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공개적인 글쓰기와 성명서

장광호
  • 1742
  • 2018-12-27 17:31:10
공개적인 글쓰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글쓰는 이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드러내게 하고,
미래까지도 묶어 놓습니다.

내면의 속살을 다 드러냄으로서 오는 수치심을 넘어설 용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때로는 사적 관계들을 희생할 각오까지 해야만 가능합니다.

어떤 글쓰기든 의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지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서
도전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지지를 받아도
이후 있을 수도 있는 불이익까지 감당할 각오가 필요합니다.

순간 끓어오르는 분을 절제하지 못해 마구잡이로 써대다가는
그 동안의 노고가 한 순간에 물거품 됩니다.

순식간에 내뱉는 글들이 미래의 족쇄가 될 수 있기에 조금이라도 허언을 하면 안 됩니다.

공인들의 지키지 못한 약속이
그의 미래를 발목 잡는 결정타가 되는 것들을 보지 않으셨나요?

설교한 대로, 쓴 글 내용대로 성취되지 않고,
또한 그대로 살아내지 못하면
생명력을 상실하기에
쓰레기 취급받습니다.

성공적 글쓰기는 개인의 역사와 공공의 역사에 사초 역할도 하게 됩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놓고
써놓은 글에 무관심하거나
그 결과에 대해 나와는 상관없다는 태도 역시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인식과
그로 인해 생기는 여파 때문에
모든 것과 단절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공개적 글쓰기가 안됩니다.

.....

공적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출세라는
단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자리란 과거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삶에 대한 검증 장소이지요.

과거 삶의 자리가 어떠했는 지,
오늘 어떤 자리에 있는 지가 다 드러납니다.

넉넉함도 드러나고
부족함도 드러납니다.

그동안 힘으로 꼭꼭 눌러서 숨겨 놓았던 진실들이
소리 지르며 튀어오르도록 만드는 것이 자리입니다.

그래서 자리는 함부로 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사단이 난 것 아닙니까?

잘못되었음이 드러난 거지요.

저가 자리를 잘못 골랐다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에게서는 자리를 잘못 맡겼다는 각성이 일어난 겁니다.

자리가 그동안 삶을 심판하는 자리임을 미처 알지 못한 무지의 결과입니다.

감독을 꿈꾸는 분들은
이런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옆에서 부추기는 세력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역사는 언제나 내 가장 옆에 있던 사람이 배신의 자리에 섰던 자임을
알려줍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끌어내린 경험을
가진 이들의 연합된 힘을 결코 무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조직 구성원들이 과연 누구에게
미래를 맡기고 싶겠습니까?

이제는 제대로 살아오신 분들을
모시고 싶지 않겠습니까?

......

공개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도 어려운 자리가 됩니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명서를 발표하는 이들에게서
또 다른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고 비판 받게 될 겁니다.

그럼에도 공개적으로 의사 표현 할 때는 많은 것들을 극복하게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를 내려면
냉엄한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뭔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소명 의식.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명 의식 없이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성명서에 과감하게 이름을 낼 수가 없습니다.

소명 의식은 끊임없이 부어지는
열정 즉,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 에너지는 그 소명이 끝날 때까지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것이라서 막을 자가 없고 방법이 없습니다.

악은 결코 소명자들을 이길 수가 없는 법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즉 성령의 검으로 싸우는 소명자들을 이긴 악이 없다는 것은 성경이 증명합니다.

이런 분들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쓴 글이고, 발표한 성명서라면 살아있는 말씀 즉, 성령의 검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누가 폄하할 수 있겠습니까?

또 언제나 밑에서 일어나 외칠 때는 지도자들을 더 이상 못믿을 시대가 아닙니까?

이럴 때도 계속 지켜봐야만 하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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