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목사의 명분이라면 끝까지 가겠노라!

민돈원
  • 1910
  • 2018-12-06 20:55:48
80년 대학가가 민주화 열기로 어지럽고
치열한 공방이 지속될 때 나는 전 학년 동안
묵묵히 공부만 하던 도서관 파에 속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여
갈등하고 고민하던 중에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더 악해져 가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 볼 수만은
없어 의연히 몸을 아끼지 않았던 시절이 오랜
세월이 흘러 내 개인의 얼을 깨우고 흔든 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캠퍼스에 상주하던 형사들이
심지어 강의실까지 잠입하여 동료 학우를 체포해 가는
현장을 눈으로 생생하게 보았기 때문이었죠.

그 이후 나는 의분을 가지고 눈물 흘리며
내 동료를 지키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해 미동의 몸부림이라도 하며
살겠다는 마음이 여러 해가 흘러 고민하던 끝에
목사가 된 동기중의 하나였고 이후 자리 잡은
내 믿음위에 행동하는 양심으로서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당시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던 유능한 친구들이
나름 잘 나가게 되어 80-90년대 한 때
그리고 2000년대 이 정권 이전까지 세도가[勢道家] 로
명성을 유지했을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다 현재 문정권이 들어서면서 당시 학교에서,
회사에서 쫓겨 다니던 운동권 출신들이 이제는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처럼이나
알다시피 대거 정계에 포진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사회 현상이 교회 안에도
역시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교회, 특히 목회자의 의식은 밖에서 볼 때만 해도
그 정치권들과는 또 다를 것이라 우러러보았고
존경스러울 때가 있었지요.

하지만 감리회 제도의 한계성을 드러내며 동료들이
고통당할 때 침묵하며 도서관 파처럼
교회 부흥에만 숨어 버린 채 어느 날 시간이 흘러
제법 부흥된 교회 힘을 빌려 감독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느닷없이
한국교계의 마치 대표인 마냥 여기저기 이름 걸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적지 않은 행태들이 오버랩 되면서
사회보다는 높은 도덕성의 우위만큼은 월등하리라는
최소한의 기대감마저 불행히도 무너져 내린지 오래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사태를 통해 예수님을 심문할 당시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눅23:12)라고 하는 것처럼
어부지리 기회를 꿈꾸는 자들이 있다면
이것 역시 다 같이 우려하며 경계합니다.

이런 사태를 목도하면서 오직 이 감게 사이트에서
그나마 희망을 찾는 것은 외롭게 외치는 몇 몇 분들의
교회 바로 세우기, 목사의 제자리 잡기를 위해
애통해하는 그 충심의 마음을 읽으며 나를 접속합니다.

오로지 순수한 열정과 목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어떤 불이익에도 맞서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명분이라면 명분으로 내세울 정도의 확실한 이 명분 외에
사족이 필요치 않는 그런 의협심을 가진 분들이라고 여겨
뜻을 같이 합니다.

왜냐하면 제도권에 묻혀 자기 유익득실이나 계산하고
그저 세상 안정된 직업중의 하나로서 지금의 자리라도
명맥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궁색한 변명으로서는
목회자라고 하기에는 명분이 서지 않습니다.

이런 지도자 부재중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얼 빠져있고
뚜렷한 의식(멘탈)이 빈곤한 정체성의 혼란으로
나를 비롯한 목회자 자신들이 이 시대의 역류현상에
나아가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느끼한 감리회 목사가 아닌
지금 감리회 지도층 안에 악의 무리가 횡행할 때
영적 소란을 일으켜 거룩한 전염병을 번지게 할 만한
예레미야, 바울과 같은
동역자들이 더욱 절실하고 그리워집니다.


마치 바울이 생명 걸고 복음전하다 옥에 갇힐 때
자신도 같이 갇히게 된 아리스다고(골4:10) 동역자 같은
충성되고 옳은 길을 간 증인처럼 말입니다.

이전 장병선 2018-12-06 서울남연회 평신도 대표 성명서]
다음 김정효 2018-12-06 이런 노래 부질없는 넋두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