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감리교도인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재영
  • 1699
  • 2018-11-24 00:14:31
하인리히 (Heinrich’s Law)법칙이 주는 교훈

우리가 삶의 여정을 이어가면서 당하게 되는 사건과 사고들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치명적인 아픔을 주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그와 관련된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이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Travelers Insurance Company)라는 회사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의 업무 성격상 수많은 사고 통계를 접했던 하인리히는 그 산업재해 사례들을 분석 하는 중에 하나의 통계적인 법칙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와 중상자가 1명이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또 그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뻔했던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이 법칙은 1:29:300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큰 사고라고 하여도 그것이 우연히 또는 어느 한순간에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 그와 관계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점차 실제상황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는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다시 말하면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고치지 않고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리더의 위치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이들은 언제나 자신의 주변에서 어쩌면 발생할지도모를 그 일을 위하여 평소에도 위기관리 능력을 배양해 놓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평소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면밀히 살펴 미리 그 징후를 알아 원인을 파악하여 그 잘못된 점을 시정하면 대형 사고나 실패를 방지할 수가 있지만, 징후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능하고 탁월한 리더는 그가 그 인생에서 위기나 실패를 전혀 경험하지 않은 운運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다양한 인생의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인리히 법칙에 관계가 없는가?

드디어 우리에게도 그동안 거룩을 빙자하여 십자가의 길과는 상관없이 수단과 방법들을 가리지 않고 ‘표리부동’한 짓들을 계속하드니 이제는 세상에서도 보기가 힘든 온갖 구설과 추문에 시달리든 이가 감독이라는 성직에 임명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당사자와 교회의 대표되는 장로에게 권한바가 있으나 그들의 반응을 들으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그이들의 생각 속에 감독監督이란 성직聖職이 무엇으로 보였기에 그 자리에 마음을 두었을까? 또 자신이 감독의 직분을 행함으로 하나님과 소속된 교단에 도움이 되어야 함에도, 지금, 그리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버티고 있는 그 모습들이 참으로 황당하고, 가련하고, 불쌍하다. 그들에게 한번 솔직한 이유를 듣고 싶다

이제 조국 앞에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단은 이 민족의 갈 길을 제시해 줄 안내자로서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교도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우리가 정말 정직하고 남을 배려하며 도덕적인 사람들이냐고 물을 수 있는가? 그 질문은 이미 부끄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지금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경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가정예배조차 드리지 않고 있으며 명색이 평신도 지도자들인 장로들이나 그들을 이끌어야할 목회자들까지도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는 이들이 태반이다. 누군가 그런 표현을 했다. 고등종교의 타락 현상중 하나가 성직자의 급증이라고, 모두가 자기부인自己否認이 없는 형식만으로 거칠 것 없이 존재하는, 그가비록 거룩을 담보로하는 자리에서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하여도 실제적으로는 그들 대부분들이 거듭나지 못한 육적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진단서診斷書에서 가장 무서운 대목은 병명病名이 아니다.

우리가 건강에 위기를당해 병원을 찾아 체크하면 그의 병에 대한 진단서가 발부된다.
그리고 그가 의사로부터 받아든 진단서에서 가장 무서운 대목은 꼭 ‘병명’이 아니다. 진정 당사자인 본인과 그와 관계된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너무 늦었다’는 의사의 “소견서所見書”다. 지금 너도나도 등장하여 목소리들 높이는 전준구 목사의 사태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牧師, 어찌 생각하면, 사람으로 이땅에 태어나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수없이 많음에도 오직 한길을 걸어가야 할 숙명과도 같이 필연으로 느끼며 가는 이들이 목회자들이다.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음란하다고 하여도 부름 받은 그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며, 맑은 영과 거룩한 삶을 실천하며 따르는 이들에게 순결을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세속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세우기에 힘쓰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에 그래도 이들때문에 세상에 소망이 있다.

1747년 영국에서는 복음주의교회가 부흥하고 있었을 때 바로 그해에 우리의 교조 존 웨슬리(John Wesley)가 그의 첫 설교집을 출판하였다. 그의 책 서문에서 그는 성경에 관한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솔직하고 분별 있는 이들에게 나는 가장 깊은 심정을 공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하루살이 같은 피조물이며, 공중을 날아가는 화살처럼 인생을 지나가고 있다. 나는 하나님에게서 와서 하나님에게 돌아가고 있는 한 영이다. 나는 한 가지를 알기 원한다. 천국에 가는 길이 어데 있는가? 그 복된 땅에 내가 어떻게 이를 것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낮아지셔서 내게 그 길을 알려주신 것이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그가 하늘로부터 내려오셨다.

그리고 그 길을 한권의 책에 기록 하셨다! 오, 그 책을 내게 달라!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 여기 내게 필요한 충분한 지식이 있다. 나로 하여금 ‘한 책의 사람’이 되게 하라, 지금 나는 그 한 책의 사람으로 인간들의 소요를 떠나 여기에 있다. 나는 홀로 앉아 있으며, 하나님께서 여기계시다. 그의 존전에서 나는 그의 책을 펴서 그것을 읽는다.”
-김남준.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P.74 인용-

그 존 웨슬리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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