가 창세기와 창세기의 불명확한 부분들을 드러내려 한다면, 그들은 아마도 창세기, 또는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이해하려는 것이 왜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또 적절하게 정통교리가 아니라 창세기에 대한 토론으로 이끄는지 발견할 것입니다.

로버트 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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